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작으로 한·중·일 문화 이해하기
골 세리머니가 도발한 유럽의 외교 갈등, 남의 일 아니다
손동작 하나가 외교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튀르키예와 오스트리아가 독일에서 붙은 UEFA 2024유로 16강전(축구)이 발단이었다. 두 골을 넣은 데미랄 선수(튀르키예)가 골 세리머니로 ‘회색 늑대 경례’를 했다. 손가락으로 늑대 귀 모양(엄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를 모으고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폄)을 만든 양손을 머리에 대서 늑대처럼 보이게 하는 인사법이다. 튀르크족은 회색 늑대를 성스러운 동물로 여긴다. 튀르크족은 회색 늑대 후예라고 말한다. 튀르키예는 당연히 ‘회색늑대 경례’를 튀르크족의 역사적, 문화적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이런 인사법을 ‘인종 차별적 손동작’으로 경계한다.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튀르키예의 극우 정당인 민족주의운동당(MHP) 때문이다. MHP는 노골적으로 아리안계인 쿠르드족(튀르키예에 1,000~1,500만 명 거주 추정)을 적대시한다. MHP는 수많은 인종 차별적 폭력과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의심받아왔다. 튀르키예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와 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회색 늑대 운동(MHP의 민족주의운동)’을 반대했다. 오스트리아는 ‘회색 늑대 경계’를 금지했다. 독일 정치권에서 ‘인종 차별적 손동작’이라면 데미랄 선수 징계를 요구했다. 유럽축구연맹(UEFA)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조사에 나섰다.
튀르키예 정치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UEFA의 조사는 용납할 수 없다”라며 맞서 외교적 문제가 된 것이다. 튀르키예 외무부는 독일 대사를 소환해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외무부는 “독일 당국이 데미랄에게 보인 반응은 외국인 혐오”라고 맞섰다.
중국이 시샘하는 세계 기준의 K-제스처
사실 국내에서도 최근 ‘버릇없는 손동작’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한국과 중국의 축구 경기에서 중국인의 ‘손동작’이 큰 화제가 됐다. 손흥민·이강인 선수 등 한국의 글로벌 스타플레이어가 공을 잡으면 중국 관중은 그들에게 손가락 욕설(중지를 쳐듦)을 퍼부었다. 주장인 손흥민 선수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가 골을 넣은 뒤 중국 관중을 향해 3 : 0이라는 손동작으로 응수했다. 일종의 골 세리머니였다. 손동작을 두고 벌이는 한국과 중국의 신경전은 이번만이 아니다. 손가락 하트를 두고도 양국의 종주권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손가락 하트는 K-하트로 불린다. 지식재산권이 한국에 있다는 얘기다. K-컬쳐와 함께 세계로 뻗어나갔다. 전 세계의 공통언어가 되다시피 했다. 중국은 예외다. 중국 이를 ‘자이니스 핑거 하트’라고 주장한다. 종주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방중한 외국 저명한 연예인이나 예술가가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이 손동작을 강요한다는 외신이 심심치 않다.
최근에 자동차 업계에서도 손동작이 큰 파문을 낳았다. 르노코리아가 신차 ‘뉴르노그랑 콜레오스’를 출시했다. 신차홍보를 위해 유튜브에 나온 여성 직원이 ‘남성 협오’를 뜻하는 핸드 제스처를 했다. 엄지와 검지를 집게 모양으로 구부리는 동작으로 일명 ‘소추(작은 고추) 손가락’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작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하곤 한다. ‘메갈 손가락’이라고도 한다. 2015년 8월 영국 페미니스트가 주축이 된 메갈리아 사이트의 로고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이 동영상 하나로 르노는 1조4,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손동작도 몸짓언어의 한 부분이다. 신체언어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그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는 유사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몸짓언어는 상당히 다르다. 손동작은 체계화된 기호 중 하나다. 기호는 특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신체언어에 내포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 숫자 세는 법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갔을 때 손동작으로 6(한 손을 완전히 펴고 다른 손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서 표현)을 표현했다고 하자. 일본 사람은 6으로 이해할까. 아니다. 15 로 읽는다. 우리식으로 7을 표현해도 마찬가지다. 7은 25가 된다. 일본은 다섯까지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손가락 숫자를 센다. 6부터는 다르다. 6은 편 손바닥에 다른 손가락 하나를 댄다. 7은 2개, 8은 3개, 9는 4개, 10은 5개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10까지 셀 수 있지만 일본은 훨씬 많은 숫자를 표현할 수 있다. 단 주의할 게 있다. 엄지를 구부리고 나머지 손가락을 펴서 표현하는 4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욕설이다.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워낙 넓은 땅에 여러 민족이 어울려서 산다. 지방마다 말이 다르다.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특히 숫자는 돈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숫자는 정확성이 요구된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현해 왔다. 손가락 숫자는 중국 어디서나 공통이다. 이를 슈지슈유쉬(數字手勢)라고 한다. 중국은 한 손으로 열까지 센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복잡하다. 1은 검지, 2는 검지와 장지, 3은 장지, 약지, 소지를 편다. 4와 5는 우리와 같다. 6은 엄지와 세끼 손가락만 접는다. 우리가 전화의 의미를 전할 때 하는 손동작과 같다. 이 손동작은 젊은 중국인이 사진 찍을 가장 많이 취하는 포즈다. 6은 유(流)와 같은 발음이 난다. 流는 ‘미끄러지듯 잘 나간다’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6을 뜻하는 손동작을 하면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다고 여긴 것이다. 카톡이나 SNS를 할 때 ‘666’(리우리우리우)이라고 써서 보내기도 한다. 이를 ‘젠방(眞棒)’이라고 한다. 우리의 ‘대박’과 같은 의미다. 하지만 중국식 6을 표현하는 동작을 유럽인에게 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외설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모양을 한 손을 얼굴 가운데 대면 상대방의 어머니가 몸을 파는 여성이라는 험담이 된다. 특히 조심해야 한다. 7은 엄지, 검지, 장지를 모으고 나머지 두 개 손가락은 접는다. 마치 새 모양이다. 8은 가위바위보에서 가위(엄지와 검지만 펴고 나머지 손가락은 접는다), 9는 검지만 펴서 오므리고 나머지 손가락은 접어 갈고리 모양을 낸다. 10은 주먹이다.
▲ 손동작으로 표현하는 예법
우리는 감사의 표현할 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게 보통이다. 혹은 감사를 표시해야 할 사람이 손아래라면 엄지를 세워서 보여준다. 그 외에는 특별히 손동작으로 예의를 차릴 일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다양한 ‘손동작 예법’이 있다.
중국인은 악수할 때 손을 꼭 잡는 것은 실례로 여긴다. 가볍게 손을 잡고 흔들면 된다. 악수야 만국 공통어다. 악수가 보편화되기 전 악수와 같은 개념의 손동작이 있다. 한 손은 주먹 쥐고 다른 손으로 주먹을 포갠다. 이를 포권지례(捕拳之禮)라고 한다. 주먹은 태양(日)을, 감싼 손은 달(月)을 뜻한다. 해(日)와 달(月)이 만나면 밝을 명(明)이 된다. 명은 명나라를 뜻한다. 즉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권력이 바뀔 무렵 한창이던 반청복명(反靑復明) 운동에서 시작된 인사법이다. 이것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의 서열 3위인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회 상무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일이 자오러지를 배웅하면서 중국식 인사를 하는 모습이 한국 언론에 소개됐다.
중국인은 차를 좋아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차를 내면 아랫사람은 감사의 표시를 한다. 주먹으로 탁자를 가볍게 친다. 동년배에게 차 대접받으면 검지와 장지만으로, 아랫사람으로부터면 검지 하나로 탁자를 세 번 친다. 이것은 차를 내준 사람에게 대한 존중의 표시이다.
일본 사람이 가장 흔하게 하는 제스처가 있다. 기도 손을 얼굴 위로 올리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는 행동이다. 무엇인가 부탁이나 사과할 때 사용하는 손 인사다. 이 손동작은 손아랫사람만 하는 게 상례다. 또 음식을 먹기 전과 후에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 음식을 잘 먹겠다, 잘 먹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기도할 때는 가슴에 기도 손을 하고 얼굴 위로 올리지 않는다.
일본 사람은 많은 사람 가운데를 지나가야 할 때는 손을 펴서 세운다. ‘미안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대신하는 동작이다. 단 여자는 이런 제스처를 잘 취하지 않는다. 아부 표현도 있다. 주먹으로 다른 손 손바닥을 두드리는 행동을 고마쓰리(胡麻擂り)라고 한다. 아부하거나 알랑거릴 때 사용한다. 잘 모르는 것을 알았을 때, 아니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도 이런 손동작을 한다. “아, 그렇구나(なるほど)의 뉘앙스라고 할 수 있다. ‘무릎을 탁 치게 한다’라는 관용어를 일본인은 손동작으로 하는 셈이다.
▲ 오해하기 쉬운 손동작들
세계에 어느 나라든 돈으로 표현하는 핸드 사인이 있다. 우리는 엄지와 검지를 오므려 동그란 모양을 만든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의미가 다르다. 우리는 돈이라는 보통명사다. 일본은 ‘동전’만을 뜻한다. 중국 손바닥을 편 채 다른 손의 손가락을 모두 붙인 경우가 돈이다. 돈을 요구하는 표현은 다르다. 다섯 손가락을 다 모아 위로 향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시비를 유발하는 손동작이 있다. 삿대질이다. 손가락으로 총 쏘는 모습을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폭행으로 간주한다. 법원의 판결까지 났다. 일본에서도 손가락질하는 모양을 하면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일본에서 이런 행동은 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할 때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점원에게 계산해달라고 요구할 때 하는 행동이다. 중국에는 검지로 자기 손바닥을 찌르면 하던 일을 잠시 중지하라는 사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약속을 의미할 때 새끼손가락을 내놓거나 거는 모양을 한다. 중국에서는 약속의 의미를 심장에 손을 대는 것으로 표현한다. 약속을 다짐하는 맹세는 새끼손가락으로 엄지를 누르고 나머지 세 개 손가락을 반듯하게 펴는 모양을 만든다.
한국에서 새끼손가락은 여성 애인이나 여친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다소 중립적 의미가 있다. 새끼손가락이 여성 모두를 대표한다. 남성은 엄지를 들어 표시한다. 중국에서 새끼손가락 펴는 행위는 사소한 일과 물건 혹은 사람을 뜻한다. 꼴찌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우리는 날씨가 몹시 더울 때 손바닥으로 부채질한다. 일본에서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라는 의미다.
검지로 가자. 일본에서 검지로 코를 가르치면 ‘나’라는 의미다. 손바닥이 바깥으로 향하게 V자 모양을 하면 우리가 주먹 쥐고 팔을 흔드는 의미와 같다. 화이팅이다. 일본식 표현으로 간바레, 화이토가 될 것이다. 주로 사진을 찍을 때 이런 손동작을 자주 한다. 이때는 행복하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중국에서는 손등이 보이게 하고 양손의 새끼손가락을 구부리면 행운을 빈다, 동의한다는 뜻이 된다. 중지와 엄지로 원을 만들고 턱을 괴었다가 볼을 긁으면 부끄러운 줄 알라라는 뜻이다.
우리는 ‘안 된다’라는 의리를 손바닥을 펴고 팔을 흔든다. 일본은 팔로 X자를 그린다. 일본에서는 손바닥을 폈다가 오므리기를 반복하는 손동작이 있다. ‘너는 말뿐이야, 입만 살아있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