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왕' 프로챔프 박종팔과 '비운의 2인자' 야구 임호균이 세운 진기록
얼마 전 오래된 잡지를 펼쳐보다 전 프로복싱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박종팔이 80년대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투수 임호균과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을 발견했다. 이사진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들이 현역 시절 작성한 깨지기 힘든 진기록이 뇌리를 스쳐 갔다.
우선 1958년 전남 무안태생의 박종팔은 1978년 8월 도쿄에서 일본 신인왕 가즈오 고시마와 한일 신인왕 교류전을 벌혀 1회 라이트 훅 일발로 27초 만에 고시마를 눕혔다. 프로복싱 사상 국내 최단 시간 KO승으로 기록됐다.
아마츄어 국내 기록은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웰터급 준결승에서 황충재 가 기록한 13초(카운트 포함)가 최단 기록이다.
1980년 1월부터 박종팔은 1982년 12월까지 3년에 걸쳐 동양 미들급 타이틀 방어전을 15차례 펼쳐 전(全) KO승이란 깨지기 힘든 기록을 작성했다. 또 박종팔은 1980년 한 해에만 모두 7차례 동양 타이틀전을 펼쳐 전부 KO로 장식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박종팔은 1978년 8월부터 1983년 4월까지 4년8개월에 걸쳐 19연속 KO승을 기록해, 김태식이 갖고 있던 10연속 KO승 기록을 깨면서 국내 신기록을 다시 썼다. 이 기록은 훗날 백인철이 26연속 KO 기록을 세우면서 연속 KO 기록 2위로 밀려났다.
통산 46승 39KO 5패1무를 기록한 박종팔은 동양 타이틀과 세계 타이틀 통합(統合) 24차례 방어에 성공해, 22차례 통합 방어에 성공한 유제두 챔프를 앞섰다.
박종팔은 39KO 승 중 27차례는 5회 이전에 KO로 결판낸 속전속결형 파이터였다. 1986년 4월 IBF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박종팔은 미국 원정 3차방어전에서 도전자 비니 커토에 15회 KO승을 거두면서 국내 복싱 미국 원정 24연패 사슬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런 스펙을 보유한 박종팔은 세계적인 복싱 전문지 <Ring Magazine> 1994년 5월호에서 세계 최고의 슈퍼 미들급 챔피언으로 선정됐다.
박종팔은 1986년 12월 WBA 슈퍼 미들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멕시코의 갈라도를 상대로 2회 27초 만에 KO승을 거두며 IBF 타이틀을 획득한다. 이로써 국내 최초로 슈퍼 미들급에서 양대 기구(IBF·WBA) 정상에 올랐다.
1976년 전남 무안에서 상경해 짜장면을 배달하며 권투를 배운 박종팔은 현재 불암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남양주에 정착해 인생 3막을 보내고 있다.
한편 박종팔과 함께 표지 모델로 등장한 한국의 매덕스로 불린 제구력의 달인 임호균 투수는 1956년 3월 인천 태생이다. 임호균은 인천고 졸업반인 1974년 강호 대구상고와 휘문고를 상대로 한 해 2차례 노히트노런을 최초로 기록했다.
동아대 시절 임호균은 1978년 대통령기 대학 야구 대회에서 연세대 최동원과 맞대결해 국내 최초로 연장 18회까지 완투했다. 이 경기는 비록 연세대 4번 김봉연에게 결승 홈런을 맞아 패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명승부로 남았다.
1981년 실업리그 방어율 1위를 차지한 임호균(한전)은 1982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방어율 1위를 차지하며 우승했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유고)에 이어 구기 종목 사상 2번째 세계대회 우승이다.
1985년 임호균(롯데)은 청보 핀토스 장명부와 맞대결을 펼쳐 경기 시작 불과 1시간33분 만에 역대 최단 시간 완봉승을 기록했다. 1987년 8월 임호균(청보)은 해태전에 선발로 등판해 경기 시작 1시간54분 만에 73구를 던져 최소투구 완투(완봉승) 기록을 작성했다.
이 같은 기록들은 프로야구 출범 4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깨지지 않는 불멸의 대기록이다. 프로야구 최다 투구 기록은 1987년 5월 해태 선동렬이 롯데 최동원과 15회 완투 대결 끝에 기록한 232개다.
임호균은 비운의 2인자였다.
1983년 삼미에 입단했을 때 30승 투수 재일동포 장명부라는 장벽에 가려 12승을, 1984년 롯데 시절에도 27승을 기록한 황금팔 최동원의 위세에 밀려 10승을 기록하는 등 만년 2인자의 길을 걸었다.
임호균은 1982년 9월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길목에서 만난 호주전에서 6ㅡ6 동점인 연장 10회에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그리고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연장 15회 7ㅡ6 승리에 최고 수훈을 세웠다.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과 결승전을 펼친 한국 야구는 선동렬의 역투로 일본을 5ㅡ2 로 꺾고 8승1패로 우승을 차지한다.
만일 호주전에서 임호균의 수훈이 없었다면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연출된 김재박의 개구리 점프 번트, 한 대화의 극적인 3점 홈런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대회에서도 최우수선수(MVP) 상을 받은 선동렬(고려대)의 빛에 가려 임호균은 역시 2인자의 그늘에 머물렀다.
복싱 챔피언 박종팔과 야구 국가대표 임호균의 숨어있는 지난 기록과 비화를 채집(採集)해 나열해 보면서 이번 주 컬럼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