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대전대 복싱감독 아들 결혼식 빛낸 '왕년의 별들'

2024-12-26     조영섭 기자

폭설이 내리던 지난 주말 대전광역시 컨벤션 웨딩홀에서 한정훈 대전대학 복싱 감독의 아들 결혼식이 열렸다.

대전대학 한정훈 감독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악천후(惡天候)에도 불구하고 멀리 목동에서 SM 프로모션 대표이자 국민대학 홍성민 복싱 감독이 승용차를 몰고 와 필자와 함께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현장을 찾을수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권만득 KBA 심판위원장, 김대호 KBA 사무국장, 유명구 김해 복싱체육관 관장, 오인석 전 대표팀 감독,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LH급)금메달 홍기호, 강월성 전북복싱연맹 전무, 대한복싱협회 심판위원인 김종대 계룡체육관 관장 등이 식장을 찾았다. 임영제, 지택림, 강민구, 박일규, 송세종 등 전 현직 대한복싱협회 심판위원들도 대거 참석해 매서운 겨울 추위를 녹였다.

김대호사무국장(왼쪽부터), 한정훈 회장, 오인석 전 대표팀 감독, 홍성민 국민대 감독.

특히 한정훈 감독이 37년간 대전체고, 대전대, 대전 동구청 감독을 하면서 탁월한 지도력으로 배출해낸 국가대표 출신 신은철, 임재환, 양현태, 최진우, 김태규, 이정훈, 송인준, 김왕순, 장형욱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임영제(왼쪽부터), 홍기호, 지택림, 박일규 심판위원.

 1962년 6월 충남 대덕구 출신의 플라이급의 한정훈은 대전체고 재학시절 허영모를 꺾은 김종옥을 비롯해 윤승희, 오종서, 최태영, 장수곤 등을 차례로 잡으며 제60회 전국체전, 30회 학생선수권, 8회 김명복배를 휩쓸었다. 그는 학원 스포츠를 평정했다.

그리고 1979년 12월 모스크바올림픽 선발전에 라이트 플라이급으로 출전, 겁 없이 성인무대에 도전한다.

그러나 국가대표 홍진호, 홍동식과 한 뼘의 전력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판정패해 본선 입성에 실패한다.

1982년 한국체대에 진학한 한정훈은 레이저빔처럼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로 무장한 허영모와 박제석 황동룡 의 견고한 벽에 막혀 전국체전 결승에서 3차례나 고배를 마신다.

오천석(왼쪽부터), 이성원, 송인준, 한정훈 회장, 김왕순, 홍성민 국민대 복싱감독.

태극마크 한 번 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1987년 한정훈은 모교인 대전체고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는다. 이곳에서 90년대 한국 아마복싱을 빛낸 명 복서들을 육성하기 시작한다. 

1973년 충남 예산 출신의 신은철은 한정훈 사단에서 배출한 수많은 별들중 가장 밝은 북극성 같은 별이다.

1992년 대전체고 재학시절의 임재환.

1989년 대전체고에 진학 대전대학, 상무를 거친 신은철은 전국체전에서 8차례 우승한다.1992년 K컵 국제복싱대회 금메달 93년 KESC 국제복싱 금메달 95년 마닐라컵 금메달등 국제대회 3관왕도 거머쥔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참가, 1997년 아시아선수권 은메달ㆍ세계선수권(헝가리) 동메달,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동메달 등 페더급과 라이트급 2체급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국위를 선양했다.

여담이지만 신은철의 탄생지인 충남 예산은 한국복싱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의경 선생 탄생지다. 성 선생은 일본에 유학해 대학을 다니면서 1929년 9월17일 이 땅에 최초의 조선 권투 구락부를 설립했다. 한국복싱의 효시로 불린다. 

그 때문 이었을까! 복싱의 성지(聖地) 예산은 프로복싱 동양 챔피언을 지낸 김현, 신춘교, 문태진, 윤석현, 박봉관 등 무려 5명의 복서들을 탄생시켰다. 이밖에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신동길, 올림픽 대표 김재경, 아시아선수권 대표 백승영ㆍ배경석을 비롯해 차상준, 김원경, 최응산, 최태영, 이인경 등 수많은 명 복서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탄생했다.

임재환(왼쪽부터) 강월성 전무, 신은철.

상무에 입대해 명장(名將) 이흥수 감독의 조련을 받은 신은철은 1997년 대한복싱협회 선정한 최우수 복서(MVP)에 뽑혔다.

신은철과 동갑이지만 대전체고 1년 후배인 임재환은 신은철과 더불어 한정훈 사단의 양대산맥을 형성한 명복서다.

그는 대전체고와 대전대학을 거치면서 컴퓨터처럼 정교한 복싱을 펼쳐 두 번이나 WBC 페더급 챔피언에 오른 지인진 (당곡고)을 비롯해 서원복(호남대), 박정필(서울시청), 정상호(대전대)를 판정으로 잡고 고교생으로 유일하게 국가대표로 발탁된다. 1993년 제15회 인도네시아 대통령배에 출전해 어린 나이에 천금같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그는 대전대학 재학 시절에 한국체대 김병쾌에게 K0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배기웅, 이근식, 조영주, 이태훈 등 한국체대 복싱 선수들과 5차례 맞대결해 전승을 거두면서 한국체대 킬러로 크게 부각됐다.

대전체고 한정훈 감독의 제자 중에 김왕순 전 동산중고 복싱 감독도 빼놓을수 없는 화려한 스펙을 겸비한 인물이다.

1969년 대전 출신의 김왕순은 용인대 2학년에 재학중인 1990년 제2회 마닐라시장배 대회에 국가대표로 출격해 웰터급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1993년 한정훈 감독의 추전으로 충남체고에 입성해 3년 동안 전국체전 금메달만 8개 수확한 명장으로 변신한다.

이후 한밭중과 과수원 중학팀을 맡아 소년체전에서 무려 12개의 금메달을 획득 금메달 10개를 획득한 예산 덕산 중학 박봉관 감독을 제치고 소년체전 금메달 최다획득 지도자로 반석 위에 우뚝 선 자랑스런 한정훈 사단의 일원이다. 

한편 결혼식에 참석한 또 다른 인물들로 전 대표팀 감독을 지낸 복싱계 자랑 스런 체육학 박사 1호 오인석과 그의 동생 오천석이 동반 참석했다.

이들은 나란히 형제가 한국체대 출신이란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이는 성광배, 성동현 부자(父子)가 한국체대 출신이란 점과 맞물려 보기 드문 매우 진귀한 기록을 보유한 당사자(當事者)들이다.

1976년부터 4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10차례 전후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참가한 오인석은 국제무대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한 복서로 기록되어 있다.

현역 시절 박인태, 장흥민, 마수년을 꺾고 국가대표에 발탁된 오인석과 관련해 필자가 기억하는 대회는 4차례다. 1976년 3월 제2회 킹스컵 국제대회에서 1회전에서 홈링의 수완 실파야에게 판정패를 당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77년 아시아선수권 대회 2회전에서 일본의 바고우찌에게 판정패를 당한 오인석은 그해 태국에서 개최된 제3회 킹스컵 대회에 출전해 베네주엘라의 에디 세테노와의 2차전에서 3ㅡ2 판정패를 당한다.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오인석은 북한의 김윤철에 3ㅡ2 판정에 분루를 삼키면서 노메달에 방점(傍點)을 찍은 불운의 복서다.

필자가 전북 대표로 활약할 때 이용선, 김재봉 관장과 함께 필자를 지도한 전북 남원 출신(1957년생)의 강월성 전무도 현장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분이 24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전북복싱협회 전무로 일하는 동안 송학성이 전국체전 8연패를, 공두환이 6연패를 달성했다. 이 동안 단 한 번도 전북복싱이 종합 5위권 밖으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지도력을 보인 명장이다. 

1976년 57회 전국체전 고등부 (페더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강월성은 남성고 졸업반인 1977년 58회 전국체전에서 LW급으로 출전해 전남대표 주항선에 판정패 은메달을 획득했다. 참고로 주항선의 금메달은 목포시 복싱 첫 전국체전 금메달로 기록됐다.

복싱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신준섭을 위시해 강월성 전무의 '미다스의 손'(Midas touch)을 거쳐간 황인도, 김장섭, 전진철, 박태림 등 국가대표 선수들은 전북복싱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1960년 대전 출신의 지택림은 1958년 제59회 전국체전에서 킹스컵 대표 출신의 곽동성의 돌풍을 잠재우고 밴텀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체대 출신의 국가대표다. 1979년 대통령배 대회에선 페더급으로 출전해 국제대회 3관왕 이현주(목포대)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1956년 대전 출신의 박일규는 복서 출신으로 드물게 충남대학을 특기생이 아닌 일반 응시자 자격으로 합격한 두뇌파 복서다. 1975년 10월 제56회 전국체전 일반부 라이트 미들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지덕체(智德體)의 진수를 보여준 인물이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LH급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북한의 이운용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홍기호는  1962년 충북 괴산 출생으로  개그맨 홍기훈의 사촌형으로도 유명하다. 천부적으로 주력이 발군인 그는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 난 뒤 자신의 모교 서원대학 복싱팀을 맡는다.

그 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동메달 리스트인 홍성식을 비롯해 조석환, 황경섭과  2005년 세계선수권 플라이급 우승자 이옥성 등 톱복서들을 화수분처럼 쉼없이 배출했다. 

끝으로 오늘 대전 복싱의 희망봉(希望峰)인 대전대학 한정훈 감독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수많은 하객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이번 주 스포츠 칼럼을 마무리한다.

복싱전문 조영섭기자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1980년 복싱에 입문했고 현재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 복싱인이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2018년 서울시 복싱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