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표회담에서 나온 황당한 음모론
1일 여야 대표회담이 국회에서 열렸다. 무려 11년 만의 여야 대표회담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법이다. 국민의 삶에 보탬이 되는 생산적 의미를 도출하는 회담이 되지는 못했다. 25만 원 지원금 합의, 의료대란의 해법, 채상병 특검 처리 등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컸던 사안에 어떤 진전도 없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지난 5월 30일 개원한 22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 탄핵과 특검, 청문회 그리고 대통령의 거부권……. 여야는 늘 충돌했다. 정쟁의 연속이었다. 정국은 미궁에 빠졌다. 협치는 실종됐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여야 대표회담으로 대화의 물꼬를 떴다. 소통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 의미를 평가절하할 수 없다. 특히 이번 회담은 정치 지형 변화와 향후 대선 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두 사람은 여야의 유력한 대권주자다. 단순히 정책 논의를 뛰어넘는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에 국민의 기대가 컸던 셈이다. 정치복원의 상징과 출발이 되길 기원한다. 국민이 대립적인 정당정치와 이분법적인 정치문화에서 벗어나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다행히 다음의 만남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사실 국민은 여야 대표회담에서 큰 결실을 기대하지 않았다. 의미 있는 결과를 희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의 관심 의제가 달랐다. 핵심 쟁점에 대한 간극도 컸다. 거기다가 윤·한 갈등으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당내 입지는 현저히 좁아진 상황이었다. 그나마 공동발표문을 낸 것은 다행이다. ‘건의’, ‘검토’, ‘논의’, ‘촉구’, ‘당부’ 등으로 채워졌다. 구체성 없고 추상적인 합의였다. 공허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는가.
그렇지만 여야 대표회담에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대화의 방식이다. 가장 핵심적 메시지는 지지자를 향해 던졌다. 그런 회담은 상대방의 마음을 열지 못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으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다.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10월 법원 판결에 승복하라고 요구했다. “검사를 상대로 한 민주당의 탄핵은 사법 판단 불복의 빌드업”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저격한 것이다. 다분히 강성 지지층을 바라보고 한 발언이다. 이 대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삼자 특검을 공언한 진심이 변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한 대표가 자기의 말에 책임지라는 촉구였다. 예견된 발언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도 나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계엄령’ 발언이다. 이 대표는 “최근 계엄령 얘기가 자주 나온다”라면서 윤석열 정부의 ‘계엄 준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걸 막기 위해 계엄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원을 체포·잡아 가두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라면서 “이것은 완벽한 독재국가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귀를 의심했다. 여야 대표회담은 민주와 협치를 추구하는 최고의 정치 무대다. 이 자리에서 계엄령 발언이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야당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뜬금없다. 아니 상상할 수도 없이 불쾌하다.
계엄은 무엇인가. 비상사태다. 전쟁, 내란, 통제 불능의 소요가 있을 때 쓰는 비상 수단이다. 국민 일상은 붕괴한다. 민주주의는 파멸된다. 국가는 파산한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이룬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물거품이 된다. 아니, 비상 수단 동원 이전에 이미 나라는 끝장난 상황일지도 모른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과연 계엄 상태가 가능하기는 할 것인가. 우리 국민은 비폭력·무저항의 촛불혁명을 이뤘다. 촛불혁명은 세계적으로 ‘협약에 의한 민주화 과정’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그런 나라에서 군대를 동원한 권력 유지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국민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렇게 국민을 만만하게 보는가. 이 대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하게 말한다. 더 이상 아니면 말라는 식 선동을 그만두길 바란다.
사실 계엄 발언은 이 대표가 처음 한 것은 아니다. 이 대표도 “자주 듣는다”라고 말했다. 그럼 물어보자. 누가 계엄 얘기를 했는가. 친명팔이에 앞장서는 민주당 의원들(김민석·김병주 최고위원)이 장본인 아닌가. 김민석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계엄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 주장의 근거가 궁금했다. 라디오 방송을 자세히 들어봤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는 반드시 된다. 유일하게 막을 수 있는 상황(방법)이 저것(계엄)뿐이다. ……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국방장관 교체와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발언으로 이어지는 정권 흐름 핵심은 국지전과 북풍을 염두에 둔 계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권정당의 정보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경고한 뒤 “탄핵 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빌드업을 그만두라”라고 주장했다. 국지전은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을 의미한다. ‘북풍’은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선거에 이용한다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는 탄핵 방어와 정권 유지를 위해 군대도 동원할 수 있는 반민주적 정권이라는 음모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해되는 부분은 있다. 윤 대통령의 인식이다. “반국가세력의 암약”이라는 말을 했다. “국민의 항전”은 무엇인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언사였다. 그런 인식은 의료대란과 관련한 질문을 한 기자에게 “현장에 가보라”고 권했다. 누가 누구에게 해야 할 말인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의료 개혁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달나라 수준의 상황인식”이라는 비난받을 정도다. 왜 그랬을까. 좋게 해석한다면, 소명 의식의 발로다. 그것은 반국가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 개혁을 이뤄서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이 의식 바닥에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사람이 역사의 역적으로 기록될 계엄령을 발포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김민석 의원이 ‘입틀막’으로 규정된 김용현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누구인가. 윤석열 정부의 실세 중 실세다. 권력의 핵으로 자리한 경호처장을 지냈다. 더욱이 충암고 출신으로 윤 대통령의 후배다. 그를 통해 계엄령을 건의키 위해 자리를 바꾼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계엄령은 국방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만이 건의할 수 있다. 이 장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계엄령을 발포할 생각이 있다면 굳이 김용현 장관 내정자까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충암고 출신에 군부 인사 관심도 커진다. 현역 장군 중에 충암고 출신은 4명뿐이라고 한다. ‘계엄 준비 의혹’은 극단적 음모론으로 오해받는 이유이다.
음모론의 기저에 자신의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보통 지배 세력의 무능과 부패를 부각할 때 그 효과는 더욱 크다. 제기된 의혹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제기된 의혹은 스스로 굴러가면서 확대된다. 의혹이 당위성을 창출한다. 스노우볼 효과를 낸다. 계엄령만큼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이슈는 없다. 그만큼 빠져들기에 쉽다. 더 이상의 이성적 토론은 의미가 없어진다.
필자는 계엄령 의혹은 거짓이라고 확신한다. 선동과 음모론일 뿐이다. 선동과 음모는 민주주의의 해악이다.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것에 대한 죄의식도 없이 음모와 선동을 자행하는 민주당이 더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