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축전이 열린다

2024-09-29     김경은 기자

한복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최대 문화유산 축제가 열린다. ‘2024 가을 궁중문화축전’이다.

덕수궁에서 만나는 디즈니 = 27일 서울 덕수궁에서 열린 '미키 in 덕수궁 아트, 경계를 넘어서' 전시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참여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이 축제는 오는 10월 9일부터 13일까지 5일간 4대 고궁(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에서 열린다. 특히 한복과 연관된 행사가 흥미를 끈다. 한복을 착용한 방문객은 무료입장할 수 있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복 입은 멋쟁이’를 뽑는다. ‘한복 베스트 드레서 선발 이벤트’다. 전문 작가가 촬영한 한복 방문객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와 내부 선정 절차를 거쳐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한복 소품 만들기 등 각종 한복 체험 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덕수궁에서는 더 특별한 한복 이벤트가 진행된다. ‘미키 in 덕수궁 : 아트 경계를 넘어서’라는 전시회다. 한국의 십장생과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미키마우스가 하나의 화폭에서 어우러진 ‘미키마우스 십장생도(圖)’ 전시회가 그것이다. 마치 만화 속 상상이 현실이 되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전시회다. 다음 달 20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디즈니코리아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국가무형문화유산 전공 작가가 각자 특유의 관점으로 미키마우스와 십장생을 표현한다. 또 한복 입은 미키마우스가 방문객을 맞는다. 방문객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한복이 문화상품으로 재평가받는 듯하다. 이제 우리의 궁중문화축전만이 아니라 ‘세계인의 일상’에서도 부활하길 기대해본다. 이번 기회에 한·중·일 삼국의 전통 의복의 특징과 맵시를 얘기해 보자.

4차원에 존재하는 클라인 병이 한복에 들어 있다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 자지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 살살이 퍼져 나린 곧은 선이 /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평화의 한국 성모 모자이크상 = 20일(현지시간) 바티칸 정원에 설치된 평화의 한국 성모 모자이크상. ⓒ연합뉴스

우아한 한복의 맵실 잘 표현한 시인 조지훈의 <고풍의상>이다. 한복의 고운 자태가 눈에 선하다. 여성 한복은 곱다. ‘곱다’는 어원은 ‘굽다’이다. 굽은 것, 즉 곡선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의미다. 한복은 곡선미가 뛰어나다. 추녀의 처마처럼 하늘로 올린 섶코(옷섶 끝의 뾰쪽한 부분), 휘돌아 감은 실개천 같은 저고리 배래(한복의 소매 아래쪽으로 물고기의 배처럼 둥글고 볼록하게 나온 부분), 여인의 겨드랑이 속살이 보일 듯 말 듯 감긴 도련, 또 움직일 때마다 다양한 곡선을 그리는 옷고름과 치맛자락….

한복의 곡선미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 아름다운 곡선을 직선이 만든다. 바지를 예로 들어보자. 한복 바지는 비대칭이다. ‘ㅅ’자 모양이다. 수많은 사각형과 삼각형 모양의 사폭을 이어 붙여 ㅅ자 모양을 만든다. 이 상태로는 옷을 입을 수 없다. 가랑이가 째질 정도로 다리를 벌리고 입지 않는다면. 여기서 우리 조상의 지혜가 발휘된다. 클라인 병의 원리를 적용한다. 클라인 병은 겉과 속이 없는 4차원 입체다. 앞과 뒤가 없는 평면이 뫼비우스의 띠라면 겉과 속이 없는 입체가 클라인 병이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솜이불에 홑청을 입히는 방법을 떠올리면 된다. 솜이불 위에 홑청을 덮는다. 이를 돌돌 만 뒤에 솜이불과 홑청이 만나는 ‘끄트머리’를 동시에 뒤집어서 편다. 그러면 겉과 안이 뒤바뀐다. 한복 바지도 솜이불에 홑청을 씌우듯 비틀어 뒤집는다. 안감이 솜이불이고, 겉감이 홑청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저고리도 같은 원리로 만든다.

일본의 기모노나 중국의 치파오는 클라인 병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기모노나 치파오는 펼쳐놓으면 하나의 보자기다. 원피스 형태인 여성 옷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두 나라의 남성 바지도 양복바지를 생각하면 된다. 재단 과정에서 기모노에는 한복처럼 비트는 과정이 없다. 그렇다 보니 직선의 모양이 그대로 살아 있다. 기모노를 ‘직선의 옷’이라고 하는 이유다. 기모노는 밋밋해야 예쁘다. 오히려 몸의 윤곽이 드러나면 밉다고 한다. 기모노 자체가 굴곡 있는 몸매를 숨긴다. 직선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몸에 보정을 한다. 여성의 도드라진 가슴과 엉덩이는 구미히모(끈)로 조인다. 잘록한 허리 부분엔 천으로 볼륨을 넣는다. 기모노는 긴 원피스 스타일이다. 기모노는 발목까지 내려오도록 입는다. 또 치마 밑단의 가장자리를 안으로 접어 올린다. 옷의 무게중심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는 장치다. 이 모든 기교는 직선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기모노를 ‘땅을 향하는 옷’이라고도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모노는 직선의 옷

초기의 치파오는 평면재단을 한다. 위아래를 분리하여 재단한 후 윗도리와 아랫도리를 연결하여 만들었다. 어느 순간 서양의 여성복 재단법을 수용했다. 입체재단을 적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치파오는 상·하의 구분이 없어졌다. 윗도리와 아래치마의 의미가 사라진 원피스 형태가 된 것이다.

일본의 기모노 모습 ⓒ 블러그 갈무리

세 나라의 여성 옷에서는 맵시 포인트가 각각 다르다. 우리 여성 한복은 아무래도 짧은 저고리에 눈길이 간다. 한복이 오늘날의 형태를 갖춘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불과 200여 년 전이다. 한복의 특징 중 하나는 짧은 저고리다. 조선 초 저고리는 허리 밑에까지 내려왔다. 저고리가 점점 짧아졌다. 조선 말에는 미니스커트가 아니라 ‘미니 저고리’가 유행했다. 15cm 정도까지 짧아진 적도 있다. 거의 가슴을 드러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여성의 가슴이 드러난 사진도 볼 수 있다. 물론 이처럼 야한 옷차림은 하층계급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사대부 여인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보일 듯 말 듯 한 노출로 매력을 과시했다. 짧은 기장의 저고리는 팔을 조금만 들어도 속살을 드러났다. 허리를 굽혀도 마찬가지다.

한복은 기본적으로 상의하상(上衣下裳)이다. 저고리와 치마라는 뜻이다. 저고리가 짧다 보니 치마는 길어졌다. 거기에 풍성함을 더했다. 사대부 여인은 특히 치마를 겹쳐 입을수록 권위와 품위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풍성한 치마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 속바지와 속치마를 여러 겹 겹쳐 입었다. 귀부인은 보통 치마를 7~8겹 입었다. 무지개치마라는 속치마도 입었다. 서양의 코르셋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옆으로 퍼지는 속옷이다.

한복의 매력 포인트은 겨드랑이, 치파오는 허벅지, 그럼 일본은

일본 여성 기모노의 매력 포인트는 목덜미이다. 다다미 깔린 료칸에서 무릎을 꿇고 차를 따르거나, 샤미센을 켜는 ‘기모노 여인’을 한 번 상상해보라. 에로틱하지 않은가. 기모노 입은 여인을 후면미인(後面美人)이라고 말한다. 기모노의 뒤태가 아름답다는 얘기가 아니다. 기모노 입은 여인의 매력 포인트가 목덜미에 있다는 의미다. 뒤태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바로 허리에 두르는 오비다. 기모노는 일자형 옷이다. 오비를 매서 옷의 중심으로 뒤로 옮겨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니깐 목덜미가 드러나게 된다.

혹자는 기모노의 오비를 베개로 쓰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사실이 아니다. 오비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오비 속에다가 오비마쿠라라는 베개를 집어넣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어떻든 세상의 전통 의복 중에서 베개를 끈으로 동여맨 옷차림은 일본 기모노밖에 없다. 일본인은 그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 ‘오비는 기모노의 꽃이다’, ‘오비가 기모노를 일본 옷답게 만든다’라고 자랑한다. 오비를 매는 방법이 200가지가 넘는다. 그만큼 모양도 다양하다. 오비의 폭이나 길이도 천차만별이다. 그렇다 보니 기모노를 제대로 차려입는 데 30분이나 걸릴 정도다.

기모노와 관련한 또 다른 오해가 있다. 기모노를 입을 때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옷을 많이 껴입을수록 높은 계급이었다. 보통 3겹을 입는다. 왕족만 입는다는 주니히토는 12겹이나 된다. 주니(じゅうに)가 12라는 뜻이다. 하지만 메이지 시대의 중학교 교과서에 여자는 서서 소변을 보면 안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속옷을 안 입어야 서서 소변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팬티형 속옷만 생각하는 데서 나온 오해다. 일본의 속옷은 바지형이 아니라 치마형이다. 그래서 서서도 용변을 볼 수 있었다.

중극의 전통복장 치파오ⓒ 블러그 갈무리

중국의 전통 의복은 치파오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전통 의복으로 찬사를 받는다. 그 매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허리선까지 패인 옆트임이다. 치파오는 전통 의복으로 불리는 옷 중에서 가장 젊은 옷이다. 허벅지를 드러낸 옆트임이 있는 치파오의 역사는 불과 150년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 근대화가 만든 옷이다. 1840년 초 아편전쟁이 일어난 뒤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중국에 들어갔다. 그 전진기지가 상하이였다. 상하이 여학생들이 치파오를 입으면서 이것이 전국적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치파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옆트임은 왜 생긴 것일까. 치파오는 원래 청나라의 남녀가 입던 원피스형 두루마리였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유목민이다. 그들의 옷은 말타기와 활쏘기에 적합해야 했다.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허리 옆트임을 했다. 이것이 평상복으로 바뀐 것이다. 가장 큰 치파오의 특징은 치마 길이가 길고 옆트임이 있는 것이다. 특히 허벅지까지 트는 과감성을 보여주면서 지금과 같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옷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