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한·중·일 추석

2024-09-17     김경은 칼럼

올여름은 참 더디게 간다. 9월 중순인데 낮 기온이 30℃를 웃돌고 있다. 지난 11일 낮 최고기온은 36℃. 예년 평균기온보다 무려 10℃나 높단다. 그래도 계절은 변한다. 17일은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다. 한가위는 ‘가을 한 가운데’를 뜻한다. 추석 무렵에 오곡백과가 무르익는다. 문화 영향을 주고받은 중국과 일본에도 한가위와 유사한 전통 명절이 있다. 중국의 ‘중추지에’(仲秋節), 일본은 ‘오봉’(お盆)이 그것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보름달’과 조상이다. 보름달에 소원을 빌거나 조상을 기리고 가족의 안녕을 기원한다. 하지만 그 유래에서 각 나라의 개성 차이가 드러난다.

올 추석은 9월 중순인데 한 낮 기온이 30℃를 웃돌고 있다.

우리나라 추석의 기원은 신라시대 유리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음력 8월 15일을 앞두고 부녀자들이 편을 갈라 길쌈대회를 했다. 이 시합에서 진 팀이 이긴 팀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고 노래와 춤을 췄다. 마을 축제가 한가위의 유래인 셈이다. 하지만 해가 거듭되면서 축제의 성격도 변했다. 놀이문화는 퇴색했다. 제사 의식이 중심이 됐다. 조선이 국시로 성리학을 수용하면서 생긴 일이다. 조선 중기까지는 가정의 차례(茶禮)보다는 아니라 시제(時祭)가 중시됐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기제가 시제를 대신했다. 한가위가 조상을 위한 명절이 된 것이다.

한국, 명절에 조상에게 차례 올리는 유일한 나라

명절 제례란 매우 규격화한 집단문화다. 규모도 크게 마련이다. 제례가 개별화되어 모든 가정으로 흡수된 것은 매우 독특한 문화현상이다. 중화권 어느 나라도 명절에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사회학)는 “한국이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는 유일한 나라”라고 말했다. 명절 제사 문화는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민족 유산인 셈이다.

천천히 삶의 여유를 즐기는 즐거운 명절 되세요 ⓒ 뉴스프리존 일동

한가위 제물은 모두 햇곡식과 햇과일을 올린다. 성동백서(紅東白西), 어동육서(魚東肉西), 조율시이(棗栗枾梨), 좌포우혜(左脯右醢) 등 제사상 차리는 법에 따라 차린다.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 송편도 한가위의 제수 음식이다. 송편은 달과 열매(풍년)를 상징한다.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빚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때 궁궐 땅속에서 파낸 거북이 등에 ‘백제는 만월(滿月)이고 신라는 반월(半月)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점술사는 백제는 쇠퇴하고 신라는 융성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점술가의 예언이 적중했다. 이때부터 반달은 더 나은 미래를 기원하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 송편도 반달 모양으로 빚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엮은 《동국세시기》에 ‘농가에서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집마다 장대에 곡식 이삭을 달아 대문간에 세워두었다가 한가위에 이것으로 송편을 빚어 노비의 나이 수대로 나누어주는 풍속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송편은 일종의 특식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이날을 ‘노비일’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불교 색채가 짙은 일본의 오봉

일본은 우리처럼 오봉에 기제를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오봉(お盆)은 조상께 드리는 음식을 담는 그릇을 뜻한다. 오봉 자체가 ‘제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의 '명절 오봉' ⓒ 블러그 갈무리

오봉의 유래는 불교 색채가 짙게 풍긴다. 오봉은 목련구모(目連救母)라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목련’은 부처님 제자 중 한 명이다. 효심의 상징으로 통한다. 목련존자는 저승에서 견딜 수 없는 고초를 겪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봤다. 부처님께 어머니의 구원을 간청했다. 부처님은 음력 7월 보름에 대중공양을 올리도록 했다. 부처님의 신력으로 어머니는 극락왕생하게 됐다. 목련존자가 이때부터 우란분재(盂蘭盆節)를 지냈다. 이것이 대중에게 전해져 오봉이라는 풍습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그 유래에서 보듯 오봉은 불교 사상 속에 효심이 배어 있는 게 특징이다. 그것은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지수적설이란 조상의 신령이 여러 보살의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믿는 습합 사상이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에서 “일본에는 사람이 죽으면 모두 부처가 된다는 믿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 오봉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 8월 15일이다. 과거에는 음력 7월 15일에 오봉을 쇘다. 메이지 유신 때 양력 도입과 함께 양력 명절로 전환했다. 오봉 때 조상을 대하는 일본의 풍습은 마치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산 사람을 맞는 듯하다. 우선 조상의 영혼을 담는 우라봉(盂蘭盆)을 불단에 올린다. 불단 앞에는 봉쵸우친(盆提灯)도 밝힌다. 조상 신령을 안내하는 등불이다. 오봉 이삼일 전에 정원이나 마당에 화롯불로 무카에비(迎え火·영혼을 맞는 불)로 영혼을 초대하고, 오봉 이튿날에 오쿠리비(送り火·마중하는 불)로 영혼을 마중한다. 또 우리에겐 생소한 조상의 영혼을 부르는 ‘쇼우료우우마(精霊牛馬) 의식’도 있다. 쇼우료우우마는 오이와 가지에 부러뜨린 나무젓가락을 꽂아 각각 말과 소 형상을 만들어 불단 옆에 두는 것이다. 말은 조상의 신이 이승으로 빨리 오라고 재촉의 의미를, 소는 저승으로 천천히 되돌아가라는 지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불단 옆에는 쇼우료우다나(精靈棚)라는 제사상을 올린다. 하지만 이 제사상에는 우리처럼 햇곡식이나 햇과일을 올리지 않는다. 설탕, 과자, 국수, 경단 등 조상이 즐겨 먹던 음식을 올린다. 음력 7월은 햇과일이나 햇곡식이 수확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이날 성묘나 친척을 만나고 스님을 집으로 초대, 설법을 듣는다.

오봉 때에는 흩어진 가족이 모여 ‘하카마이리((墓参り)’라고 부르는 성묘를 한다. 지역에 따라 조상신을 위로하는 ‘봉오도리’라는 축제를 준비한다. ‘봉오도리’에는 가벼운 여름옷인 유카타를 입은 남녀노소가 광장에 설치한 망루에 올라 북을 치며 춤을 추는 것으로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일본 사회가 발전하면서 조상 공양의 풍습이 친지나 거래처 등 평소에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관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러한 선물을 중원(中元)을 전후하여 주고받는다고 하여 일본 사람들은 이를 ‘오쥬껜(お中元)’이라 부른다.

중국은 밤에 달에 제사 올린다

중국 중추지에의 유래는 달의 의미를 훨씬 강조하고 있다. 옛날 후예라는 명궁수가 있었다. 어느 해에 태양이 10개나 떴다. 땅은 말라가고 곡식은 죽어갔다. 후예는 활을 쏴 9개의 태양을 떨어뜨린다. 땅은 회복됐다. 백성도 안정을 찾았다. 그 공로로 신선 서왕모로부터 선약 2개를 받았다. 부인인 항아에게 맡겼다. 제자인 봉몽이 스승 후예를 배반했다. 선약을 노렸다. 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항아는 선약을 삼켰다. 신선이 되어 달나라로 가게 됐다. 어느 날 후예는 달 속의 항아를 보게 됐다. 후예는 항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달이 가장 크고 밝은 음력 8월 15일, 월병과 음식을 차렸다. 이게 충추지에의 유래다.

중국 중추지 ⓒ 블러그 갈무리

중국은 우리와 달리 조상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달에 지낸다. 그 역사는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5경 중 하나인 《예기》에 “천자는 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달에 제사를 지낸다. 태양 제사는 아침에 지내고 달 제사는 저녁에 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민간에서 중추지에에 달에 제사를 지내고 달을 감상하는 풍습은 여기에서 시작된 셈이다.

명절의 명칭에서도 중국 명절 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중추지에 이외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퇀위엔지에(團圓節), 달을 보며 가족이 함께 식사한다는 베이우에판(八月飯)라는 별칭이 있다. 중국의 가정식 백반을 ‘쟈창판’(家常飯)이라고 한다. 집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보통 식사를 뜻한다. 쟈창판은 ‘흔히 있는 일’ 즉 다반사(茶飯事)라는 의미로도 통용된다. 여기에서 유추해 본다면 퇀위엔지에는 음력 8월 15일에 온 가족이 함께 달에 제사(月祭)를 지내며, 달을 보고 절(排月)을 하면서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먹는 특별한 식사라는 뜻이 된다.

중추지에 행사가 온 가족이 공찬(供饌)과 합찬(合饌)하는 의식으로 변화했다는 뜻이다. 공찬과 합찬은 ‘함께 먹는다’ ‘나눠 먹는다’라는 뜻이다. 중국 사람은 함께 식사하는 것만이 인정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은 지금도 혼자 식사하면 음식 맛이 없고 야위게 된다고 생각한다.

달에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그 시간은 밤이 된다. 한국이 명절 제사를 아침에 지내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중국은 중추지에에 초롱불 놀이를 즐긴다. 초롱불은 ‘달’을 상징한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든 초롱불을 배에 매달아 소원을 적은 종이를 넣어 강에 띄운다. 그렇게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믿고 있다. 어린아이는 투얼예(兔儿爷)라는 인형을 갖고 논다. 토끼 얼굴을 한 장군 모양의 인형이다.

중국은 충추지에에 보름달 모양의 웨에빙(月餠)을 만들었다. 옛날에 웨에빙은 송편과 마찬가지로 제수 음식이었다. 점차 제례음식으로서 위상을 잃었지만 모든 가족이 모여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함께 나눠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보름달 모양의 웨에빙은 둥근 원탁에 온 가족이 모인 것을 상징한다. ‘가족’이란 상징성은 문양과 크기에서도 드러난다. 웨에빙 겉면에 ‘웨에빙 전설’의 주인공인 상아라는 여인을 그려 넣거나 풍년과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을 적어 넣기도 한다.

중국에서 웨에빙에 버금가는 상징적 제례음식이 있다. 수박이다. 잘 익은 둥근 수박을 반으로 쪼개 제사상에 올린다. 중국인은 수박의 붉은 색 속이 기쁨과 행복, 성공을 가져다준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또 수많은 검은 씨앗은 자손의 번창을 상징한다. 석류도 자손만대의 번창을 상징하는 제수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토란과 고구마 같은 덩이줄기 식물로 달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여전히 남아 있다. 둥근 모양의 과일도 풍년과 원만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배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배의 발음이 이별과 같은 발음을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