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 부호들, 김치에 매료되다
뉴욕 롱아일랜드 햄프턴은 미국 초호화 주택가다. ‘숲속의 지상낙원’으로 불린다. 뉴욕 부유층이 가장 즐겨 찾는 휴가지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해 최근 이 지역의 새로운 명물이 소개됐다. 바로 ‘김치 치즈 크루아상’이다. 월스트리트는 “한 햄프턴의 제과점에서 1개에 8.5달러(1만 7,000원)에 팔린다”라면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뉴욕 부유층에게 별미가 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치의 인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김치는 건강 음식의 아이콘이 됐다. 김치는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었다. 전 세계인이 고유의 김치맛을 즐긴다. 또 김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결합, 상상 못했던 ‘김치 콤보 음식’, ‘김치 퓨전 음식’이 탄생하고 있다. 햄프턴의 명물이 된 ‘김치 치즈 크루상’,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선보인 김치아이스크림 등이 그것이다. 특히 ‘김치 치즈 크루아상’은 현지인에 의해 재해석된 김치의 맛이 미국의 최고 부자 동네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이 아니다. 김치는 세계 음식 강국의 대표 음식과도 만난다. 멕시코 퀘사디아(전병), 포르투갈 에그타르트(파이), 이탈리아 아란치니(주먹밥)가 김치의 매콤한 맛과 융합했다. 그렇게 해서 전혀 풍미가 다른 ‘김치퀘사디아’, ‘김치에그타르트’, ‘김치아란치니’ 등이 만들어졌다.
김치는 절인 음식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어느 나라나 절인 채소 음식은 있다. 독일의 샤워크라프트(양배추), 프랑스의 코니숑(오이), 멕시코의 할라페뇨(고추) 등도 잘 알려진 절인 채소 음식이다. 중국에도 채소를 절인 파오차이(泡菜)가 있다. 쓰촨 지방의 음식이다. 만드는 법이 우리 김치와 유사하다. 무와 배추를 소금에 절인다. 고춧가루도 들어간다. 김치와 차이라면 물기 없다는 점이다. 쓰촨 지방의 여름이 덥고 습하다. 물기가 있으면 채소가 물러진다. 일본에는 오싱고가 있다. 무, 오이, 배추 등을 재료로 한 채소 절임을 통칭하는 말이다. 기무치(일본식 김치)도 오싱고에 포함된다. 기무치는 우리 김치에서 매운맛을 빼고 만든 일본식 김치다. 오싱고 역시 국물이 없는 게 특징이다. 김치와 파오차이, 그리고 오싱고의 차이는 국물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김치, 중국의 파오차이, 일본의 오싱고의 차이는?
그렇다고 파오차이와 오싱고를 ‘국물 없는 김치’라고 규정할 수 없다. 국물의 유무는 곧 요리 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절인 뒤 물을 빼고 양념에 버무리려 김치를 담근다. 그리고 발효시킨다. 발효과정에서 절인 배추와 무가 삼투압 작용을 한다. 그 과정에서 머금은 물기를 내놓는다. 그렇게 해서 국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소금에 절인 채소의 물기를 아예 제거한 뒤 저장한다. 이것이 김치와 다른 나라의 절임 음식의 본질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의미는 김치, 파오차이, 오싱고는 전혀 다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파오차이와 오싱고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짠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중·일 세 나라는 김치의 종주권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우선 역사 논쟁이다. 쓰촨 사람은 ‘파오차이의 기원은 기원전이라고 주장한다. 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역사가 깊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김치가 파오차이의 표절 음식이라는 얘기가 된다. 중국 정부도 2010년 파오차이를 ‘국가농산품지리표시보호식품’을 지정, 파오차이를 중국 브랜드화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탐원공정과 유관하다. 탐원공정은 동북공정과 대응한다. 동북공정은 중국 주변 국가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중국 정부의 프로젝트다. 탐원공정은 주변 국가의 다양한 문화의 원천을 중국에 있다고 주장하는 문화예속화 작업이다.
일본도 김치 논쟁에 끼어들고 있다. ‘김치에서 고춧가루를 빼면 오싱고이고 오싱고를 고춧가루에 버무리면 김치’라는 해괴망측한 주장을 하고 있다. 오싱고가 김치라는 억지인 셈이다. 그것은 김치의 유래를 돌아보면 왜 억지라고 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김치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오늘날 김치의 형태를 갖춘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임진왜란 이후다. 그 이전의 김치는 순무 장아찌나 배추절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짠지였다는 얘기다. 임진왜란 때 고추가 들어왔다. 절인 음식에 고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100년이 흐른 뒤 오늘날의 형태를 갖춘 김치가 된다. 1715년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 배추와 무를 고추에 버무린 김치가 소개된다. 그로부터 50년 뒤인 1766년 발간된 《증보산림경제》에는 41가지의 김치가 수록되어 있다. 18세기 중엽에 와서 김치 다양화가 진행된 것이다. 최근 조사된 김치의 종류는 무려 336가지다. 이를 재가공해서 먹는 음식도 50여 종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전해진 고추, 김치의 혁명을 낳다
중국은 절음 음식은 저(苧)라고 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의하면 ‘苧’를 설명하면서 ‘고구려인은 젓갈과 절인 음식을 잘 만든다’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어제부터가 우리 고문서에서는 ‘苧’가 ‘지(漬)’로 바뀐다. ‘漬’가 우리의 절인 음식이 된 것이다. 그것은 절인 음식이 중국과 다른 형태로 발전했음을 알려준다. 漬를 한자로 표기할 때는 ‘沈菜(심채)’였는데 이것이 딤채→ 김채로 변했다. 나중에 김치로 바뀐 것이다.
김치를 김치답게 만든 재료는 역시 고추다. 그것은 임진왜란 뒤에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그렇다면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와 무는 언제 한반도에 들어왔을까. 무는 한나라 때 한사군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무는 별명이 있다. ‘무후(武侯)의 채소’ 혹은 ‘제갈채(諸葛菜)다. 그것은 제갈량이 순무를 군용음식으로 사용한 데 유래한다. 제갈량의 시호인 무후(武侯)라는 관직을 받은 이유도 이 순무를 통해 병사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한 것이다. 순무는 특히 겨울철에 절인 음식으로 먹었다. 한반도에 들어올 때는 한나라 말기다. 우리나라도 무를 ‘흙에서 나는 인삼’이라는 의미로 ‘토인삼(土人蔘)’이라 불렀다. 음식 재료라기보다는 약재로 본 것이다. 《국조보감》에 따르면 몸에 열이 많았던 정조는 세손 시절에 생무를 상식했다. ‘무가 있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 ‘무 장수는 병이 없다’라고 했다. 그만큼 건강에 좋은 ‘약물’로 여긴 것이다.
배추는 허베이성이 원산지다. 배추는 채소의 왕으로 모신다. 청나라 때 쓰인 《소식설략》에 ‘모든 채소의 왕’이라고 적고 있다. 백 가지의 채소가 배추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배추는 무보다 훨씬 뒤에 한반도에 들어왔다. 고려 시대다. 고려의학서인 《향약구급방》에 처음으로 배추라는 단어가 나온다. 경기도 지방에서 재배해서 4, 5월에 진상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말까지도 흔한 음식 재료는 아니었다. 무와 마찬가지로 약재로 쓰였다. 대중적인 음식 재료가 된 시기는 100여 년 전이다. 속이 꽉 찬 결구배추(산둥 배추)가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렇다고 산둥 배추를 지금과 같은 배추로 생각하면 안 된다. 마치 잎새가 많이 달린 시금치를 생각하면 된다. 산둥 배추를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가 1950년대 우리 토양에 맞는 종자로 개발, 오늘날의 배추가 된 것이다.
익은 김치 젖산균, 요구르트보다 4배나 많아
김치의 위대성이 바로 발효에 있음은 누구나 안다. 일본이 2000년에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 ‘기무치’를 발효식품으로 신청했다. 기무치는 쉽게 말하면 한국의 김치를 일본화한 맵지 않은 일본식 김치다. 이것이 일본 음식으로 상업화됐다. 일본의 최초 기무치 브랜드는 ‘모란봉 김치’였다. 일본에 거주하는 우리 교포가 주요한 소비자였다. 당연히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일본인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것을 일본화한 게 기무치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겉절이 같은 것이었다. 일본이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 발효식품 신청 사실을 안 한국도 뒤늦게 일본을 따라 같은 해 같은 기관에 발효식품 신청을 했다. 결과는 한국 승리였다. 기무치는 부적격, 김치는 적격판정을 받았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갔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섞어 숙성시킨 음식’의 이름을 ‘김치’로 규정했다. 숙성되지 않은 기무치에서 추출된 젖산균은 김치의 166/1에 불과했다고 한다. 1ml 당 젖산균이 무려 1억 마리가 있다. 요구르트보다 4배나 많단다. 젖산균은 바로 발효과정에서 만들어진 인간에게 유익한 균이다.
김치의 의학적 효능에 관한 연구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항암 효과, 다이어트 등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쥐나 돼지 등을 이용한 임상실험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는 보도가 종종 나왔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의학계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물질’이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