대통령과 당 대표의 관계 재정립, 그것이 개혁이다

2024-06-24     김경은 기자

여당 대표는 여권의 제2인자다. 전당대회는 여당 제2인자를 뽑는 선거다. 가장 중요한 여당 대표 역할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 뒷받침이다. ‘대통령과 관계 설정이 여당 대표의 역할의 절반’(나경원 후보)이다. 당연히 여당 대표 경선에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게 마련이다. 대통령과 교감 혹은 친밀감 정도가 대표 경선의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예상되는 후보가 당선된다. 이변이 연출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변을 기대하는 국민에게 관심을 받기 쉽지 않다.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차기 당 대표는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당권은 대권의 문을 여는 다양한 기회와 권한이다. 이번 경선 라인업이 화려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경원·원희룡·윤상현·한동훈 후보의 4자 대결이다. 면면이 쟁쟁하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감으로도 손색이 없는 후보다. 사실상 미래의 권력을 놓고 다투는 한판의 승부가 된 것이다. ‘미니 대선후보 경선’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후보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 나경원의원, 윤상현 의원,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좌로부터)

국민적 관심은 후보의 면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과 긴장 관계에 있는 ‘잠룡, 한동훈’이 대세론을 앞세워 대표 경선에 나섰다. 그것도 윤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사실상 윤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다. 현재 권력과 미래권력의 싸움보다 더 흥미로운 게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참전’했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한 후보 낙선운동’에 나선 것이다. 흥미는 배가됐다. 이번 대표 경선은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기류가 지배했다. 압도적 국민 지지를 받는 한 후보에게 대적할 후보가 없다는 얘기다. 한 후보의 당 대표 당선은 미래권력의 조기 등판을 의미한다.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연히 한 후보가 차기 당 대표가 된다면, 원만한 당정관계 유지가 쉽지 않다. 

문제는 한 후보의 당선을 저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더구나 정치적 상황이 윤 대통령에게 유리한 국면이 아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역시 4·10총선 패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후보다 크다는 게 국민 인식이다. 총선 패배 이후에도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바닥에 머문 지지도나 인기도는 반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윤 대통령을 대신해서 방패막이로 나서지 않았다. 거기다가 대통령실도 드러내놓고 특정 후보를 내세우거나 지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실의 경선 개입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려고 해도 지원할 후보가 없다. ‘친윤 대표’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친윤 인사가 아무도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출마에 나선 후보 중에서도 윤 대통령의 대리인을 찾기 어렵다. 당선 안정권에 있는, 믿음이 가는 후보가 없다. 믿을 수 있으면 당선 가능성이 작고, 당선 가능성이 크면 믿음이 가지 후보만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이다. 친윤의 중심인물인 이철규 의원 등이 나름대로 친윤 후보 만들기에 나섰다. 김재섭·조정훈 의원 등과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출마에 난색을 보였다. 결국 수도권 지지기반이 있는 나경원 후보에게 ‘친윤의 대안’이 되어주길 기대했다. 소용없었다. 나 후보는 끝내 윤 대통령의 손길을 뿌리쳤다. 나 후보는 “저는 계파도 없고, 앙금도 없다”라며 친윤 라인과 거리를 뒀다. 윤 대통령과 가깝다는 게 전당대회의 득이 아니라 실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선수교체가 이뤄졌다. 원 후보가 투입됐다. 원 후보가 출마 의사를 밝히기 전 어떤 출마 움직임도 없었다고 한다. 윤상현 후보는 “불과 며칠 전까지 나를 돕겠다고 했다”라면서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원 후보는 출마 발표 직전 윤 대통령을 만났다. 원 후보는 출마 의사를 밝힌 뒤 첫 행보가 김기현·인요한 의원 예방이었다. 그들은 대표적 친윤 인사다. 스스로 용산의 ‘공인 후보’임은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를 뒤집어 얘기하면 대통령실이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어떻든 원 후보의 등장으로 전당대회의 프레임이 전환됐다. ‘비윤 간의 대결’이 ‘친윤 대 반윤 대결’ 구도로 바뀌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윤·한 대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상 ‘한동훈 대 원희룡의 대결’이 아니라 ‘윤석열 대 한동훈의 대결’로 귀결하게 됐다는 얘기다. 

‘보이지 않는 손’이 ‘어대한’의 기류를 바꿀 수 있을까. 뒤늦게 대표 경선에 나선 한 후보가 한 후보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선 대세론 차단에 역점을 두고 있다. 1차 투표 과반 차단, 2차 결선투표 뒤집기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선 친윤 세력이 결집해야 한다. 지난해 2월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전 대표가 ‘친윤 후보’로 교통 정리되면서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출마 당시 3%였으나 전당대회에서 52.93%를 얻었다. 물론 윤 대통령은 지난 전당대회만큼 당 장악력이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당원이 한 후보의 낙마를 위해 얼마만큼 결집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럴수록 친윤 세력이 ‘대통령’을 이름을 팔아 당원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더 교묘하고 집요한 작업이 전개될지도 모른다.     

대표 경선은 당원 선거다. 정치의식이 높은 당원을 상대로 전당대회는 출마의 변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출마 연설이 중요하다. 모든 후보가 전당대회의 목표는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로 규정했다. 그게 쉬운 재집권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예상한 대로 각 후보가 내놓은 메시지와 공약은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으로 갈렸다. 그것은 키워드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나 후보는 ‘미숙한 정치’였다. 총선 패배의 현장 책임자인 한 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한 후보는 ‘오로지 민심’이었다. 당정관계도 민심으로 설명했다. “당과 정이 견고하고 단호하게 민심의 길로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용산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실상 용산과 차별화를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채상병 특검에 대해서 용산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이 주도해서 채상병 특검을 수용하자고 밝혔다. 물론 조건부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실과 차별화라는 의미까지 퇴색시키는 것은 아니다. 당정관계의 바로미터로 인식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야권은 이 문제를 윤 대통령의 권력남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후보의 발언으로 인해 채상병 특검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여당 내 갈등으로 전환될 여지도 크다. 물론 이 문제의 논의과정에서 당과 국민의 여론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알 수 없다. 어떻든 윤 대통령은 결코 수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세에 몰리게 될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한 후보는 왜 이 같은 강수를 두는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민심을 얻어야 야권의 횡포에 맞서고 윤 대통령도 견제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한 후보의 입장은 친윤 세력의 결집 빌미가 될 가능성도 있다. 용산을 비롯한 친윤 당원을 긴장시킬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원 후보는 이를 잘 이용했다. 원 후보의 키워드는 ‘원팀’이다. 원팀이란 곧 용산과 당의 팀플레이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용산과 신뢰를 강조했다. 원 후보는 “나는 윤 대통령과 신뢰가 있다”라면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책임지겠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한 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뒤집어 표현하면 친윤의 조직적 지원을 요구한 것이다. 

결국 전당대회의 결과는 친윤계가 당원조직력에 따라 ‘김기현 시즌2’를 재연이 결정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윤 대통령 중심의 전대가 될 것이다. 또다시 줄세우기와 ‘대통령팔이’가 반복될 것이다. 그것이 보수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쇄신과 혁신을 요구했던 4·10총선이 보여준 국민의 요구 잊었는가. 새롭게 당정관계를 재정립에서부터 국민의힘의 개혁과 쇄신은 시작되어야 한다. 용산의 대표 경선 불개입이다. 전당대회에 대한 용산의 공식적 입장은 ‘웨이트 앤 시(지켜보기)’였다. 선거 불개입이다. 이 원칙이 지켜질 때, 대통령과 차기 대표의 건강한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