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 칼럼] 이재명의 먹사니즘, 잘사니즘...비판의 여지 없는가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5-05-08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호텔을 10만원 주고 예약해가지고 이 10만원으로 침대를 사고 뭘 사고 뭘 사고 한 다음에, 나중에 호텔 예약을 취소하면 돈은하나도 들어간 게 없는데 경제는 살아났습니다. 이게 이재명의 경제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정확하게 얘기해줄게요. 호텔은 망했죠"

지난 4월 11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한 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제관을 요약하고 있는 이른바 '호텔경제' 짤방에 대해 짧지만 강렬한 코멘트를 날린 것이다.

혹시 모르시는 독자들을 위해 전후 맥락을 설명해 보자.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갑자기 치러진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는 기본소득을 본인의 핵심 정책 의제로 삼고 그것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다.

그림의 내용은 이준석 대표가 잘 요약한 바와 같다. 10만원의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호텔은 침대에 투자하고, 가구점은 그 돈을 소비하고, 등등의 과정을 거치다가 결국 호텔 예약자가 예약을 취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경제' 짤방의 아래쪽에 붙어 있는 설명에 따르면 이 상황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왜?

"결과적으로 마을에 들어온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한 바퀴 돌면서 마을 상권에도 활기가 돕니다. 이것이 바로 경제 활성화입니다."

이 이야기를 다시 곱씹는 이유가 있다. 첫째, 때 이른 대선이 또 치러지게 된 5월 현재까지도 이재명 대표의 경제관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표현'을 바꾸긴 하지만 그의 본심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호텔경제' 짤방을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 '호텔경제' 짤방에도 나름의 일리가 있다. 잠깐, 지금 필자는 이재명 대표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이유로 '줄서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특정한 의견을 너무도 줄기차게 고집하고 있다면, 무턱대고 비웃기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이 어떤 논리를 바탕에 두고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경제' 짤방은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 그 점을 확인해야 한다. 비록 나름의 일리가 없지 않은 주장이라 해도, 그것이 올바를 수 있는 여건은 현실적으로 그리 흔치 않고, 특히 오늘날의 대한민국 실정과는 맞지 않다.

이재명 대표의 생각이 2017년이나 2025년이나 똑같다고 볼 이유는 충분하다. 이 대표가 지난 4월 10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11분짜리 대선 출마 선언 영상이 있으니 말이다. 흰 와이셔츠와 스웨터 차림의 이재명은 '먹사니즘'에서 '잘사니즘'으로 이어지는 본인의 경제관을 제시했다. 

대대적인 정부 투자를 통해 경제에 '마중물'을 부으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논리아래 '한국형 엔비디아를 만들겠다', 'AI에 엄청난 투자를 하겠다'는 등, 이재명 대표가 제시하고 있는 막대한 액수의 정부 투자 계획은 모두 그런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한국형 엔비디아'라는 호텔에 예약을 하면, 설령 그 호텔이 돈을 못 벌더라도 돈이 돌면서 국가 경제가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를 반박한 이준석 대표는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이재명 식의 경제관이 옳을 수도 있다. '이재명의 호텔경제'가 반드시 틀렸다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경제 성장 그 자체의 본질 때문이다.

경제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결국은 생산과 소비의 총합이 곧 경제를 이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면 우리의 경제가 그만큼 커진다. 인류는 18세기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고대 로마 시대만큼의 생산과 소비 수준을 달성하지 못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고대 로마의 유적이 심지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마저도 휘둥글하게 만드는 이유다.

경제 성장이란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생산과 소비가 늘어날까? 어떤 생산은 자연적 요인으로 늘어난다. 가령 날씨가 좋으면 농사가 잘 되고, 농사가 잘 되면 농작물의 생산량이 증가할 것이다. 어떤 해에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면 그 아이들이 먹어치우는만큼 농작물 소비도 늘어난다. 산업사회 이전,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과 소비는 이렇게 움직였다.

자본주의 이후는 다르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동기로 경제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향후 경기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한다. 기업 뿐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그렇다. 학생들은 미래의 경제적 전망에 따라 학과를 선택하고 진로를 정한다. 은퇴를 앞둔 직장인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창업 아이템이 뭐가 있을지 고민한다. 우리의 생산과 소비는 현재의 생산력과 수요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에 따라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가 긍정적으로 형성되고 유지될 경우, 경제 그 자체의 전망이 밝아진다.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사람들이 생산과 소비를 늘리면 정말로 경제가 성장한다. 반대로 그 누구도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지 않다면, 생산과 소비도 늘어나지 않을 것이고,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다. 요컨대 '경제성장'에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요소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주창하는 '호텔경제'로 돌아가 보자. 호텔에서 10만원 어치의 예약을 받아 이런 저런 주문을 하고 마을에 돈이 한 바퀴 돈다면 그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10만원 어치의 생산과 소비를 할 것을 기대하며 그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니, 분명히 마을 경제에는 활기가 돈다.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호텔이 받아야 할 돈 10만원을 떼이면 문제가 달라진다. 호텔은 망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 사례가 '마을'이라는 작은 단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거시경제로 보자면 사정이 달라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 과정만 해도 그렇다.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되었던 한반도의 작은 나라가 미국과 일본 등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여, 즉 빚을 져서 산업화의 물꼬를 텄고 오늘의 기적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등장하고 또 폐업했지만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는 잘 살게 되었다.

경제 주체 모두가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는 한 그 나라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시점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 그 자체는 나라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있어서 오답이 아니라 정답에 가깝다.

물론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더 나아가 세계 경제 전체가 성장하고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고도화된 산업 구조 속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현재 출산율을 놓고 볼 때 대한민국이 소멸해버릴 것이라는 위기론은 너무도 다양한 경로로 많이 제기되어 더는 걱정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재명 대표처럼 '일단 돈을 들이 붓는' 정책을 펴면 어떻게 될까. 생산과 소비가 알차게 늘어날 것이라는 바람직한 기대 심리 대신, 그저 '나랏돈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의 한탕주의만이 판치게 되면, 경제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오히려 늘어난 국가 부채로 인해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지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걱정하는 현재의 젊은이들이 자녀를 낳지 않아, 국가의 미래가 더욱 어두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따름이다.

'호텔경제'조차도 어느 부분은 옳다. 경제는 심리다. 정부의 지출이 늘어나면 사람들이 돈을 더 쓸 가능성이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렇게 늘어난 통화량이 생산을 늘리는 대신 그저 일회적이고 한시적인 소비에만 집중된다면, 국가 전체의 생산력은 늘어날 수 없고, 경제는 오히려 더 길고 깊은 침체의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나랏돈을 여기저기 쓰겠다고 공약하는 공허한 리더십이 아니다. 출산율로 대표되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입에 쓴 약'을 국민에게 제안할 수 있는, 용감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사람들에게 '용돈'을 나눠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이재명식 기본소득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지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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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정태는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이다.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일보, 서울신문, 신동아에 칼럼을 기고한다. '프리랜서', '불량 정치' 등을 썼으며,'아웃라이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칩 워' 등의 번역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