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도 K-푸드 반열에 올랐다

2024-06-29     김경은 기자

‘코리안 푸드’의 열풍이 불고 있다. K-푸드 수출액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다섯 달 동안 K-푸드 수출액은 49억 6,000만 달러(농림축산식품부, 6월 4일 발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포인트가 늘어났다. 괄목할 신장이다. 라면, 과자, 음료, 쌀 가공식품, 김치, 김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음식을 뒤따라가는 게 있다. 술이다. 술은 안주를 동반한다. 술과 짝을 이루는 음식이 많다. 세계적인 한국 음식 인기는 한국 술로 연결된다. 한국 국민 술인 소주 수출 증가가 이를 방증한다. 지난 26일 국세청이 발표한 수출입 무역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소주 수출액이 1억 141만 달러를 기록했다. 단일 품목으로는 라면, 과자, 김에 이어 네 번째 ‘1억 달러 수출탑’을 세운 것이다. 소주가 한국 국민의 술을 넘어 ‘세계인의 술’로 비상하기 위해 날개를 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푸드의 대표적 상품과 소주 갈무리

소주가 당당하게 한류 문화상품 목록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제 문화상품 가치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있다. 우리 스스로 소주에 대해 알아야 한다. 기왕 이웃한 중국과 일본의 소주 이야기를 곁들인다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술은 발효주와 증류주로 나뉜다. 발효주는 곡물이나 과실로 발효과정을 거쳐 만든 술이다. 증류수는 여기에 과학적 조작과정을 거쳐야 한다. 증류기 통해 알코올을 분리해야 한다. 그러면 도수가 높은 술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소주(燒酒), 중국의 바이주(白酒), 일본의 쇼츄(燒酎)가 여기에 해당한다.

발효주의 역사는 깊다. 인류와 함께 해왔다. 그에 비하면 증류주의 역사는 짧다. 증류주는 11세기에 탄생했다. 10세기경 이슬람 제국(사라센 제국)은 알코올 증류법을 알고 있었다. 이슬람 제국은 율법으로 음주를 금했다. 증류에 통해 얻은 알코올을 음료로 마시지 않았다. ‘증류 알코올’을 의약품이나 화장품, 향수로 이용했다. 증류기를 통해 똑똑 떨어지는 물이 마치 땀과 같다고 해서 아라크(Arak·땀)라고 불렀다.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 증류 기술은 유럽으로 전해졌다. 유럽 사람은 양조에 증류 기술을 접목했다. 발효주와 차원이 다른 술이 만들어졌다. 위스키, 브랜디, 진, 코냑, 보드카 등 증류주가 그것이다.

전통 증류 소주는 고려 수주다                       

새로운 양조 기술이 동양으로 전해진 것도 전쟁 때문이다. 몽골제국은 유럽 국가를 하나씩 무너뜨렸다. 유럽에 있는 새로운 술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몽골은 말젖이나 우유를 발효시킨 알코올음료(마유주·에어라그·Airag)를 마셨다. 도수도 낮다. 보관도 어렵다. 유럽의 증류 기술을 받아들였다. 우유나 말젖으로 보드카를 만들었다. 그것을 아라키(Arkhi·亞剌吉)라고 했다. 우유 혹은 마유 보드카를 뜻하는 하르히의 어원이 바로 아라키다. 아라키는 몽골제국이 복속한 고려도 전해졌다. 한국 소주(燒酒)의 기원이 된 아라길주(阿喇吉酒)가 그것이다. 아라크→아라키→아라길주가 증류주의 전달경로를 알려준다.

원나라가 직접 통치한 쌍성총관부(함경도 화주), 동영부(서경), 정동행중서성(개경), 탐라총관부(제주) 등이 아길라주의 본산이 됐다. 고려시대 때 만들어져 지금도 사랑받는 소주로는 아락주(개성), 안동소주(안동), 감홍로(평양), 이강주(전주), 고소리주(제주), 삼해소주(마포) 등 수없이 많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주다. ‘고려의 주선(酒仙)’으로 불린 이규보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삼해소주’, ‘백주’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술을 소개하고 있다. 언급된 술 종류가 250가지나 된다. 물론 이것들 전부가 증류수는 아니다. 조선은 유교 국가다. 유교 이념을 구현하는 청주가 조선의 국민주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증류주 인기는 높아졌다.

우리나라의 증류기는 소줏고리다. 약탕기 모양의 옹기를 포개 붙어 놓은 듯 생겼다. 위에 얹는 옹기에 주둥이가 달려 있다. 양조주를 넣은 가마솥 위에 소줏고리와 물항아리를 차례로 올려놓고 끓이면 주둥이를 통해 증류된 소주가 흘러나온다.

마오타이가 중국 바이주(國酒)가 된 사연

중국으로 전해진 ‘아라키’는 바이주로 변신했다. 청나라 중기에 이르러서는 바이주가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는 쌀로 술을 빚은 데 비해 중국은 수수를 술 재료로 삼았다. 우리가 잘 아는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배경이 바이주 양조장이다. 중국의 술 발효법은 독특하다. 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구덩이에다가 곡물(수수)와 누룩을 채워 넣고 황토로 밀봉한다. 한두 달 발효시킨다. 누룩이 핀 곡물 덩어리를 솥에 넣어서 끓이면 향과 색 그리고 맛이 뛰어난 바이주가 나온다. 이것을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고태발효법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귀이저우마오타이(貴州茅台), 루쥬라오지아오(蘆洲老窖) 등 세계적 명주를 빚는다. 가장 오래된 술 구덩이는 무려 450여 년 전인 1573년에 만들어졌다. 중국은 이 발효 구덩이를 ‘교우지아오(國窖·국가 구덩이)’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였다. 또 국가문화유적으로 지정했다. 필자가 귀이저우 성 초청받아 구이양(貴陽)을 방문한 일이 있다. 마오타이를 만드는 마오타이진을 방문하고 싶었다. 필자 일행은 은근히 행선지 변경을 주문했다. “마오타이 양조법은 국가기밀”이라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오타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술이다. 귀이저우마오타이는 약 2,000년 전부터 만든 술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최고의 맛을 찾았다. 7번 증류한다. 이걸 5년 동안 숙성한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씨간장’과 같은 오래된 ‘씨마오타이’를 섞어서 맛과 향 그리고 색을 낸다. 같은 맛, 향, 색을 내는 게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한해에 6,000만 병 정도만 생산한다. 

마오타이는 특히 마오쩌둥과 깊은 인연이 있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홍군(중국공산당)이 국민당의 위세에 밀렸다. 장시성 루이안에서 산시성 연안까지 1만 2,500km를 걸어서 도망갔다. 일명 대장정이다. 마오타이의 고향, 마오타이진을 지나가게 됐다. 홍군은 마오타이를 대접받았다. 마오쩌둥 등 공산당 지도부는 그 술맛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마오타이가 유명해진 진짜 이유는 아니다. 병사들은 장거리 행군으로 지친대로 지쳤다. 혹사당한 발이라도 씻고 싶었다. 일부 병사는 술통을 물통으로 알았다. 발을 씻었다. 많은 병사의 발병이 나았다고 한다. 마오타이진에 가면 홍군 병사들이 마오타이로 족욕을 하는 조형물이 세워진 유래다. 마오쩌둥은 마오타이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건국기념주로 마오타이를 사용했다. 중국의 술(國酒)로 대접받은 셈이다.

희석식 소주는 태평양전쟁의 부산물 

중국의 이과두주(二鍋頭酒)

또 우리가 흔히 아는 바이주로 이과두주(二鍋頭酒)가 있다. 마오타이가 한 병에 60~70만 원 한다. 이과두주는 1,500원 정도다.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뒤 인심을 사기 위해 값싼 바이주를 인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만든 술이다. 베이징에 있는 12개 양조장에서 홍성 이과두주를 만들었다. 이과두주라는 두 번째 증류한 게 제일 맛있는 술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본은 16세기에 류큐 지방(오키나와와 가고시마)에서 증류법을 받아들였다. 류큐에서 증류한 술을 아와모리(泡盛)라고 한다. 가고시마의 지역 유명 특산품이 된 아와모리는 자포니카가 아니라 인디카로 만드는 게 특징이다. 그만이 아니다. 검은 누룩을 쓴다. 흰 누룩을 쓰는 전통 쇼츄와 다르다. 동남아시아로부터 증류법을 전수한 영향으로 보인다. 또 다른 특성이 아주 오랜 시간 숙성시킨다. 보통 30년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오키나와는 ‘일본 문화의 섬’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은 쇼츄(燒酎)는 우리(燒酒)와 다른 한자를 쓴다. 일본인은 독한 쇼츄를 희석해서 먹는다. 이를 미즈와리(水割り)라고 한다. 소주를 희석한다고 ‘희석 소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희석식 소주는 발효과정 없이 식용 알코올인 주정으로 만든 희석 화학주다. 희석 화학주도 전쟁의 부산물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식량이 부족했다. 식량 배급제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술을 만들기 위해 곡식을 소비할 수는 없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화학연구소가 나섰다. 발효하지 않고 주정으로 쇼츄 만들기에 도전했다. 성공했다. 주정에 화학 감미료를 섞어 술맛을 낸 것이다. 이를 순합성주라고 했다. 그것을 군대에 보급했다.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희석식 소주가 바로 그것이다. 1억 달러 수출도 희석식 소주다. 도수 조정과 맛 개발 등을 통해 일본을 앞선 것이다. 이젠 일제에 의해 사라진 전통 소주(가양주)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