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다
- 아시아 최초 여성, 아시아 6번째 노벨문학상 수상
지난 10월 10일 저녁 8시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자막 속보가 떴다. 작가 한강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이었다. ‘한국 최초’와 ‘아시아 여성의 최초’ 수상이었다. 속보를 접한 전 국민은 전기에 감전된 기분이었다. 환호하며 “드디어 우리나라도”라고 외쳤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흥분과 기쁨이 전율로 변하는 벅찬 낭보였다. 더욱이 어떤 예상과 기대도 하지 않았다. 유력한 후보 명단에 작가 한강의 이름은 없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값진 선물이었다. 목마른 문학계에는 기념비적 사건이자 한 소금의 청량제였다. ‘한강(韓江)의 기적’이고 ‘한강(漢江)의 기적’이다.
‘노벨문학상이 뭔데 호들갑 떠느냐’라고 역정을 내는 독자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치면 그만이다. 노벨문학상의 의미를 따져보면 결코 그럴 수 없다. 노벨문학상의 선정기준은 매우 주관적이다. 노벨문학상이 한 나라의 문학 수준을 측정하는 잣대는 아니다. 한 작가의 문학적 기량과 성취 그리고 명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아니다. 다만 시대적 상황과 문제의식을 중시한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보면, 현실에 참여하여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작가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그렇다고 공인된 최고위 권위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 명성과 압도적 영향력은 갖는다. 수상자는 문학인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차지하게 된다. 경외의 대상이 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수상 작가와 국가는 문학을 통해 문화의 지평을 확대할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노벨문학상에 목매는 것이다.
한강 작가는 ‘현대 산문의 혁신가’
지난해까지 모두 117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40여 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아시아 국가로는 인도, 중국, 일본에서 수상자가 나왔다. 노벨문학상은 한국을 철저히 외면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발표가 날 때면, 우리는 ‘허무의 굿판’을 벌였다. 해가 갈수록 ‘문화적 변방 국가’라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문화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에서 문화적 역량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 세계적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음악, 영화, 드라마, 클래식 등 다양한 분야와 비교됐다. 문학만이 소외된 듯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노벨’이라는 이름의 허기를 채웠다. 열등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통로로서 문학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전 세계에 알릴 기회다. 문학은 문화의 정수다. 더욱이 문학은 생활문화와 역사의 압축판으로 여겨진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노벨문학상 수상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은 극작가인 욘 포세(2023년)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작가”, 자전 소설의 대가인 아니 에르노(2022년)에 대해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작가”, 탈식민주의문학가인 압둘라 지크 구르나(2021년)에 대해 “난민 경험을 바탕으로 자아정체성에 집중해온 작가”라고 규정했다. 한강 작가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했을까.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고 명명했다. 최고의 찬사다. 산문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이를 다시 해석하면 산문적 현실과 시적 이상을 어우러진 문장을 구사했다는 의미다. 문장 속에서 그런 기법을 찾는 수고도 필요 없다. 제목 자체가 시적 표현을 닮고 있다.
소설은 인간의 본질적 질문을 다루는 형식
《작별은 없다》, 《소년은 온다》가 바로 시와 산문의 결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강렬한 시적 표현이 있을까. 소설 문장 속에서는 심미적 아름다움까지 담고 있다. 《소년이 온다》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한 편의 산문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 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한림원은 한강 작가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독창적 표현력 때문일까. 그럴 리는 없다.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력한 시적 산문”이라고 밝혔다.《작별은 없다》,《소년이 온다》는 한국의 비극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제주 4·3사건과 5·18광주민주항쟁은 한국 역사의 트라우마다. 한강 작가에게 이 슬픈 역사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재가 아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국가 폭력’이 인간을 얼마나 황폐화하는지 아느냐고 묻는 것이다. 한강 작가에게 소설에 관한 정의를 물어본 기사가 있었다. 그는 “인간 본질에 관한 질문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대답했다. 국가 폭력을 다룬 이유도 궁금하다. 폭력의 반대편에 서겠다는 맹세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이다"라는 게 그의 대답이다. 한국의 서사를 소재로 삼아 보편적인 인간의 고뇌와 아픔을 다뤘다는 얘기다.
인간에 관한 한강 작가의 질문 범위도 넓다. 소외된 인간의 사랑(《여수의 사랑》, 절망에 빠진 사람의 삶(《여자의 열매》, 상처를 낳는 인간의 부조리(《몽고반점》, 《채식주의자》 등 수많은 주제로 질문을 통해 인류에게 보편적 감동을 준다.
한강 작가 거론된 뒤 모든 게 뒤집어졌다
사실 한강 작가는 당초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도 오르지 못했다. 어떤 경로에서 한강 작가가 후보가 되었는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한강 작가가 심사 테이블에 오른 뒤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무런 논란 없이 결정됐다고 한다. 한림원이 ‘마법’에 걸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아시아 여성 후보라는 입장이 정리된 뒤 모든 게 뒤집혔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력한 후보로 ‘중국의 프란츠 카프카’로 불리는 여성 작가 찬쉐(残雪),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가나이 미에코, 타와다 요코 등이 거론됐다.
예상 밖이라고? 아니다. 사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한 빌드업이 되어있었다.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채식주의자》)을 수상했다.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소년이 온다》), 2018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채식주의자》)을 받았다. 이미 유럽에서도 한강 작가는 귀에 익은 소설가였다.
한·중·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한강 작가가 5번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가이오젠(중국·2000년), 모옌(2012년·중국)에 이어서 5번째다.
오에, 일본의 수치를 드러내 ‘일본의 양심’이 되다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최초로 아시아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설국》이 대표작품이다. 《설국》은 최고의 소설 도입부로 지금까지도 회자하고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눈의 고장(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는 게 그것이다.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처럼 짧은 문장이다. 하지만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설국》의 첫 구절만 그런 게 아니다. 가와바다의 문장은 전부가 그렇다. 《설국》 완성 후 10년 동안 보석세공 하듯 글을 갈고 다듬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글의 정교함을 살렸다. 그 결실이 바로 일본 서정 소설의 진수였다. 일본 정서의 바탕은 세련된 전통미와 심리적인 묘사 그리고 에로티시즘이라고 한다.
그의 소설에는 허무, 고독, 집착의 이미지가 진하게 베여 있는 일본의 전후문학 분위기 때문이라는 게 문학평론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가와바다는 1972년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가스관을 입에 물고 자살했다.
일본은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뒤에야 다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일본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했다. 오에는 일본 현대문학의 새 출발지로 평가받는다. 오에는 “중심을 비판하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밝힌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작품에서도 그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난다. 전후 세대의 인권과 장애를 다룬 《개인적인 체험》, 저마다 지닌 내밀한 상처와 수치심을 구조적 차원에서 조명한 《만엔 원년의 풋볼》 등을 집필, 큰 찬사를 받았다. 그만이 아니라 일본의 범죄(식민 침탈과 전쟁)에 대한 사죄를 촉구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의 증언록인 《히로시마 노트》, 일본 군사기지가 된 오키나와 근현대사를 다룬 《오키나와 노트》 등은 특히 유명하다. 이런 작품은 그가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증거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일본계 영국인으로 살고 있다. 또 작품활동도 영어로 하고 있다. 그의 소개는 생략한다.
가오싱젠, 반체제적 주제 다루다가 망명
중국에 최초 노벨문학상 영예를 안기 작가는 가오싱젠(高行健). ‘중국 문학계의 덩샤오핑’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중국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자였다. 특히 중국의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이 낳은 비극을 고발하는 데 앞장섰다. 대신 개인주의, 자유, 정체성이라는 반체제적인 주제를 다뤘다. 공산 체제의 반인륜적 행위를 전위적(아방가르드)으로 묘사했다. 문화대혁명의 비참한 경험을 지극인 개인적 관점에서 풀어낸 작품, 《한 사람의 성경》이 이를 잘 보여준다. 희곡, 오지 않는 버스를 막연히 기다리는 인물 군상의 모습을 통해 중국 사회에 대한 매서운 풍자와 함께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준 작품이다. 결국 ‘정신오염원(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유배당했다. 1987년 조국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는 아직 중국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1990년 천안문 사태를 그린 《도망》을 출간했다.
두 번째 중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관모예(管謨業)다. 필명 모옌(莫言)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 최고의 소설가다. 이름은 듣지 못해서도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인 금곰상 수상작, ‘붉은 수수밭’을 알 것이다. 이 작품의 원작자다. 원작은 《홍까오랑 가족》이다.
두 번째 중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관모예(管謨業)다. 필명 모옌(莫言)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 최고의 소설가다. 이름은 듣지 못해서도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인 금곰상 수상작, ‘붉은 수수밭’을 알 것이다. 이 작품의 원작자다. 원작은 《홍까오랑 가족》이다.
묘옌, 중국공산당에 맞선 공산당원?
2012년 그가 수상자로 지명되자 불똥이 스웨덴 한림원으로 튀었다. 그가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공산 체제에 협력해서 선전, 선동에 앞장선 ‘체제 스피커’라는 오해를 산 것이다. 실제로 중국 반체제 학자를 중심으로 “어떻게 공산 체제 순응자에게 노벨상을 줄 수 있느냐”라고 항의와 공격했다. 그가 중국 공산당 기관지 등에 어떤 글을 썼는지는 필자로서는 알 수 없다. 적어도 그의 작품에서는 공산당 체제 수호와 공산당 이념의 선전,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우상에 앞장선 ‘기생지식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대표작 《개구리》다. 《개구리》에서는 중국식 산아제한 정책인 ‘계획 생육’을 다룬다. 계획 생육은 한 가구 한 자녀 갖기 운동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산부인과 의사인 고모다. 그는 매일 죄책감 없이 ‘살생’을 한다. 퇴직 후 ‘극악무도한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었음을 깨닫는다. ‘도살집행자’의 최후는 자살 기도다. 생명윤리에 대한 자각이다.
하지만 고모도 한 마리의 ‘개구리’였다. “묶지(정관 수술) 않으면, 가옥을 무너뜨리고 유산시키지 않으면, 방을 허물고 소를 끌어낼 것이다. 한 사람이 초과 출산하면 온 마을 남자들을 묶어버릴 것이다”라는 당의 명령, 마오쩌둥의 지시, 국가의 정책에 맹종하는 순진한 부역자였다. 개구리는 뒤늦게 후회하고 속죄한다. 개구리의 참회록을 모옌이 대신 남긴 것이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리얼리즘을 지향하고 있다. 《술의 나라》, 《사십일포》, 《탄샹싱》, 《풍유비둔(豊乳肥臀)》, 《달빛을 베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