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에 ‘집단 패션 테러’가 발생하다

2024-08-11     김경은 칼럼

무더위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덥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른다. 패션 전문가가 추천하는 ‘무더위 패션’이 궁금하다. 의외다. ‘더울수록 벗지 말고 입는 패션’을 제안한다. 간편한 옷을 입더라도 개성과 감각을 사리라는 얘기다. 사실 여름에 패션 센스를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옷거리가 받쳐주지 않는 사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패테(패션 테러리스트) 몸매’가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상반신을 드러내는 행위를 ‘광방즈(光膀子)’, 웃통을 벗고 다니는 중년 남성을 ‘방예(膀爷)’라고 부른다. ⓒ블러그 갈무리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중국인이다. 특히 여름철 중국 남성의 차림은 패션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하다. 웃통을 벗고 다니거나 웃옷 자락을 말아 올리고 다닌다. 빈약한 상체와 불룩한 배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처럼 상반신을 드러내는 행위를 ‘광방즈(光膀子)’, 웃통을 벗고 다니는 중년 남성을 ‘방예(膀爷)’라고 부른다. ‘膀’은 ‘드러낸 어깨’라는 뜻이다. 즉 상반신 노출 상태다. ‘爷’는 우리식으로 해석하면 ‘노친네’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안하무인인 사람이나 유유자적하는 사람을 ‘爷’라고 칭한다. 아무래도 외국인의 눈에 ‘광방즈’나 ‘방예’는 이색적이다. 서양에서는 웃옷 자락을 올려 배는 내놓고 가슴을 가린 ‘꼴불견 패션’을 보고 ‘베이징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롱이다. ‘문화 대국’을 지향하는 중국 정부에서도 골칫거리로 여겼다. ‘맨살 패션’을 규제했다. ‘원밍추싱(文明出行·문화인다운 행동)’이라는 캠페인도 병행했다. 국가이미지 실추를 막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캠페인은 성공을 거두었다. 적어도 중국 대도시에서 ‘상의 탈의’는 철 지난 패션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최근 ‘집단 패션 테러’가 일어났다. 세계 3대 맥주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칭다오 글로벌 맥주 축제’에서다. 정작 축제의 화제는 맥주가 아니었다. 남성의 노출 패션이었다. 맥주 축제장이 벗은 남성 때문에 ‘바캉스 패션장’이 됐다. 특히 초록색과 살색이 상징인 ‘칭다오 1903관’은 ‘방예의 세상’이었다고 전해진다. 나이 불문하고 웃통을 벗고 축제를 즐겼다고 한다. 물론 특별한 행사에서 벌어진 ‘광방즈 패션’을 두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꼴불견 패션’이 용납되는 사회적 풍토가 궁금하다.

중국인에게 배는 복과 건강의 통로  

필자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오래전의 경험 때문이다. 2002년이었다.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한여름에 중국 상하이 황푸구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에 취재차 갔다. 황푸구는 상하이 구시가지다. 관청과 상가, 관광 시설이 어우러진 명실상부한 상하이의 중심이다. 골목 안에 있는 임시정부청사 주변에는 낡은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 주민이 필자의 일행을 맞았다. 수십 명의 주민은 옥상과 베란다, 창문 등으로 몰려나왔다. 신기한 볼거리를 만난 듯했다. 정작 구경거리는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 남성이었다. 남성들의 차림이 가관이었다. 한결같이 ‘자연인 패션’이었다. 배를 까거나 가슴을 드러낸 차림이었다. 심지어 흰색 삼각 팬티차림으로 당당하게 팔짱을 낀 남성도 여러 명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 일행을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이런 모습은 당시 중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아니 여름에는 웃통을 벗고 사는 게 생활방식이었다.

벌거숭이에게 실용과 체면의 차이는?

사실 중국에서 남성이 웃옷을 벗는 행위는 오래된 관습이다.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서예가 왕희지는 ‘벌거벗은 사위’로 유명하다. 태위(군사 재상) 치감과 승상인 왕도 사이에 혼담이 오갔다. 치감은 심부름꾼을 시켜 왕도 자제의 됨됨이를 살폈다. 왕희지의 형제와 사촌은 치감의 눈에 들기 위해 평소와 다른 옷차림과 행동을 했다. 왕희지는 배를 드러내놓고 누운 채 떡을 먹는 등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치감은 망설이지 않고 사윗감으로 왕희지를 택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고사가 바로 탄복동상(坦腹東床)이다. ‘배를 드러내고 동쪽 평사에 눕는다’라는 의미로 ‘이상적 사위’를 뜻한다. 과연 배를 드러내놓고 벌거벗은 모습에 좋은 점수를 줄 만할까. 그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당당한 모습에 반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고사는 꽤 많다.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블러그 갈무리

중국인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편하면 그만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광방스 패션에도 내재한 것이다. 여기에 복을 추구하는 중국인의 생활방식도 영향을 미쳤다. ‘복(腹)’과 ‘복(福)’의 발음이 같다. 배를 드러내는 게 일종의 구복 행위라고 믿는 것이다. 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민간요법도 배를 드러내는 데 거부감을 없앴다. 배를 노출하면 여러 가지 병의 원인이 되는 복열(伏熱)을 낮춘다고 여겼다.

일면 납득간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중국은 체면의 나라다. 어느 나라 사람보다 체면을 중시한다. 그런데 왜 웃통을 벗고 다니는 것은 체면에 손상되지 않는 것일까. 중국 남성은 체면을 위해 살고 여성은 체면을 위해 죽는다고 한다. 체면을 목숨만큼 중시한다는 의미다. 중국어로 ‘정상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부두이(不對)다. 직역하면 서로 마주하지 않는 사이라는 뜻이다. 즉 체면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먼’ 관계다. 모르는 사람과 만날 때는 옷을 벗고 다니든 잠옷을 입고 다니든 상관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현대 중국인의 패션 특성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허름한 옷 속에 금 단추’가 그것이다. 《이중톈, 중국인을 말한다》는 “중국인은 독특하고 튀는 차림을 반대하고 혐오한다”라면서 “독특한 차림은 비난, 혐오, 질투의 대상이 된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독특한 개성과 자유분방한 감각이 오히려 체면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겉옷에서 속옷으로 변한 훈도시

중국에 ‘광방즈’과 대비는 일본의 패션(?)은 무엇일까. 아주 오래전의 훈도시가 아닐까. 훈도시 입은 남성을 축제나 스모 경기장에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훈도시가 독립된 속옷으로 인식된 것은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겉옷이었다. 주로 노동자의 작업복으로 쓰였다. 일본 <훈도시협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메이지유신 직전까지 훈도시는 남자의 작업복과 같은 역할을 했다. 겉옷이 속옷으로 개념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훈도시를 겉옷으로 입었다면 적어도 노출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얘기일까. 그의 대답은 요네하라 마리가 쓴 《팬티의 인문학》이 명쾌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는 신체 관련 수치심과 관련해 “수치심 때문에 알몸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알몸을 감추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일본인도 훈도시 차림의 활보를 부끄러워했다. 조선통신사는 일본에 12차례 다녀왔다. 조선인의 행차 때마다 대마도 바쿠후는 주민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렸다. 그중 하나가 바로 훈도시 차림으로 다니지 말라는 것이었다.

“훈도시는 일본식 옷에 최적인 남성용 옷이다.”

팬티의 인문학

《팬티의 인문학》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의 말이다. 그는 “훈도시는 습기가 많은 일본 기후 풍토에 적절한 옷”이라면서 “그 기능성과 착용감은 다른 옷에 없는 독특한 장점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일본은 일년내내 고온다습한 나라가 아니다. 4계절 뚜렷한 아열대성 기후를 가진 나라다. 그렇다면 한 겨울에도 ‘지금의 속옷’인 훈도시만 입었을까.

하지만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인의 훈도시 애착을 단지 기후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요네하라 마리도 《팬티의 인문학》에서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른바 선진 문명은 모두 북방에서 일본 열도로 들어왔다”라고 인정했다. 그는 일본인이 훈도시에 집착하는 근거가 북방 문명에 대한 콤플렉스라는 얘기다. 훈도시는 남방에서 전파된 문화다. 히구치 기요유기는 《일본의 성》에서 훈도시를 “동남아시아 계통의 의복”으로 규정했다.

훈도시는 기모노에 최적화된 의복?

훈도시를 ‘지금의 속옷’이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겉옷으로 사용되던 게 속옷으로 개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훈도시를 독립된 속옷으로 인식한 것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는다. 그 이전에는 에도시대의 풍속화를 보면 훈도시를 당당히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으로 봐서는 적어도 에도시대까지 훈도시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의상은 아닌 것 같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인은 훈도시를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애착을 갖는다. 일본 사람은 훈도시를 “일본식 옷에 최적인 남성용 속옷”이라고 말한다. 습기가 많은 일본 기후 풍토에 적절한 속옷이라는 얘기이다. 이런 자부심은 다양한 이벤트로 표출됐다. 일본훈도시협회는 매년 2월 14일을 ‘훈도시의 날’로 제정했다. 이날을 기념해서 ‘베스트 훈도시스트 상’을 수여한다. 지난 2015년에는 여성 성우인 니시 아스카가 이 상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속옷 브랜드인 와코루는 지난 2008년 남자 속옷인 훈도시를 에로틱하게 디자인한 ‘나나훈’이라는 여성용 훈도시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여성의 호응이 커서 ‘T-팬티의 시대는 가고 훈도시 시대가 왔다’라는 얘기가 돌 정도다.

훈도시 얘기를 하면 하다카 마쓰리를 빠뜨릴 수 없다. 하다카 마쓰리는 알몸축제, 아니 훈도시 축제다. 훈도시는 축제에 참여한 젊은 남성에게는 행운의 기물이다. 남성은 축제에서 자연스럽게 능력과 힘을 과시하는 기회를 얻었다. 기회란 젊은 여성으로부터 관심 얻기다. 이에 성공한 젊은이에게 특별한 선물이 수여된다. ‘사다리’가 그것이다. 축제가 끝나는 날 밤, 과년한 자녀를 둔 부모는 딸이 머무는 2층 방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아둔다. 축제에 참여한 사내는 부유한 집이나 점찍어둔 처녀의 집을 골라서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젊은 남자에게 마을 처녀와 밀회가 허용된 것이다. 히구치 기요유키는 《일본의 성》에서 이런 일련의 행위에 대해 “훈도시는 축제 때 성행위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옛이야기다.

한국은 속칭 ‘벗는 문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의 브래지어를 ‘허리띠’라고 불렀다. ‘가슴가리개’라는 표현조차 천박하게 여겼다. 가슴을 가슴이라고 부를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런 사회에서 감히 발을 드러내는 것조차 손가락질 대상이 됐다. 문화로서 ‘노출 패션’이 존재하기 어려웠다. 남성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