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받는 권력은 죽은 권력이다

2024-10-21     김경은 기자

“국가지도자가 조롱, 경멸의 대상으로 추락할 때 정상적인 국가 운영은 불가능해진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국가 권력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대통령이란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로 국가 정책을 결정한다. 국가 정책은 국민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삶은 국가지도자의 역량에서 달렸다고 국민은 믿는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경찰의 날 기념사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사진=대통령실 사진기자단)

희망은 사랑과 지지로 표현된다. 지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사명을 인식하고 국가의 밝은 미래를 개척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 리더십은 또 ‘국민의 대표’라는 명예를 지킬 때 발현된다. 비록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없는 준비되지 않았던 국가지도자라고 해서 그 기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이 ‘무식하게, 철없이 떠드는 바보’라면 국민은 어떤 생각이 들까. 억울함에 화를 참지 못할 것이다. 자괴감이 치밀 것이다.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 ‘평가’가 대통령을 가장 잘 아는 부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김건희 여사와 정치 브로커 명태균 사이의 통화 내용에서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었다. 황당하고 당황스럽다. 김건희 여사는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 “지가 뭘 안다고”라고 말한다. ‘우리 오빠’와 ‘지’의 실체와 관련, 대통령이냐, 친오빠냐는 논란이 있다. 용산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아니라 친오빠라고 주장한다. 오빠가 친오빠라고 해도 큰 문제다.

이미 국민은 그 '오빠'를 대통령으로 믿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철도 없고 무식한 오빠’라고 조롱받고 경멸받는 걸 두고 보기 힘들다. 국민의 대표자가 희화화되고 동네북처럼 얻어터지는 상황에서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김건희 여사의 이런 저런 발언이 공개되면서 윤 대통령은 ‘벌거숭이 임금님’이 됐다. 대통령의 권위는 파괴됐다. 아니 권위가 소멸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과 권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복종시키는 힘이다.

권위는 권력 행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또 다른 힘이다. 권력은 권위를 통해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권력의 힘이 빠졌다는 얘기다. 이미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 김건희 여사의 불기소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보라. 

더 이상 권위가 무너지는 현상을 국민이 즐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권위를 바로 세워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품위를 회복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품위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품위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명예롭게 하는 것이다. 품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윤 대통령이 공적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김건희 여사 말대로 김 여사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지,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위법이나 불법이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미 김건희 여사 문제는 윤 대통령의 문제가 됐다.

김대남 전 비서실 행정관의 ‘십상시’ 녹취록이 나오는 순간 ‘한남동 라인’은 윤 대통령의 해결과제가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이나 용산 대통령실은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그런 일 없다면서 고집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용산 비서실에 김건희 라인은 없다. 오직 대통령 라인만 있다”고 대통령실은 주장하지만 이런 얘기가 처음 나온 건 김건희 여사와 팀워크를 이뤘던 행정관의 입이었다. 그런데도 이를 못 들은 척하는 것은 결국 김건희 여사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고 보는 게 국민의 시선이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도 마찬가지다. 명태균의 출현 그 자체가 ‘비선’의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거기다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국정 개입과 공천 개입 의혹까지 불거졌다. 그런데 용산 비서실은 명태균에 대한 해명 하나 변변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2,000개나 갖고 있다는 ‘명태균 파일’이 두려운 것인가. “윤 대통령이 취임 전 두 번 만났다”라는 거짓된 해명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소만을 부를 뿐이다.

윤 대통령은 자금이라도 선제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 먼저 김 여사가 국민 앞에 서서 직접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내 역할만 충실하겠다”라고 한 대선 전 약속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그것도 눈으로 확인할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미 똑같이 사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대통령실 개편도 해야 한다. ‘십상시’는 물론 이들에 대한 지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국무위원과 달리 용산 비서실 개편은 윤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단행할 수 있지 않은가.

김건희 특검법도 수용해야 한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까지 지속될 수 있는 문제다. 언젠가는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게 정가의 다수 견해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맞서길 바란다. 피한다고 피할 수 없는 문제다. 특검을 자청해서 의혹을 낱낱이 해소해야 한다.

'철없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천운을 타서 대통령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지도자로서 영광을 얻을 수는 없다. 국민의 조롱거리가 된 대통령은 권력을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조롱과 멸시의 대상으로 남겠다면 스스로 대통령으로서 생명을 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임기가 아직도 절반이 남았다. 그렇지만 나머지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결정할 시간은 결코 많이 남아있지 않다. 실기한 해결책은 해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