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정치적 타살은 없어야 한다
자살률 세계 최고인 나라, 대한민국. 한 해에 1만 5,0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국은 ‘자살 공화국’, 자살은 ‘대한민국 병’이 됐다. 자살이 국가적 재앙이라는 얘기다. 자살에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일까. 둔감해졌다.
유명연예인이나 명사의 자살 소식조차도 떠들썩한, 지나가는 얘깃거리가 되고 만다. 에밀 뒤르켐은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했다. 자살의 원인을 제공한 사회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그 수많은 사람이 죽음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깊이 새기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8일 또 하나의 부고가 전해졌다.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K씨)의 극단적 선택이었다. 그의 죽음은 우리가 흔히 보던 가난, 죄의식, 관계, 질병과 같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가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죽음에 초연할 수 없다. 비리 혐의를 받던 고위공직자의 선택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권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권익위는 지난 6월 10일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권익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해 ‘청탁금지법의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종결처리가 9표, 검찰 이첩과 송부가 6표였다. 이 결정으로 큰 정치적 논란이 일었다. 국민권익위가 아니라 ‘건희권익위’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권익위도 극심한 내홍에 빠졌다. 최정묵 비상임위원이 사퇴했다. 언론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익위 결정 중심에 K 국장이 있다. 실무 총책임자였다. 부패방지국은 청탁방지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리는 부서다. K 국장은 유권해석의 최종 승인자다. 그의 결정은 ‘반부패 총괄기관’인 권익위의 존재 이유를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권익위 결정에 실무책임자로서 적지 않은 심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불길한 추측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유서 일부가 유족에 의해 알려졌다. “양심에 반해 괴롭다. 권익위 수뇌부에서 사건을 종결하라고 밀어붙였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라는 게 그 내용이다. 그의 선택은 결국 소신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측된다.
수사가 진행 중이다. 자살 원인이 밝혀질 것이다. 그 결과를 현 단계에서 단정할 수는 없다. 또 그의 죽음을 미화해서도 안 된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그저 유서와 통화 내용 등으로 자살 이유를 유추할 뿐이다. 유서와 정황증거 역시 결정적 단서는 되지 못한다. 여러 알리바이 중 일부일 뿐이다. 그렇지만 ‘김건희 명품백 사건’과 관련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 의심이다. 저항목적의 자살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유형은 자살자 본인이 현상 타개를 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감당할 수 없는 부당한 압력이 작용하는 게 보통이다. 목숨으로 자신의 신념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최후의 선택을 한다는 얘기다. 동료와 나눈 카톡 내용에서도 “내가 부정당한 느낌”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어떤 외부의 압력이 있던 것일까.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권력’이라는 거대한 배후다. 공무원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전체회의의 내용이 이를 방증한다. 결정 요지는 간단하다. 김건희 여사는 청탁금지법에 대통령 배후자에 대한 제재 처벌 조문이 없다는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은 물품 제공자가 외국인이어서 법령상 대통령이 신고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검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대통령 부부를 청탁금지법의 적용받지 않는 ‘유일한 열외’가 됐다.
아무리 법률 해석이 이치에 맞는다고 하더라도 이 자체가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깬 것이다. 만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민주주의 기본을 깨뜨린 법 해석이 이치에 합당할 리도 없다. 청탁금지법의 취지가 배우자 등을 포함한 우회 청탁까지 막기 위한 법률임을 진정 모른다는 말인가.
거기다가 미국 국적의 최재형 목사가 외국인이어서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최 목사가 미국을 대표해서 한국에 온 외국사절이라도 되는가. 속이 보인다. 검찰 이첩과 송치에 반대한 권익위 위원은 ‘김건희 여사 지키기’를 한 것이다. 알량한 법적 지식을 권력 비호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법 기술자다. 법률은 완벽할 수 없다. 맹점이 있게 마련이다. ‘외국인’, ‘배우자 처벌 조문 부재’라는 구멍을 찾아낸 것이다. 법 기술자의 논리와 법 해석이 통용됐다면 ‘국민에게 힘이 되는 권익위’는 절대 될 수 없다. 권익위의 지향대로 나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공동상식이 통하고 억지가 없어야 한다.
정해진 논리를 확인받는 작업도 실무 K 국장의 몫이었던 것 같다. 지인과 나눈 카톡 대화에서 “위에서는 덮으라고 지시해서 어쩔 수 없이 서명받으러 다녔다”, “권익위 모두가 다 종결이란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지인과 나눈 카톡 대화도 있다. 약 한 달 동안 그가 겪어야 했을 심적 고통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어떻든 K 국장은 죽음으로서 자신의 정책적 소신을 피력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신념에 굴종하지 않았다. 이는 부정부패 문제를 다루는 권익위에 보내는 엄중한 경고다. 권력의 하수인을 자임하는 공무원도 비참하게 만들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오작동’으로 국가기관의 시스템이 흔들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줬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가기관은 주인을 위해 존재하고 역할 해야 한다. 그런데 권익위는 권력자를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다. 주객이 바뀐 것이다. 문제는 권익위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익위에서 벌어진 국가 시스템 오류가 동시다발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는 국정 난맥상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렇게 해도 나라가 돌아가는 게 신기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 이런 사례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합법적인 물리력을 보유한 국가기관이 하나같이 구설에 시달리고 있다. 검찰은 최근 ‘하극상’ 논란에 빠졌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이원석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김건희 여사에 대한 ‘비공개 출장 조사’했다. 이 총장이 검찰청 조사 지시를 무시한 것이다. 거기다가 사전 보고도 안 했다. 이 총장에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각 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궁색한 변명이다.
그렇다고 치자. 그럼 이 총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봐주기 수사’를 위한 치졸한 변명이 아닌가. 이 지검장은 이를 문제 삼아 경위 조사를 지시한 이 총장에게 진상조사 연기를 주장했다. 사실상 진상조사 기피거나 거부였다. 과연 ‘남루한 공무원의 영혼’을 보는 듯하다. 휴대전화기까지 경호실에 맡기고 들어간 검찰의 김건희 여사 조사 내용과 결과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황후 조사’라는 비아냥이 틀렸길 간절히 바란다.
경찰은 어떤가. 서울영등포경찰서가 작년 9월 국내로 필로폰 24㎏을 밀수한 말레이시아 마약 운반책 6명을 검거했다. ‘마약과 전쟁’의 큰 성과였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밀수조직단 범행 과정을 세관 직원이 도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런데 세관 직원에 관한 조사가 중단됐다. 외압이 있었다. 서울경찰청 경무관이 영등포경찰서에 전화했다. 특급 승진을 해야 할 수사팀장은 좌천됐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화한 경무관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야권의 공세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화한 것이다. 수사에 개입할 의사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실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당시 김건희 여사 증권계좌를 관리한 ‘오지랖 이종호’가 등장한다. ‘채 해병 사건’의 발단이 된 윤 대통령의 ‘격노’가 떠오른다. ‘경찰판 채해병 사건’으로 의심 사는 이유다.
이들 사건의 중심에는 김건희 여사가 있다. 김건희 여사가 누구든 상관없이 법 규정과 매뉴얼대로 국가시스템이 작동돼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 집행기관이 대상에 따라 규정과 매뉴얼이 달랐다. 그렇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두말할 것도 없다. ‘알아서 길 사람’을 발탁한 인사가 가장 큰 문제다. 유철환 권익위원장은 누구인가. 윤 대통령의 대학 1년 후배다. 대선캠프에도 관여했다. 김태규 부위원장(현 방통위 부위원장)은 대선후보 시절,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 선언했다.
사무처장을 겸하는 정승윤 부위원장은 국무총리실의 행정적 지휘를 받는다. 어쩌면 대통령실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권익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이 총장이 임기를 몇 달 앞두고 ‘김건희 수사’를 지시하자 전격적 인사를 단행했다. 이 지검장이 그때 발탁됐다. 실질적인 검찰의 2인자를 통해 검찰총장을 견제한 것이다. 국가시스템이 흔들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해야 할 판이다.
'권력’은 무섭다. 잘못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잘못을 덮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정권의 결정에는 오류가 없는 것처럼 위장한다. 설령 오류가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정권의 뜻대로 이끌고 가려고 한다. 그것을 돕는 게 바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다. 유 권익위원장, 이 지검장만 있는 게 아니다. 윤석열 정권은 그들보다 더 헷갈리는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했다.
일명 뉴라이트로 불리는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이다. 뉴라이트는 1948년 건국을 주장한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때로부터 수많은 항일 투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을 부정하지는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한 언론인은 “북한 공격으로 격침된 세월호 사건 진상조사를 북한 공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조사 단장을 맡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이런 인사를 본 영혼 없는 공무원은 높은 곳의 사인을 꼼꼼히 챙긴다. 용산 대통령실의 정책 기조나 방향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든 그른 방향이든 고려 상황이 아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시키지 않으면 알아서 비비면 된다. 국익이나 국민의 자존심과는 상관없다.
이를 단적으로 ‘사도 광산 외교 참사’가 보여 준다. 일본 사도 광산이 유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됐다. 한국은 세계유산위원국이다. 위원국 중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없다. 우리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 과정은 이렇다. 우리 외교부는 일본 정부에 ‘강제성’이 드러나는 표현을 요구했다. ‘강제성=불법성’이다. 이는 국제법상 통용되는 의미다.
일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부했다. ‘강제성’을 인정 안 하면 강제로 동원된 노동자는 없어진다. 식민 지배가 정당화되는 것이다. ‘기억의 전쟁’에서 한국은 패배했다. 윤석열 정부에 의해. 우리 정부는 왜 그랬을까. 알아서 긴 것이다. ‘대일관계 개선’이라는 윤 정부의 외교노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국민의 자존심이나 국익은 상관없다. 눈 밖에 나지 않으면 될 뿐이다.
K 국장의 죽음을 다시 생각한다. 이토록 안일하고 무능한 정권의 실체에 실망하고 좌절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할 수 없을까. 정부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통상적 공무원의 넋두리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된다면, 권력 해바라기 때문에 진영 논리가 국가 시스템이 되는 전철만 밟지 않는다면, 그만으로도 그의 죽음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