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의 시사직격] 아직 우리를 해방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미완의 해방
해방 80주년이다. 여기서 해방은 1945년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며 독립국가 건설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해방 3년 후 한반도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 대신 두 국가로 출발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게 벌써 77년째다. 우리는 곧 분단 80주년을 마주하게 됐다. 8.15 해방은 식민지 상태를 해방했지만 우리는 다시 분단되어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외세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적대시하는 분단에 다시 구속되었다. 언제든 다시 전쟁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특수한 관계’로 통일을 지향해 가자던 남북은 이제 적대적 두 국가체제가 돼 버렸다. 남과 북이 아니라 '한국'과 ‘조선’의 두 국가 관계로 기정사실화 됐다. 그래서 해방 80주년을 마냥 기쁨으로 축하하기에는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어쨌든 해방 80주년을 맞아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다짐은 여전히 필요하다. 나는 해방 8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불과 3년 만에 해방에서 분단을 맞이한 한반도는 여전히 해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해방이란
나에게 해방의 의미는 무엇일까 줄곧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에게 '해방'이 무엇인지를 사유함과 더해 “우리에게 해방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요즘이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나는 한국에는 '아오지'로 더 잘 알려진 함경북도 경흥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14년을 살았다. 중국에서 2년을 살았고, 한국에서 현재 21년 차를 살고 있다.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삶에 적용해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지금 해방의 공간에 있다. 북쪽이 나에게는 억압의 공간이었으니 남쪽은 자연스레 나에게 해방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해서야 새로운 삶을, 새로운 꿈을 얻었으니 나에게 해방의 의미는 남쪽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과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년 해방의 날이 올 때마다 특별히 ‘해방’의 의미를 더욱 사유하게 된다. 여전히 북쪽에 해방되지 못한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떠났든 탈북한 존재들에게 한국은 해방의 공간이 분명하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몸’과 ‘생각’이 구속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꿈꿀 수 있으며 시도해 볼 수도 있다.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시도는 해볼 수 있다. 다른 말로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더욱 해방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자유대한민국이라도 불완전한 해방이다. 남과 북은 여전히 체제경쟁을 하는 듯 보인다. 정확하게는 오래전에 체제경쟁이 끝났지만, 여전히 체제경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 것이다. 북한 체제가 여전히 건재하니 그렇게 바라본다. 실제로 북한 김씨 가문은 독재를 공고히 했고 인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은 김일성이 사망하고 30년이 지나서도 바뀐 것이 없다. 그러니 남쪽에서는 북한 인민들을 해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됐다.
한국에 정착한 3만5000여 명 가까이 되는 북향민(북한이탈주민)들은 해방되지 못한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며 조속한 해방을 요구한다. 하지만 북쪽의 가해자는 4대 세습까지 준비하는 듯 건재하고, 해방자를 자처하는 남쪽은 목소리 높이는 것 외엔 딱히 관여가 없다. 게다가 방법론을 두고 갑론을박도 모자라 서로를 적대시한다. 남남갈등이다. 이런 가운데 남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해방된 존재들은 가슴 한편에 고통과 부채를 안고 적응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남쪽에서 맞은 해방이 진짜 해방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건 애쓰면 가능하다. 막노동이라도 하면 먹고 사는 건 해결되니 각자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 물론 이것도 어려운 이들이 많다. 어린 자식들과 굶어 죽는 일도 있고, 백골이 된 지 1년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무연고들도 많다. 외로운 존재들이다. 북한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한국은 분명 해방의 공간임에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어떤 장치들이 있다. ‘탈북자’라는 꼬리표 하나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만들어내는 벽들이 많다.
서발턴(Subaltern)과 북향민
얼마 전 인도의 저명한 학자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이 온라인에서 이슈가 됐다. 강연차 한국에 방문했는데, 강연장에서 몇몇 태도가 문제가 됐다. 그의 태도는 이 글의 본질이 아니므로 생략하겠다. 내가 애써 이 글에서 스피박을 불러들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마 스피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스피박을 알게 됐다. 어쨌든, 스피박이 세계적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1988년 그가 발표한 연구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 때문이다. 서발턴(Subaltern) 개념은 탈식민주의 이론 중에 하나로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처음 사용했으며, 이후 인도 역사학자인 스피박이 이 이론을 발전시켰다. 간단히 개념을 설명하자면,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였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자신의 ‘옥중수고’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지배계급에 종속된 비(非)지배계급 집단을 서발턴이라 지칭했고, 이들이 어떻게 지배 이데올로기에 포섭되거나 저항하는지를 분석했다.
스피박은 이를 탈식민주의적 맥락으로 가져와서 급진적으로 재해석했는데, 서발턴을 단순히 억압받는 계급이 아니라, 서구 지식인들이 그들을 ‘대변(speaking for; vertreten)하려는 시도 속에서조차 진정한 목소리가 지워지는 존재로 해석했다. 즉 서구 지식인들이 선의를 가지고 서발턴 존재들을 연구하고 '재현(representation)'하려고 할 때조차 종종 서구의 인식론적 틀 안에서 서발턴들이 대상화되고 타자화되는 인식론적 폭력(epistemic violence)이 동반되며 이에 따라 결국 다시 서발턴의 목소리는 서구 지식인의 목소리로 대체되거나 왜곡되어 진정한 의미의 ‘말하기’가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 할 수없다'는 명제의 질문을 논문 제목으로 던진 것이다.
나는 철학전공도 아니며 스피박의 이론을 깊이 연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스피박의 서발턴 개념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이 서발턴 개념을 북향민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북향민들을 서발턴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나도 북향민 집단을 서발턴으로 일반화해서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발턴을 주체적 목소리가 결여된, 침묵을 강요당하는 존재라고 봤을 때, 북향민들 중에 많은 이들이 주체성을 갖고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북향민 집단을 서발턴으로 일반화해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서발턴의 위치에 서도록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인식론적 폭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목소리 없는 자들을 향한 인식론적 폭력이 서발턴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발턴화(Subalternization) 되는 존재들
스피박의 서발턴 개념은 한국 사회에 정착한 북향민 집단의 정체성을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여전히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북향민들은 남한 사회의 지배적 담론 구조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어떤 이해관계와 구조 속에서 증언을 할 수는 있지만 온전히 재현하지 못하고 타자에 의해 규정된다는 측면에서 서발턴의 위치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정확하게는 ‘서발턴화(Subalternization)’ 과정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북향민들의 목소리는 그들 자신에 의해 발화되기보다, 남한의 다양한 행위자들에 의해 ‘대변’되고 ‘재현’되는 경우가 많다. 북향민들은 정책이나 학술연구에 시행대상 또는 연구대상의 위치에 놓이며, 그것이 필요하다고 해도, 이들의 목소리는 통계화된 결과로 재현되곤 한다. 이는 북향민들 저마다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삶을 그래프나 수치로 단순화된다는 것이며 이러한 ‘재현’은 북향민들을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나아가 이러한 재현은 북향민들의 시간과 시대를 넘나드는 공간 경험과 기억으로 얽히고설킨 삶을 단순화시키는 측면이 크다. 특히 한국에서는 북한에서 살아낸 삶들이 이들의 경험적 자산이 되기보단 지워야 하는 불편한 짐으로 인식되는 한 이들의 지난 삶은 ‘대변’과 ‘재현’의 연속 속에서 단순화되고 삭제되기도 한다.
서발턴을 만드는 반공주의
한국 사회의 반공주의가 만들어낸 독특한 이분법은 북향민들을 더욱 서발턴화에 밀어놓고 있다. 한국 사회의 축적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북향민의 모든 경험은 '열등하고 야만적인 북한' 대 '우월하고 발전된 남한'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해석되고 타자화 된다. 스피박은 ‘서발턴은 정체성이 아니라 위치’라고 말했지만, 나는 한국 사회의 심리적 기저에 배태된 반공주의가 북향민들을 '정체성 검증'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북향민들의 빈곤한 자산(경제자본, 인적자본, 교육자본, 문화자본 등)이 만들어낸 위치뿐만 아니라 ‘북한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이들의 위치를 규정하고 잠재력을 저평가 하고 활동반경을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향민들이 남한 사회에 느끼는 비판이나 북한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그리움, 연민, 증오 등)은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덜 적응했거나', '사상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인식론적 폭력 속에서 북향민들의 주체적인 발화는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수할 때야 가능해진다. 북향민들에게서 보수적인 목소리만 유독 많이 보이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뿐이 아니다. 북한에서 사용하던 언어와 생활양식은 '교양 없는 것', '촌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 이들은 표준어인 서울말과 남한스러운 삶의 방식을 습득해야만 하는 비대칭적 관계에 놓인다. 이는 단순히 문화의 차이가 아니라, 한쪽의 언어와 문화가 다른 쪽을 '교정'하고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권력 작용이며, 이는 스피박이 지적한 식민주의적 인식론과 맞닿아 있다. 한국 사회에 배태된 신자유주의적 오리엔탈리즘(Neoliberal Orientalism)이 북향민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사회의 발전 정도가 한국 사회에 비하면 40년 정도 뒤떨어졌음을 감안하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북향민의 주체성 확보에 대하여
그래서 뭐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나의 주장은 이렇다. 나는 북향민들에 대한 연구를 비판하고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북향민 집단을 위한 연구는 필요하며 누군가는 해야 한다. 북향민 당사자들이 주체적 발화로 연구되고 대변된다면 더 바람직하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북향민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북향민들의 주체적 발화가 가능하고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우며 비난이나 공격의 대상이 더 이상 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북향민들의 주체성 발현은 북향민 스스로에게, 소속집단에게 필수다. 더 나아가 사회통합과 통일을 지향할 때 더욱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다.
또한 북향민 집단 내부의 이질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향민’이라는 단일한 범주는 출신성분, 탈북동기, 탈북시점, 정착과정, 성별과 세대 등에 따라 매우 이질적인 개인들의 집합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양출신의 엘리트 북향민과, 아오지 꽃제비 출신 북향민의 경험은 매우 다르다. 북한에서 이 둘은 각각 지배집단과 서발턴이었고, 이는 그대로 남한에 와서 조차 남한 사회의 엘리트 출신 북향민들에 대한 선택적 활용으로 발화 수단 확보의 불균형을 가져올 때가 있다.
나의 주된 관심은 북향민들이 서발턴적 위치에 있든 아니든, 이들의 주체적 발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대상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 발화자가 되어 자신의 서사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피해자(victim)로, 증언자(testimony)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 주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사회통합을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독재정권의 피해자로 끊임없이 피해 서사만 나열한다면, 인권탄압의 증언자로 고통의 기억만 나열하며 고통의 문화산업에 협조하는 존재로만 머물게 된다면 우리는 통일과 미래의 새로운 주체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북향민들은 두 체제를 살았고 살고 있다. 이 경험은 불필요한 짐이 아니라 경험적 자산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과거(삶, 역사, 서사)가 숨겨야만 하는 부끄러운 기억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자산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되도록 도와야만 한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북향민들의 지난 삶을 경험적 자산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속성으로 학습된 한국인'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시 해방을 위하여
해방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북향민의 주체성 확보까지 다소 연결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넓은 스펙트럼을 오가며 굳이 글을 쓴 이유가 있다. 8.15해방과는 다소 연결이 안 되지만 나는 결국 분단을 해체하는 것이 진짜 해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8.15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한반도에게 미완의 해방이다. 나아가 이 미완의 과제인 분단이 만들어낸 조난자들이 바로 북향민들이고, 해방의 공간으로 찾아온 북향민들의 한국에서 새 삶이 다시 해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탈북’이라는 정체성이 장점으로 전환되는 그날에 이들이 진짜 해방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될 것이고, 통일이 되는 날에 이들의 여정이 진짜 해방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우리를 해방하지 못한 것이 많다. 우리는 여전히 해방을 위해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