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정부, 전 세계 상대로 AI칩 수출규제
120개국에 적용될 칩 수출 규제 발표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규제 조치 중국으로의 고성능 AI칩 유입 차단 목적 엔비디아는 강력 반발, EU도 우려 표명
[서울=뉴스프리존]정병일 기자= 미국 정부가 세계 120개국에 적용될 고성능 인공지능(AI) 칩 수출 규제안을 발표했다. 중국의 AI 개발을 막기 위해 바이든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AI칩 수출 규제 중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조치다. 그러나 엔비디아를 비롯한 칩 생산업계가 반발하고 있고 유럽연합(EU)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미 백악관은 13일(현지시각) 성명(FACT SHEET)를 통해 AI가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에악용될 위험성을 거론하며 이 기술을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국가 안보와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AI 확산에 대한 임시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새 규칙의 내용은 미국이 생산하는 고성능 AI칩에 대해 120개 국가를 세 범주로 나눠 수출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고성능 AI칩은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H100'과 같은 데이터센터용 그래픽처리장치(GPU)와 'RTX 6000 Ada'와 같은 전문가용 GPU들이다.
이런 고성능 GPU는 AI 모델 개발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파워 확보에 필수적이다. 특히 최근 집중 개발되고 있는 대형언어모델(LLM)들은 변수가 수천억 개에 달하는 거대 모델들이어서 이를 가동하고 훈련하기 위해선 막대한 컴퓨팅 능력이 필요하고 여기 필요한 칩이 데이터를 병렬 방식으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GPU다.
바이든 정부는 이런 칩의 수출과 관련해 3단계의 라이선스 시스템을 만들었다. 먼저 18개 동맹국에 대해서는 제한없이 자유롭게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호주,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대만, 영국이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이란, 북한 등 이미 미국의 무기 금수 조치를 받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선 칩 판매를 금지한다.
이들 두 그룹 사이에 있는 100개 가까운 국가들에 대해서는 칩 판매의 상한선을 적용하되 정부간 특별 협정을 통해 수량을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이 중국으로의 고성능 AI칩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 추가된 바이든 정부의 새 규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에 대해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AI가 확산되는 방식을 규정할 글로벌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려는 시도"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는 멕시코나 스위스, 폴란드 또는 이스라엘과 같은 국가의 정부들을 화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들이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건설할 때 동맹국을 선택 지역으로 삼도록 해 최첨단 AI 모델을 미국과 그 파트너국의 국경 내에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와 관련해 "이 규칙은 최첨단 AI를 훈련하기 위한 인프라가 미국이나 가까운 동맹국의 관할권에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취재진들에게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가장 타격을 입게 될 엔비디아는 강력 반발했다. 네드 핀클 엔비디아 부사장은 성명을 통해 이 규칙은 "전례가 없고 잘못된 것"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혁신과 경제성장을 탈선시킬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이날 약 2% 떨어졌다.
미국의 금융서비스 회사인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분석가는 "현재 엔비디아 칩의 절반 정도가 미 정부의 수출 규제 국가에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새 조치는 시장을 상당히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의 존 노이퍼 회장은 "이 정도 규모와 강도의 정책 전환이 대통령 교체 며칠 전에 서둘러 발표되고 산업계에서 의미 있는 의견이 전혀 제시되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리스크가 높고 시기도 위태롭다"고 NYT에 말했다.
유럽위원회(EC)의 헨나 비르쿠넨 부위원장과 마로시 세프초비치 위원은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오늘 미국이 채택한 일부 EU회원국과 소속 기업들에 대한 첨단 AI칩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