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 물리치는 한중일 복달임 음식
지난 7월 25일. 더위가 가장 극성을 부린다는 중복이다. 복날답다. 행정안전부로부터 폭염특보가 발효 중임을 알리는 안전 문자가 연신 날아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흥건한 땀이 밴다. 만사가 귀찮다. 뜨거운 삼계탕 한 그릇을 먹고 싶다.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은 삼복더위에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보양(補陽) 음식을 먹었다. 이런 풍습은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秦) 덕공이 복날을 정하고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라는 기록이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2,700여 년 전에는 더위도 ‘악귀’였다. 무더위로 건강을 잃고 쓰러지는 백성이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제물로 바친 개를 끓인 개장국으로 백성의 원기를 북돋우어 줬다고 한다. 이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다.
개장국의 역사는 2700년 전부터 시작됐다
중국에서는 복날을 푸티안(伏天)이라고 한다. 개고기를 제물로 바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희생물을 바친다는 의미의 ‘드릴 헌(獻)’자를 파자(破字)해보자. 鬲(솥 력)+犬(개 견)이다. 개를 솥에 넣어 삶는다는 의미다. 푸티안은 제물로 개를 바친 데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인은 개고기를 상리유(香肉)이라고 한다. ‘향기 나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북한도 ‘단고기’라고 한다. 개고기는 인기 있는 대중적 음식이다. 하지 무렵에 중국 곳곳에서 개고기 축제가 열렸다. 가장 유명한 게 산시성 위린시의 개고기 축제다. 축제가 열리는 10일 동안 1만 마리의 개를 도살한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개고기를 또 ‘상리유(三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향육과 발음이 똑같아 그렇게 부른다. 개고기 요리책인《상리유징 (三六經)》에 의하면 一黃, 二黑, 三化, 四白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개의 털빛에 따른 맛의 순위를 매긴 것이다. 진열된 개고기의 꼬리털은 남아 있다.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중국 북부지방은 개고기를 복달임으로 치지는 않는다. 복날 음식과 관련된 속담에서도 개고기는 빠져있다. “초복에 만두, 중복에 국수, 말복에 전병”이라는 중국 북방의 속담이 있다. 모두 평상시에도 즐기는 음식이다. 특별한 보신 음식으로 보기는 어려운 밀가루 음식이다.
사람의 몸은 습기가 많고 비가 잦은 여름엔 체온이 떨어진다. 체온이 1도만 낮아져도 면역력은 크게 저하된다. 스트레스에 민감해진다. 이런 기후 환경은 두뇌에 영향을 미친다. 체온조절 장치인 시상하부를 자극한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을 요구한다. 만두, 국수, 전병 등 밀가루 음식은 혈당을 높여 준다. 높아진 혈당은 체온을 높인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먹고 싶은 것과 같은 이치다. 여름날 밀가루 음식은 몸이 아니라 머리가 원한다.
중국 복날 음식은 만두, 국수, 전병?
또 다른 중국의 복날 음식으로는 뱀 요리가 첫 손에 꼽힌다. 중국인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뱀 요리를 즐긴다. 아주 오래전 산둥성 곡부의 한 호텔 레스토랑을 갔다. 레스토랑 정문 앞에 큰 대야에 뱀과 생선이 담겨 있었다. 깜짝 놀랐다. 곡부는 중국 남부 지방이다. 중국 남부는 아열대 혹은 열대성 기후 지역이다. 정글이 넓게 분포한다. 그런 지역에서 뱀을 먹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중국 남부 지방의 재래시장에 가면 뱀을 손질하는 상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뱀 요리가 있다. 튀기고, 졸이고, 굽고, 볶고, 찌는 요리 방법 모두가 동원된다. 가장 유명한 뱀 요리는 산쉬갱(三蛇羹)과 룽우더우(龍虎斗)다. 산쉬갱은 살모사로 끓인 탕 요리다. 룽우더우는 뱀과 고양이로 만든 광둥성의 국물 요리다. 롱우더우는 마오쩌둥이 1954년 흐루쇼프의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대접한 요리다. 흐루쇼프는 이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이때부터 생겼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뱀 요리를 먹지 않는 사람을 위해 배려한다. 국화 꽃잎이나 월계수 잎으로 장식, 뱀 요리임을 알려준다. 더우장(豆醬)은 두유를 얼려서 먹는 차가운 음식이다. 우리의 콩국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상술과 접목된 일본의 복달임 음식
일본의 복날은 ‘개의 날’이 아니라 ‘소의 날’이다. 서양식 별자리로 날짜를 따져서 그렇다. 우리의 중복과 비슷한 시점이다. 중복 즈음해서 장어를 먹는다. 장어가 복달임이 된 데는 상술이 작용했다. 어떤 상인이 장어가게를 열었다. 장사가 되지 않았다.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일본인이 기름진 장어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마침 일본 과학자인 히라가 겐나이가 이 가게를 찾았다. 주인이 “대박 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가 “‘여름 더위를 이기는데 장어만 한 게 없다’라고 선언하라”라고 일러줬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히라가가 “여름 더위에 지친 몸에는 장어가 최고”라고 적힌 《만엽집》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소멘(素麺)과 히야시추카(冷やし中華)도 일본의 대표적 여름 음식이다. 소멘은 우리의 잔치국수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차가운 육수에 담가 먹는 게 차이가 난다. 일본에서 소멘이 복달임이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본에는 7월 15일부터 8월 15일 사이에 신세 진 사람이나 친지와 친척에게 선물을 보내는 관습이 있다. 이를 오츄우겐(お中元)이라고 한다. 오츄우겐의 선물로 가장 인기가 좋은 게 바로 소멘과 김이다. 이 시기가 일본에서는 가장 덥다. 이즈음에 먹는 나가시소멘(流し素麺)은 일품이라고 한다. 나가시소멘은 차가운 육수와 소멘이 흐르는 대나무에서 젓가락으로 소멘을 거져 먹는 ‘독특한’ 요리다. 히야시추카는 일본식 냉 중국식 소바다. 차가운 육수에 소바를 넣고 오이, 계란, 햄 등 각종 고명을 얹어 먹는 요리다. ‘추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중국에서 전해진 음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중국식 일본 요리다.
우리 속담에 ‘복날 개 패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심하게 때리는 모습을 말한다. 복날에 사람의 몸보신을 위해 무자비하게 수난당하는 개가 연상된다. 어떻든 우리나라는 개고기를 식용하는 나라로 낙인찍혔다. 특히 유명 동물애호가로부터 많은 ‘동물학대국’이라는 비난받았다. 이제 그런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된다. 지난 1월 식용을 위한 개 도축 금지법이 통과됐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장 오래된 유물은 4세기경 고구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황해도 안약 고분 3호 벽화에 도살된 개의 모습이 보인다. 《고려사》에도 개고기 식용에 관한 언급이 있기는 하다. 세 번이 전부다. 고려가 육식을 금한 불교국가임을 고려할 때 보편적인 개고기 식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음양의 조화를 찾는 복달임 음식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조선의 양반들은 개고기를 좋아했다. 공자가 개고기를 즐겼다는 기록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조선 500년 내내 그런 흐름이 이어졌다. 정약용은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개고기를 먹을 것을 권했다. 또 박지원은 개고기 요리법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의 개고기 식용을 소개한 클로드 샤를 달레 선교사의 《조선교외사》에서도 ‘조선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는 개고기’라고 적고 있다.
왜 조선에서 개고기 인기가 대단했던 것일까. 그 대답은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나와 있다. 복날의 ‘伏’이란 음기가 장차 일어나고자 하지만 남은 양기에 압도되어 상승하지 못한다는 뜻이라면서 ‘복날 개고기를 먹으면 음기와 양기의 조화를 이룬다’라고 적고 있다. 개고기가 대표적 양기 음식이라는 얘기다. 음양 조화를 이루는 게 가장 건강한 몸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그런 분위기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 개고기 먹는 국회의원의 사진이 신문에 게재될 정도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점차 삼계탕, 육개장, 낙지, 장어 등으로 대체되어 갔다.
우리나라와 중국·일본의 복날 음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는 삼계탕, 육개장, 개장국 등 ‘뜨거운’ 탕 요리를 즐긴다. 반면 중국과 일본의 복달임 음식은 찬 밀가루 음식이 주를 이룬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우리는 보양(補陽), 즉 기를 보양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체온이 일시적으로 오른다. 오히려 그것이 땀을 흘리면서 체온을 조절하고 더위를 이기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더운 여름에 시원한 음식’이라는 실용적 사고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