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 칼럼] 토마 피케티에게 이대남 표심을 묻다

2025-06-05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제21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그 중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는 주제가 있다면, 단연 '왜 20~30대 남성은 유독 이준석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는가'일 것이다. 민주당 지지 성향의 일부 평론가들은 '이대남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독되었다'는 식의 단견을 내놓기 일쑤다.

그런 식으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사회 통합이라는 대의를 달성하기에도 역부족일 것이다. 이 현상은 미시적, 거시적 접근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의 현황에 대한 저널리즘적 시각을 거쳐, 세계적인 진보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아우르는 시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대선은 비밀투표로 치러진다. 그러니 누가 이준석을 얼마나 찍었는지 정확한 숫자를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대선은 샘플의 규모가 크기에 출구조사를 상당히 신뢰할 수 있다.

출구조사가 보여주는 이준석의 득표는 매우 인상적이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 남성에서 37.2%를 얻어, 24.0%를 얻은 이재명 뿐 아니라 36.9%를 얻은 김문수마저 누르고 1위를 기록한 것이다. 비록 전체 득표에서는 3위에 그쳤지만 20대 이하 남성만 놓고 보면 근소한 차이로 이준석이 대통령인 셈이다.

이준석의 인기는 30대 이하 남성에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비록 순위로 보면 3등이지만 25.8%를 얻었다. 특정 연령대에서 무시할 수 없을만큼 확고한 지지를 받는 대선 후보임을 입증한 셈이다.

문제는 그 인기가 전체 연령으로는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준석의 지지율은 40대 이하 남성에서 5.3%, 50대 이하 남성에서 3.2%에 그치고 있으며 그보다 높은 연령대에서는 더 낮아지는 패턴을 보여준다.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 중 3분의 1 가량은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찍는다. 반면 그 연령대를 벗어나면 군소 후보 수준의 지지만을 가까스로 얻는다. 대선 후보 이준석은 다소 과장 섞어 말하자면 일종의 세대적 단절선을 보여주는 '인간 지표'인 셈이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 났을까? 친 민주당 성향의 정치 평론가들은 '이준석의 여성혐오', '남녀 갈라치기' 등을 원인으로 손쉽게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태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이준석을 더 지지하는 것은 남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대 이하 여성의 이준석 지지율은 10.3%였고, 30대 이하 여성은 9.3%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는 40대 이상 남성보다 높은 수치다. 이준석에 대한 지지를 가르는 핵심 지표는 성별보다 연령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대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늘 있어왔지만 지금처럼 대선을 통해 수치로 확인된 것은 드문 일이다. 오늘은 이준석의 20~30대 득표가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사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권에서 벌어진 부동산 가격 폭등이 30대 이하 청년층의 대대적인 민심 이반을 낳은 것이다. 0.74%포인트라는 적은 표차로 승부가 갈린 20대 대선의 향방을 좌우한 '스윙 보터' 집단이 바로 30대 이하 미혼 청년, 그 중에서도 남성들이었다.

방금 나는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했지만, 어쩌면 이 논의가 낯설게 들릴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런 독자들을 위해 해당 주제를 잘 정리한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고재석 전 '신동아' 기자가 2023년 펴낸 '세습 자본주의 세대'(인물과사상사)가 그것이다. 

고재석은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1986년생으로 '자산 없는 30대'의 당사자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던 인물이다. 그는 진보 논객들의 책을 자양분 삼아 청년 시절을 보냈다. 출발은 진보였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을 겪으면서 도저히 민주당을 찍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집 한 칸 마련하는 꿈, 국가적 경제 성장에 발맞춰 자산 증식을 이루는 꿈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좌절은 한 사람이 아니라 세대 전체가 겪고 있는 것이었고, 기자 고재석은 자기 자신을 포함한 1980년대생을 취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냈다. 그 중 한 사례를 보자.

"1980년대생의 중윗값에 해당하는 1985년생은 문재인 정부 시기 32~37세였다. 1985년생 김아영은 바로 이즈음,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 결혼했다. 내가 10년쯤 알고 지낸 그는 한류 관련 정부산하기관에서 일하면서 박사과정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다. 그는 일부러 진보를 자처하진 않지만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 그는 "문재인 정부가 시장 원리를 너무 도외시한 나머지 돈 없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김아영이 보기에 이것은 세대 간 자산 불평등이다. 세대 사이에 느끼는 현실의 벽과 무게에 차이가 있다."(34쪽)

이것은 한 사람의 경험이 아니다. 1980년대생, 그리고 그 이후 출생자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세대 경험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 없는 이들은 집을 살 수 없었고, 집을 사더라도 '영끌'하여 매달 이자 내느라 허덕이는 삶을 감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런 이들이 민주당 정권에 비판적이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 아닐까?

이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제20대 대통령 선거 분석' 보고서에도 잘 드러난다. 내가 지지한 후보의 당선이 아니라 상대 후보의 낙선을 위해 투표했다는 '부정적 투표' 비율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30대 남성의 '비호감에 따른 지지 감정'은 35점으로 가장 높았다. 고재석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재명 혹은 민주당의 패배를 위해 투표한 비율이 '삼미남'(30대 미혼 남성)에서 가장 도드라졌다는 의미다."(60쪽)

남성 뿐 아니라 여성도 자산의 형성과 증식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심지어 여성에서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20~30대의 이준석 지지율이 높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이준석은 세대별로 나뉘게 된 경제적 운명에 대한 불만의 표출 경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남'이 지고지순한 존재는 아닐 테지만, 그들을 무턱대고 악마화하는 여론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민주당을 철통 지지하는 40~50대의 손가락질은 더욱 문제다. 고재석은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의 분석을 인용하며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다시 조귀동의 논지로 돌아가 보자. 그의 말대로라면 1983년생부터는 월세 거주가 늘고, 특히 1986년생의 세명중 한명은 월세를 내고 산다. 이름을 붙인다면 '임차인 세대'다. 40대는 '갭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 즉 피케티식 논리대로라면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서 얻는 소득을 취할 수 있었던 세대다. 말 그대로 '갭 투자 세대'다. 30대에게는 40대가 쥐었던 카드가 주어지지 않았다. 자산을 얻는 데 노동소득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걸 30대를 포함해 전 세대가 알고 있다."(71쪽)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가 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자산을 보유한 40대 이상은 시중에 돈이 풀리는만큼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받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반대로 자산 형성의 기회를 잡지 못한 30대 이하는 온갖 이유로 정부가 확장 재정을 펴고 그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수록 더욱 분통이 터진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부의 집중이 심화된 21세기에 이르면, 자본 이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커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못 가진 자'는 '이미 가진 자'를 이길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것은 외국 학자의 책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근로소득으로 자산소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부동산이 특히 문재인 정권 당시 너무도 폭등해버렸다. 청년들은 내 집을 마련하고 가정을 이루는 대신 주식, 그것도 급격하게 가격이 오르내리는 소위 'X잡주'에 도박성 투자를 하거나 코인 거래에 빠져든다.

이쯤에서 개인적인 입장을 밝혀두자. 나는 정치인 이준석이 여성 인권 문제를 인기몰이용 불쏘시개로 쓰는 것을 매우 우려스럽게 생각한다. 그렇게 부정적인 대중 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인을 지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인 이준석의 행보와, 그를 통해 불만을 표출하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의 존재는 별개다. 성마른 태도로 '이대남'을 힐난하는 이들의 근엄한 도덕적 태도에도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 구조는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다. 성실하게 일하는 청년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한 단계씩 성장하고 경제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릴 수 있게끔 하는 '희망의 사다리'가 부러진 상태다.

피케티는 이러한 상황을 "자본소득으로 인한 불평등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이대남'이 아니다. '이대남'을 손가락질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단편적인 시각이야말로 민주주의에 해롭다.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는 새 정부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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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정태는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이다.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일보, 서울신문, 신동아에 칼럼을 기고한다. '프리랜서', '불량 정치' 등을 썼으며,'아웃라이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칩 워' 등의 번역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