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의 시사직격] 대중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경일 피스아고라 대표

2025-05-15     조경일 기자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은 한미일 협력강화의 일변도였다. 가치외교라는 슬로건아래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에 매진했고 이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대중관계는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러우전쟁 발발과 함께 한국은 ‘자유진영’의 일원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간접지원에 나섰다. 중국도 러시아에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나섰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으며 파병이라는 적극적 지원에 나섰다. 사실상 한미일 대 북중러, 다시 냉전적 진영대결의 구도가 사실상 고착화되는 분위기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두고 서방의 국제사회가 일제히 비판에 나섰지만 북러 양국은 국제법에 저촉되는 부분 없는 양국의 주권적 행동이라고 강변했다. 북러 양국의 군사동맹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가운데서 양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했고, 윤석열 정부의 미국과 일본에 편향된 외교의 반사작용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에서 ‘가치’는 보편적 의미의 자유보다는 단지 ‘자유진영’을 의미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중국은 ‘중공’일 뿐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대중관계는 반중정서를 사회 기저에 배태시키는데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계엄선포로 가치외교는 반중정서를 더욱 확산시켰고, 종북척결과 함께 극우세력이 등장하는 명분이 됐다. 탄핵으로 새롭게 치뤄지는 대선 정국에서도 여전히 보수당 후보는 ‘자유통일’을 외치며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을 앞세워 체제대결적 장면을 지속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4대 열강의 틈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태생적 운명론에 갇혀 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으로 대표되는 양대 진영 사이에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양대 세력의 전초전 역할을 해왔다. 냉전이 해체되면서 1992년 한중관계가 수교 이후 30년 세월이 지나는 사이 한국의 수출무역 의존도는 중국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반면 외교는 여전히 미일 중심으로 기울었고, 윤석열 정부는 적극적으로 틈을 벌여놓았다.

한미일 협력 강화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안보적 위험을 더 키우는 모순을 가져왔다. 북중러의 협력강화는 한미일 협력 강화의 반대급부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한미일 협력 강화가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는 북중러 협력 강화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한국의 대외정책 기울기에 따라 위협의 틈새가 달라질 수 있다.

러우전쟁은 미러의 대리전이자 남북의 간접 충돌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의 서방으로의 급격한 기울기는 곧 러시아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했다. 우크라이나 교훈처럼 북한의 급격한 러시아로의 기울기나 한국의 급격한 미국으로의 기울기는 남북한 당사국들에게 모두 균형의 틈새가 벌어진 결과로 안보위협을 초래하게 된다.

북중러 대 한미일의 갈등구도 속에서 이 틈새를 좁힐 수 있는 주체는 남과 북이다. 이는 남북의 신뢰관계 구축으로 가능할 수 있다. 미중갈등이라는 패권국들의 갈등 속에서 한반도의 불안이 증폭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주도적으로 중간자적 역할, 한반도로 튀는 불안을 상쇄하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게 약소국인 한반도의 위치이자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중일러 4강의 협력과 동의가 없이는 평화도 통일도 불가능하다. 대중관계는 단순히 외교의 문제가 아니라 통일 또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대중관계는 대미관계에 치우친 채 결코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윤석열정부처럼 반중, 혐중 정서로 치부할 경우 결국 경제적×안보적 손실은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게 될 수 밖에 없다. 대중관계 회복은 친중의 문제가 아닌 실익, 경제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중관계를 이데올로기나 체제대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외교안보는 더이상 군사력이나 ‘자유’라는 가치로만 가늠되지 않고 경제안보, 사회안보, 기후안보 등 전방위적인 협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최근 AI인공지능 시대에 새로운 안보의 개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에 따라 관세폭탄을 터뜨렸고 주요 타겟은 중국이었다. 미국은 145%의 대중 관세를 선언했고, 이에 중국이 보복성 관세 인상으로 나서며 관세전쟁이 치열해지는 듯 했으나 역시 실익을 챙기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 모양이다. 미중 양국은 지난 12일 공동으로 발표한 ‘제네바 경제 무역 회담 연합 성명’을 발표하며 90일 유예라는 관세전쟁 휴전을 선언했다. 물론 트럼프의 심기변화에 따라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미중 양국은 관세전쟁으로 갈등에 치닫는 듯 했지만 공식 비공식 라인에서 끊임없이 물밑접촉을 놓지 않았다. 완전히 단절된 남북관계와 다른 지점이다.

중국경제는 지금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기술도약이 사회 전반에서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었고 국가 중심의 집중투자로 사회 인프라가 한국과 미국을 앞서고 있다. 최근 중국의 변화는 “China lives in 2050”라는 소셜밈(meme)으로 유행하는 문장이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국가중심의 기술투자, 기업투자로 4차 산업이 사회 전반에 도입되고 있으며 AI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사회 인프라에 대거 적용되고 있다. 더 이상 후진적인 중국이 아니다.

기술산업 측면에서 중국은 이미 한국을 압도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미국에 앞서기도 했다. 특히 사회 인프라적 요소에 적극 도입됨에 따라 일상의 삶이 ‘Year 2050’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은 여전히 ‘반중’이나 ‘혐중’따위의 혐오정서에 기반한 외교정책이나 수립하고 계엄선포를 하고 혐중정서에 올라탄 극우가 수권정당과 연계되어 있으니 뒤떨어졌다고 평가 할 수 밖에 없다. 다행이 국민들의 성숙된 시민적 참여 덕분에 민주주의 후퇴를 어느정도 막았을 뿐이다.

중국이 중앙집중적으로 도약하는 사이 한국은 여전히 중국을 개발도상국 정도의 저평가된 관점으로 바라보니 미중패권 다툼 속에서 양쪽으로부터 잃기만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국가비전이나 대외정책에서 대대적인 혁신과 변화가 없이는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어렵다. 물론 중국이 그렇다고 사회 전반적으로 한국을 앞선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대중관계를 단지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 해야 하는, 친미정부 또는 친중정부로 치부하는 정도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안보체계 안에서 실익을 추구해야 하는 섬나라의 운명을 더 처절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사이 북한도 가파른 속도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배급경제는 30년 전에 무너졌지만 북한의 경제는 여전히 숨쉬고 있다. 그것도 우리와는 다른 방식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2차산업에서 3차산업으로 단계적인 변화에 머물지 않고 4차산업을 동시에 적용시키고 있다. 북한도 비슷하다. 2차 산업에서, 여전히 1차 산업에 머문 부문이 많지만, 3차산업을 단기적으로 수용하고 중국과 비슷한 4차 AI인공지능 산업을 동시에 수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북이 지금처럼 단절된 채 각자도생으로만 간다면, 즉 북한의 변화에 한국의 개입이 없다면 향후 미중갈등 또는 북중러 대 한중일 진영 갈등 속에서 레버리지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관계 개선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중요한 출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