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윤 대통령의 '레밍 정치'를 보고 싶지 않다

‘근시안적’ ‘과속’의 ‘직진’ 본능을 자제하라

2024-09-30     김경은 칼럼니스트

북유럽에 사는 레밍(Lemming)이라는 들쥐가 있다. 일명 ‘나그네쥐’로 불린다. 이런 별명이 불은 이유가 있다. 집단 이동하는 특성에서 비롯됐다. 쥐의 번식력은 왕성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레밍은 그중에서도 최고를 자랑한다. 출산 후 2시간 뒤 임신이 가능하다. 

레밍의 유명세는 번식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집단자살’ 때문이다. 기하급수적 개체 수 증가는 먹이 부족을 낳는다. 먹이를 찾아 이동해야 한다. 레밍은 이동 중 ‘불의의 사고’로 떼죽음을 맞는 일이 다반사다. 그 이유를 모를 때 레밍의 떼죽음은 집단자살로 포장됐다. 종족 유지를 위한 ‘헌신’하는 유일한 동물로 크게 주목받은 것이다. 종족 보존 경쟁이 자연의 순리다. 그 대전제는 생존과 번식이다. 번식하려면 생존해야 한다. 그런데 동물이 종족 보존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대단히 성스러운 일이다. 학계 관심은 당연했다.

레밍의 미스터리가 밝혀졌다. 직진본능, 집단질주 그리고 지독한 근시가 원인이었다. 집단 이동 중 절벽을 만나는 일은 다반사다. 레밍은 시야가 좁다. 멀리 있는 장애물이나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레밍은 직진본능을 갖고 있다. 후진을 모른다. 문제의 심각성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선두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에 떠밀려 달려간다. 속도도 줄일 수 없다. 일단 이동이 시작되면 목적지까지 달린다. 눈앞에 절벽이 있어도.

우리 정치가 마치 ‘레밍의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자중지란에 빠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더욱 그렇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도 최근 최악이다. 20%대에 턱걸이다. 특히 배우자 김건희 여사 문제가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디올백 수수와 관련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 공천 개입과 관련한 언론의 의혹 보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2심 재판 등으로 지지율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 

문제는 ‘김건희 리스크’를 ‘레밍 정치’로 해결하고 있다. ‘레밍의 속성’대로 정국 대처를 한다는 얘기다. 우선 윤 대통령의 직진본능이다. 늘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인사와 정책에서 정치적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다. 정무적 판단 자체를 거부했다. 대야 관계도 강경일변도였다.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은 늘 충돌이 야기됐다. 그 고통과 손실은 온통 국민의 몫이었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서도 그런 정치적 이미지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 배후자의 범죄 행위를 덮기 위한 ‘비겁한 행동’이라는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국무회의는 30일 재의결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의결했다. 윤 대통령의 재가가 남은 상태다. 거부권 행사 이유는 간단하다.

3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김건희 여사 특검법, 순직해병특검법·지역사랑상품권법 거부권 규탄 야5당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석 의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건희 특검법이 반헌법적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를 구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이자 정치적 공세라는 얘기다. 그것을 알면서 여론을 의식해 김건희 특검법을 수용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런 판단의 배후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있다. 이 대표의 1심 재판 결과가 나오면 분위기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듯하다. 일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과연 그럴지는 의문이다. ‘이재명 구하기’에 ‘1차 실패’했다고 민주당의 태도가 달라질까.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민주당은 더 결집할 것이다. 탄핵 공세를 더 강화할 것이다. 

거기다가 돌아가는 정세가 결코 윤 대통령에게 유리하지 않다. 최근 김건희 여사 관련한 공천 개입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거기에 전언 형식이지만 김건희 여사의 발언(“오빠한테 전화 왔죠. 잘 될 것이에요”, ”컷오프야. 김 여사에서 연락이 왔어”)이 여과 없이 나왔다. 언제 스모킹건이 나올지 모른다. 김건희 여사의 육성이나 물증은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빚어진다면 겉잡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징후는 이미 예고된 상태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의 발언이 전해지는 전화 통화가 공개되거나 정치 브로커와 접촉을 확인할 수 있는 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거기다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관한 ‘윤 대통령의 거짓말’까지 드러났다. 김건희 여사가 손해 본 투자액을 보전받은 증거로 보이는것까지 나왔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마찬가지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입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특히 주가조작과 관련한 정보는 검찰발이라는 게 공공연하다. 윤 대통령의 친정인 검찰 일부에서 ‘반기’를 들고 있는 셈이다. 

여론도 반응하게 마련이다. 여론은 언론 보도에 따라간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층 사이에서 나오는, 털고 갈 것은 털자는 여론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65% 이상이 특검법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TK(대구·경북)와 부울경(부산·울산·경남)에서도 특검 수용 답변이 50%를 넘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을 어지럽히는 것을 국정의 걸림돌로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명품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한 실체가 야당 의혹 제기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 게 결정적이었다.

야당의 주장을 무조건 정치공세로 비판할 수 없게 됐다. 특검의 당위성이 높아진 것이다. 특검은 전제가 있다. 검찰의 미진한 수사, 불공정한 수사다. 이를 특검이 이를 보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의미도 다르게 해석된다. 김건희 여사의 잘잘못을 따져보자는 게 아니다. 김건희 여사의 위법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듯하다. 그것은 김건희 여사와 윤 대통령을 분리하여야 국민의힘 아니, 보수가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이런 의견의 밑바탕에는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가 있다. 박근혜 정권의 탄핵으로 와해한 보수 기반을, 윤 대통령을 ‘모셔’ 겨우 복구한 상태다. 이것은 다시 무너뜨릴 수 없다는 절박함을 반영된 것이다. 이런 민심을 국민의힘이 모를까. 그래도 윤 대통령은 ‘Go Go’다. 레밍이 절벽에 떨어져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집단자살’은 레밍의 특징 중 하나인, 가까운 미래도 볼 수 없는 지독한 근시안도 또 다른 원인이다. 야당의 홈그라운드인 국정감사가 목적에 있다. 민주당은 다음 달 열리는 국정감사를 ‘김건희 국감’으로 만들려고 작정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법에 적시한 8개 혐의와 관련한 증인을 대거 채택했다. 또 의혹을 파헤칠 전담 조사팀도 곧 가동할 예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증인이다.

그중에 명태균 씨와 김영선 보좌진 출신인 E씨가 있다. 이들은 숨김없이 밝힌다는 태도다. 명 씨는 심지어 “내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라는 입장이다. “내가 김건희 여사와 나눈 텔레그램을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명태균 씨가 권력의 힘을 엎고 스스로 구명운동을 하는 것이다. 아니면 날 건들면 모든 걸 폭로하겠다고 권력에 협박하는 것이다. E씨는 2년 동안 명 씨와 통화한 내용 공개를 약속한 상태다. 그는 “정말 할 말이 많다”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E씨의 통화 내용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실은 궁여지책으로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검토하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실은 그것조차도 분명하게 검토하고 밝히지 못하고 있다. 김 여사가 사과하면 민주당의 프레임에 말려들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건희 여사가 결정할 문제라며 그 결정은 김건희 여사에게 미루고 있다. 이를 김건희 여사가 결정할 문제이다.

윤 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김건희 여사의 사과라도 더 미룬다면,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될 것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게 될 게 뻔하다. 사과 회견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헌법 제11조를 국민의 뜻을 잘 수용하면 그만이다. 그게 국민 의혹을 풀어주는 첫걸음이다. 이는 대통령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레밍처럼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세 번째 레밍의 특성인 집단질주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국민의힘 의원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21차례 행사된 거부권의 재표결에서 의미 있는 이탈표는 없었다. 고작해야 채상병 특검법에서 찬성한 한두 명 의원이 전부다. 국민의힘은 물불 가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윤 대통령의 바람에 부응했다. 눈앞의 정파적 이익과 지배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김건희 특검법’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지는 속단할 수 없다. 상황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질주의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실과 국민힘과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거기다가 윤·한 갈등도 한몫하고 있다. 당권을 잡고도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주류 친한 세력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기회는 여론이다. 정치를 움직이는 건 여론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다시 민심을 다시 기치로 들었다. 그는 “우리 국민의힘은 당당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라며 “우리가 무조건 민주당에 반대하기만 한다, 또는 무조건 정부 입장을 무지성으로 지지하기만 한다는 식의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김건희 쉴드’를 거부한 것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특검 재표결에서 국민의힘의 목소리를 내겠다, 즉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상황이다. 김건희 여사 문제로 윤 대통령에게 끌려가다가는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미래 권력인 한동훈 대표의 첫 번째 승부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는다면 이탈한 보수층을 돌릴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 미래에 결정적 하자가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래저래 사면초가로 몰리는 상황이다. 어쩌면 잔여 임기 2년 반을 레임덕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야당에 의해 탄핵소추란 수모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있다. 레밍의 시대를 끝내는 것이다. 레밍의 정치, 즉 근시안적 과속의 직진을 자제하는 것이다.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귀를 열고 세상의 소리를 들어보라. 온통 절벽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