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재명 연임 대표에게 보내는 고언

대통령의 눈으로 국회 운영을 주도하라

2024-08-19     김경은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다시 당 대표로 당선됐다. 힘이 더 세져서 돌아왔다. 85.4%를 득표했다. 경이로운 득표력이다. 2022년 전당대회(77.77%)보다 훨씬 많은 당원의 지지를 받았다. 연임 반대 명분을 보란 듯이 깨버린 것이다. 이 대표는 24년 전 당시 김대중 민주당 총재에 이어 두 번째 야권 연임 대표다. 

최고 집행기관인 최고위원회의도 완전히 장악했다. 5명의 최고위원 선출 과정은 이 대표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대표에 대한 충성도가 당락을 갈랐다. ‘김건희 살인자’라는 막말로 지지자를 결집한 전현희 최고위원은 일약 2등으로 경선을 마쳤다. 한때 1등이던 정봉주 후보가 한순간에 당선권 밖으로 밀려났다. ‘명팔이 척결론’과 ‘이 대표 대통령 불가론’으로 논란에 휩싸인 뒤다. 투표에 참여한 당원은 정 후보를 이 대표의 전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로 본 것이다. 이 대표에 대한 절대적 신임을 보내는 강성 팬덤. 이들이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를 확인했다. 놀랍고 충격적이다. 1등이 6등(정봉주)되고, 6등이 2등(전현희)이 되는 민주당을 만들었다. 누구든 ‘개딸’에게 낙인찍히면 살아날 방법이 없음을 보여줬다. 

이 대표는 이미 당원중심주의를 표방했다. 당헌·당규를 개정해서 ‘개딸’이 주축인 권리당원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이들은 당내 비판, 이 대표의 도전 세력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실상 당내 토론이 무의미해진다. 전당대회가 이를 잘 보여줬다. 전당대회에서는 의미 있는 다양한 노선도, 토론과 경쟁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이 대표에 대한 충성 경쟁만 있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아니라 ‘이재명 지지대회’가 됐다. 이 대표와 경선을 겨룬 김두관 후보는 “한 사람을 위한 형식적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당이) 집단 쓰레기로 변했다”라고 말했다. 일극 체제를 비난한 것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친명 일색의 지도부는 초강경 대여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이 대표를 위한 ‘집권플랜전략본부장’을, 전현희 최고위원은 ‘수석변호인’을 자임했다. 김병주 최고위원은 “이재명을 국군통수권자로 만들겠다”라고 역설했다. 이재명의 차기 대권을 위해 총대를 메겠다는 얘기다. 대여 공세에 앞장서겠다, 사법리스크 방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충성맹세다. 한결같은 소리다.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당의 활력은 죽는다. 당의 민주성도 보장되지 않는다. 민주성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방성과 포용력을 기대할 수 없다. 개방성과 포용력이 부족하면 권력구조는 폐쇄적으로 변해간다. 폐쇄적 권력이 강해질수록 통제는 어려워진다. 이렇게 ‘이재명 일극 체제’가 공고해져 나갈 것이다. 일극 체제란 친명으로 사당화된 정당을 의미한다. 과거에 이런 유일 체제 정당은 없었다. 그것을 보여준 사례는 전당대회에서 당 강령 전문에 명시한 ‘기본사회’다. 기본사회는 이 대표의 핵심 정책이다. 어떤 정치인의 대표 정책도 당 강령에 삽입한 사례는 없다. 그만이 아니다. 당직 인선에서 계파 안배도 고려하지 않을 생각임을 명확히 했다. “당원중심정당에서 여의도 중심 계파는 의미를 없는 만큼 역량 중심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그의 일극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의미다. 

대권에 욕심이 있는 정치인에게 무엇보다 정당 권력이 중요하다. 정당을 통해 권력을 위임받는다. 정당 당권 장악이 중요한 이유다. 거기다가 1인 체제의 정당이라면, 권력 창출에 필수요건을 갖춘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대표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다. 그해 6월에 있는 지방선거 공천권도 행사할 수 있다. 그이 대선 가도는 탄탄대로인 셈이다. 사법리스크가 변수가 되지 않는다면. 

하지만 이 대표는 일극 체제를 부정한다. 그는 “‘일극’이라는 측면에서 맞는 말일 수도 있고 ‘체제’라는 측면에서는 틀린 말”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자신이 받은 압도적인 지지는 국민과 당원의 바람이라는 얘기다.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을 통해 당내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고 친명 체제를 구축한 당사자로서 할 얘기는 아닌 듯하다. 그래도 믿어주자. ‘일극체제’를 부인한 만큼 이 대표가 스스로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 

일극 체제를 부정하기 위해선 우선 민주당 내에 다양성 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친명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탕평 의지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향후 당직 인선이 주목된다. 얼마나 많은 비명계 인사를 끌어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당선 기자회견에서 “당원중심 정당이 확고해져서 여의도 중심 계파가 의미를 갖기는 어려워졌다”라면서 “안배의 측면도 등한시할 수는 없겠지만, 역량 중심으로 인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팬덤 정치의 부작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대표는 팬덤 지지층을 이용했다. 그가 ‘전략가’라고 치켜세운 김민석 후보가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팬덤에게 노골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팬덤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당당히 1등으로 당선됐다. 정치인 팬덤은 가치와 이념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다. 그저 정치인 개인의 매력을 빠진 사람이다. 정치인과 일체감에서 통쾌감과 기쁨을 느낀다. 한데 팬덤이 정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순수한 지지 표명에 그치지 않는다. 경쟁 정당을 공격하고 당내 경쟁자를 제거하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문제는 팬덤의 지지가 민심으로 포장되어 당략에 이용된다는 데 있다. 4·10총선 과정에서 ‘수박 색출’, ‘수박 거부 운동’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것에서 보듯 극단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정치를 황폐하게 만든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대표는 적극적 팬덤 지지층을 이용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당의 주권은 당원에게 있다”라는 게 그 명분이다. 급기야 당원중심주의를 당 강령에 게재했다. 명분은 직접 민주주의 확대다. 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당권 강화다. 팬덤을 앞세워 견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팬덤을 앞세워 비판의 목소리를 막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를 향해 “팬덤 지지층을 강화하는 게 혁신이냐”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이재명 팬덤 정치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다. 팬덤은 이 대표의 말과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사인을 주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설령 행동에 나섰다고 하더라도 자체 요청을 하면 수용한다. 정치인 팬덤의 특징이 그렇다. 이 대표가 어떻게 자신의 팬덤을 대할지 두고 볼 일이다.

향후 강성 지지층을 바라보고 정치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민심과의 괴리가 생긴다. 중도 외연 확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이미 경험했다. 민주당의 현재 지지율은 20%대 후반이다. 자폭 시리즈를 연발하면 ‘자멸 전당대회’를 치른 국민의힘보다 정당지지도가 크게 낮다. 왜 그럴까. 행정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입법 독주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 때문이다.

이 대표의 고민도 엿보인다. 대표수락 연설은 자신을 선택한 당원의 생각을 반영하는 게 보통이다. 이 대표의 일성은 “국민 삶을 확실하게 책임지는 더 유능한 민생정당”이었다. 이를 위해 영수회담과 여야대표 회담을 제안했다. 영수회담 의제를 제한하지 않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는 채상병 사건과 관련한 제3자 특검 도입을 전제했다. 사실상 제3자 특검 수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화 제안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또 상속세 공제 한도 조정도 언급했다. 금융투자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에 대해서도 적극적 검토를 시사했다. 취임 일성으로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제시했던 ‘먹사니즘(먹고 사는 민생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선언)’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를 차기 대선을 의식한 ‘중도 확장용 우클릭 행보’라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대여 관계에 있어서는 할 말은 하겠다는 태도다. 이 대표는 중도층을 “중간쯤 계시는 분들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분”으로 규정하고 “정권의 부당한 폭주를 제어하고 견제하는 건 야당의 본질적 역할”이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수위 조절이다. 종전처럼 특별법과 특검, 탄핵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또 민주당이 집권할 때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처리하지 못한 법안을 입법 처리해서는 안 된다. 야당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국정 혼란이 야기될 뿐이다. 민주당의 정당지지도가 바로 국민의 시선이다. 이 대표의 지혜가 요구된다. 

이 대표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진정 ‘윤석열 정권’을 생산적 경쟁상대로 생각하는가. 혹시 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적은 절멸의 대상이다. 협력과 조정 파트너가 될 수 없다. 진정 국정 파트너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윤 대통령을 진지하게 학습하라. 이 대표는 많은 국민이 윤 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규정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윤 대통령 오류의 대부분은 막을 수 있었던 일이다. 충언에 귀 기울였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경험과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치적 상황이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지 않았다. 전략적 고려 없이 윤 대통령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붙였다. 잘못된 결과가 훤히 보이는 일도 많았다. 여당 대표(이준석·김기현·한동훈)와 알력, 의대 정원 갈등, 뉴라이트 논란, 이종석 전 호주대사 임명 실책……. 김건희 여사 문제의 불통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 주변에서 자리를 걸고 충언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죽하면 공적 권력 기관이 아닌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진중권 광운대 교수, 신평 변호사, 최재영 목사에게 전화를 돌리고 문자를 썼겠나. 엘릭 펠던는 《위험한 충성》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의 본질은 충성경쟁”이라고 일갈했다. ‘비겁한 충성 경쟁’이 윤 대통령을 망쳤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덕을 봤다. 4·10총선 결과는 이 대표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바른말, 옳은 말하는 충신을 두지 못한 윤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다. 그런 혜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종전 같은 전투 모드, 대결 방식으로 되지 않는다. 이제 윤 대통령을 욕하는 만큼 이 대표도 욕을 먹게 되어 있다. 마이너스 섬 게임이다. 

그걸 피해 가면서 국민으로부터 평가받는 방법이 있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의 실책과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다. 무능하고 무력한 윤 대통령보다 제1야당 대표로서 더 국정운영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중도 확장은 저절로 될 것이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으면 국회의 권능을 최대로 활용, 행정부를 도와줄 수 있다. 또 정치쟁점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독자적 민생입법을 선도할 수 있다. 예산 편성권도 갖고 있다. 입법 성과를 통해 윤 대통령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으면 된다. 윤 대통령의 비교 우위에 서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게 있다. 이 대표에게 쓴소리, 아픈 소리를 할 수 있는 충신이다. 진정한 충신은 ‘개딸’에 대해서는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의심받고 있는 일극체제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민이 이 대표를 국정 책임을 맡겨도 걱정이 없다는 믿음이 생긴다. 민주당의 지지도가 올라간다. 요즘 정치권에서 ‘지지도가 깡패’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지지도가 높아지면 사법리스크를 뚫고 나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선 가도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눈으로 국회 운영을 주도하라. 그것이 집권으로 가는 길이다. 일극체제에 탈피하지 않으면 그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