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염에 시름 하는 동북아

‘한국 118년’, ‘중국 65년’, ‘일본 40.5%’.

2024-08-22     김경은 기자

각 나라 언론이 밝힌 ‘기후 신기록’이다. 숫자만큼 명쾌한 표현은 없다. 한국은 1906년 기상관측 이래 최장 열대야로 고생하고 있다. 중국은 7월 평균기온 경신 기록이다. 일본은 전체 기온 관측지점 153곳 중 62곳이 7월 최고 기록을 바꿨다.

바다 위 집단 폐사한 물고기

한·중·일 세 나라 모두 기록적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가만히 있어도 비지땀이 줄줄 흐른다. 말 그대로 ‘살인적 더위’다. 오죽하면 냉장고에서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여름나기의 지혜

한·중·일 3국은 전형적인 온대몬순기후 지역에 속한다. 4계절이 뚜렷하다. 특히 여름에는 고온다습하다. 올해는 북대서양의 열대성 고기압이 유난히 맹위를 떨쳤다.

지난달 기온 추세. [기상청 제공]

뜨거운 고기압을 만난 고온다습한 공기 덩어리가 지붕처럼 동북아대륙을 덮었다. 일명 열돔(Heat Dome) 현상이다. 이 때문에 동북아대륙은 여느 해보다 길고 뜨거운 여름, 아니 불타는 여름을 보내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은 비단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협을 경고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이라는 얘기다.

우리 조상은 무더위를 자연의 현상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무더위를 무서워했다. 옛날 피서 여행을 떠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의학도 발전하지 못했다. 견딜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여름에 손님이 오는 것도 꺼렸다.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속담)라고 했다. 야외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평민은 더위로 심한 고생했다. 현대적 표현으로 열사병이나 일사병이라고 할 수 있는, ‘서병(暑病)’ 혹은 ‘주하병(注夏病)’에 시달린 사람도 비일비재했다. 그 대비를 한겨울부터 했다. 정월 대보름에 ‘더위팔기’를 했다. 누군가를 부른다. 대답하면 그에게 “내 더위 사가게”라고 외친다. ‘더위를 산 사람’은 그해 여름에 더위 먹고 고생한다고 믿었다. 다수의 희생을 막기 위한 일종의 주술적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무섭다고 더위를 감내만 한 것은 아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슬기롭게 이겨냈다. 쿨 슈트(Cool Suit)를 만들어 입었다. 바람 원리를 이용했다. 대표적인 게 등등거리, 등토시, 죽부인 등이다. 등등거리는 일종의 대나무 조끼다. 등토시는 대나무 토시다. 토시는 말총, 등나무 줄기를 엮어 만들기도 한다. 등등거리와 등토시를 적삼 속에 입는다. 옷이 몸에 붙는 걸 막았다. 그사이에 생긴 틈은 통풍 공간이다. 더위로 체열은 오른다. 뜨거운 공기는 찬 데로 이동한다. 체열이 낮아진다. 절로 시원함으로 느낀다. 요즘 유행하는 통풍 시트와 같은 원리다. 자동차 시트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그 사이로 공기가 통한다. 엉덩이와 등에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죽부인은 대나무로 만든 긴 원통형 베개다. 대나무의 차가운 성질을 이용한 침구로 사용했다. 이를 껴안고 자면 죽부인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더워서 잠을 못 이루는 밤에 남자 어른은 늘 죽부인을 찾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돌아가신 아버지 무덤에 죽부인을 함께 묻었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상 부인을 대신한 ‘죽부인 순장’이었다.

자연 현상 더위를 자연의 힘으로 이겨낸 한국                    

그래도 양반은 계곡물에서 염천의 열기를 식히는 호사를 누렸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계곡을 찾아 풍류를 즐겼다. 대표적인 게 곡수유상(曲水流觴)와 탁족(濯足)놀이다. 곡수유상은 선비들이 모여 계곡물에 술잔을 띄어놓았다. 순서가 되어 술잔이 돌아오면 그 자리에서 시를 한 수 짓는 일종의 놀이다. 연암 박지원은 지금의 함양인 안의현감을 지낼 때 처남인 이재성(芝溪公)과 자주 곡수유상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 시대의 유적인 포석정도 그 흔적이다. 

완도 앞바다 적조에 황토로 대응

탁족은 한여름에 명산의 계곡물에 발을 씻으며 더위를 식히는 조선시대 피서법이다. 선비끼리 계모임처럼 ‘탁족회(濯足會)’를 만들어 계곡으로 가 약수를 마시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왕의 피서법은 특별할까. 의외로 소박하다. 선비처럼 자유롭게 심산유곡을 찾을 수도 없다. 기껏해야 경복궁 경회루나 창덕궁 후원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게 전부였다. 거기서 얼음물에 담가놓은 수박이나 귀한 차를 나눠 먹을 뿐이었다. 특별한 피서법을 가진 왕도 있다.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았던 성종은 유난히 더위를 탔다. 여름 특식으로 ‘수반(水飯)’을 먹었다. 별것도 아니다. 찬 물에 만 밥이다. 영조는 가을보리로 만든 미숫가루를 즐겼다고 한다. 연산군은 차원이 달랐다. 죽부인을 변형한 ‘냉방기구’를 만들었다. 뱀 우리 위에 대나무로 제작한 틀을 놓고 앉았다. 뱀과 대나무의 냉기로 몸을 식혔다고 한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냉기를 느꼈을 것이다. 조선의 왕은 무더위에 고생하는 관료를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금보다 비쌌다는 빙표(氷票)를 하사했다. 얼음 교환권이다. 당시 얼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얼음 넣은 수박화채 한 그릇은 신하의 재충전에너지가 되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사실 선풍기나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아도 우리 조상은 더위를 잘 이겨냈다. 그것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사람은 상대적으로 기후 적응력이 뛰어나다. 더위가 익숙해질 즈음이 우리 몸의 땀샘 구멍이 넓어진다. 이로써 체온조절이 가능해진다. 이를 ‘기후순응’이라고 한다. 기후순응 과정에서 더위에 적응하는 ‘열충격단백질’이 생성된다. 열충격단백질은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에너지다.

일본의 여름을 견디기 어려운 까닭

일본의 무더위는 한국과 비교되지 않는다. 일본의 여름은 한국보다 훨씬 고온다습하다. 7, 8월에 습도가 80%가 넘는 일은 예사다. 섬나라 특유의 끈적끈적함까지 더해진다. 한국의 여름이 건식 사우나라면 일본은 습식 사우나로 비유하는 이유다. 습도는 체감온도에 영향을 미친다. 적정 습도보다 습도가 10% 높다면 체감온도가 1℃ 높아진다. 예를 들어 기온이 33℃, 습도가 50%일 때 체감온도가 33℃라면 습도가 80%로 높아지면 체감온도도 36℃가 된다는 얘기다. 일본은 실제 기온보다 체감온도가 훨씬 높다. 일본어로 무더위(蒸し暑い)라는 표현이 ‘푹푹 찌듯이 덥다’이다. 

일본의 무더위에 동경모습 ⓒ블러그 갈무리

이 때문일까. 무더위를 물리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전통이 되어 내려온다. 가장 대표적인 게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다. 무더운 여름날에 보내는 ‘계절 인사장’이다. ‘셔츄(暑中)’는 여름 중 가장 더운 시기다. 무더위 안부 인사가 생활 의식으로 정착된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종교의식이 생활의 지혜가 된 전통도 있다. 우치미즈(打ち水)다. 에도시대에 물을 뿌려 신도(神道)를 깨끗하게 씻는 의식이 있었다. 이 의식은 대체로 대서(7월 23일)와 처서(8월 23일) 사이에 치러졌다. 이 의식이 서민의 지혜에 의해 실용적으로 활용됐다. 더운 여름날, 빗물이나 목욕물 등 허드렛물을 길거리에 뿌렸다. 날리는 먼지를 없애고 더위도 식히기 위해서다. 이런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도시의 열기를 낮추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우치미즈’를 권장하고 있다. 물이 증발할 때 열을 빼앗는 기화열로 도시 기온을 2℃나 낮춘다고 한다. 수동식 쿨링포그가 따로 없는 셈이다.

일본식 곡수유상은 유스즈미(夕涼み)이다. 여름용 기모노인 유카타(浴衣)를 입고 부채를 들고 저녁 바람을 쐬는 것이다. 다소 도시화 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 강이 있다면 강물에 발을 담그거나 강바람을 쐬며 더위를 식혔다. 이를 가와스즈키(川涼み)라고 한다. 강이 아니라 산에 간다면, ‘복날 음식’에 소개한 나가시 소면을 먹기도 한다. 

중국, 3000여 년 전에 냉방시설을 만들다

중국은 시대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더위를 슬기롭게 이겨냈다. 고대 중국부터 냉장고, 선풍기 등의 원리가 적용된 냉방기구가 있었다. 기원전 10세기경 서주(西周)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빙지엔(冰鉴)는 ‘냉장고’라는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다. 빙지엔는 청동으로 만든 이중 용기다. 밖에는 얼음을 채우고 그 안에 음식을 넣었다. 그리고 얼음을 넣은 밖의 용기에 구멍을 뚫었다. 찬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 효과’까지 염두에 둔 냉방시설이다.

옛중국 모습 ⓒ블러그 갈무리

한나라 때는 엽륜발풍(叶輪拔風)이라는 수동식 선풍기가 선보였다. 바퀴에 부채를 단 선풍기다. 손잡이로 바퀴를 돌리면 바퀴가 돌아가면서 부채질하는 원리다. 당나라 현종의 양전(凉殿)에 설치된 렁우(冷屋)는 그 자체가 ‘냉동실’이다. 물레방아를 이용하여 찬물을 지붕으로 끌어오려 처마를 따라 아래로 흐르도록 했다. 처마를 따라 떨어지는 물은 폭포가 됐다. 지붕의 찬 공기로 실내는 시원했다. 또 폭포는 외부의 뜨거운 공기는 차단하는 에어 커튼 역할을 했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동로마 제국의 냉방장치와 유사하다고 한다.

곡수유상 역시 중국의 피서법 중 하나였다. 특히 서성(書聖) 황희지가 42명의 시객(詩客)과 술을 나눠마신 곡수유상이 유명하다. 그곳은 중국 절강성 난정에 있다. 중국 청나라에서는 강희황제 이후의 황제들은 본래의 거처인 정궁을 떠나 피서를 갔다. 이허위안(颐和园), 위안밍위안(圆明园), 그리고 청더(承德) 피서산장(避暑山庄) 등이 모두 여름을 위한 별궁 역할을 했다.

이런 냉방기구나 피서법은 일반 평민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평민에게 가장 흔한 피서법은 이열치열이었다. 뜨거운 차를 마셔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중국 속담에 ‘‘하루 차를 마시지 않으면 몸이 멈추고 3일 차를 마시지 않으면 몸이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여름에는 뤼차(綠茶)를 주로 마셨다고 한다. 이냉치열(以冷治熱) 법도 있다. 이는 주로 찬 음식을 먹는 것이다. 량피(凉皮)라는 냉비빔국수가 가장 대표적 여름 음식이다. 이를 진시황이 먹고 반했다는 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