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고농도 니코틴·유사니코틴, 공중보건 ‘빈틈’ 노린다 .. 화관법·화평법·담배사업법 개정의 그림자

2025-09-09     김예원 기자

대한민국의 화학물질·담배 규제 체계가 동시다발적 개정 국면을 맞으면서 공중보건 안전망에 구조적 공백이 발생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월 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은 액상형 전자담배 소매인들의 구호로 가득 찼다. 한국베이프소매인연합(한소연)은 “졸속 입법 중단”, “불법 액상담배 근절”, “성분검사 제도화”를 요구하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이번 집회는 단순한 업계 이해를 넘어 국민 건강과 청소년 보호를 위한 절박한 호소로 해석된다. 사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는 한소연 모습 ⓒ뉴스프리존

고농도 니코틴과 ‘유사니코틴(메틸니코틴 등)’을 중심으로 한 신종 흡입류 제품이 제도적 사각지대를 파고들며 자살·타살 등 범죄 악용 가능성과 청소년 노출 확대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관련 보고서는 “누더기식 규제 완화가 실효성을 상실한 채 공중보건 리스크를 방치하고 있다”며 선제적 유해성 심사와 안전관리체계의 전면 재정비를 촉구했다.

▲ 규제 완화가 부른 ‘사전심사 공백’… 흡입류 확산 가속 우려

올해 1월 1일 시행된 화평법 개정으로 신규화학물질의 등록·유해성 심사 기준이 완화됐다.

연간 100kg 이상에서 1톤 이상으로 문턱이 높아지면서, 니코틴 유도체(6-메틸니코틴, ‘타격제’, 에토미데이트 등)가 사전 유해성 검증을 면제받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미 시행되는 화관법 개정 역시 영업허가 면제, 소비자 특례, 시설검사 면제(신설) 등이 포함돼 고농도 니코틴의 유통 장벽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보고서는 “니코틴 원액 등 고농도 제품이 택배·대중교통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 인체 흡입용 전자담배로 무제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도 거세다. 보고서는 환경부 등록·심사가 이뤄지지 않은 유해성 미검증 성분을 포함한 제품이 ‘담배’로 제도권에 편입될 경우, 검증 없는 합법화를 통해 국민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 우려까지 언급되며, 사전평가 없이 세수 확보 논리에만 기댈 경우 피해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무니코틴’의 기만과 메틸니코틴의 고위험성

시장에서는 ‘니코틴 없음’으로 광고된 제품에서 메틸니코틴이 검출되는 ‘라벨 기만’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보고서는 학술 자료를 인용해를 인용해 “메틸니코틴은 니코틴 대비 5~15배 강한 중독성과 위해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메틸기 결합을 통해 기존 물질의 중독성이 비약적으로 증폭되는 사례(암페타민→메스암페타민, 모르핀→헤로인, 펜타닐 메틸화 변종 등)와의 유비가 제시되며, 유사니코틴의 선제적 차단 필요성이 강조된다.

한편 국과수 분석에 따르면 ‘합성니코틴’으로 표시된 52개 제품 중 50개가 실제로는 연초 니코틴으로 확인됐다는 보도도 있었다(2024.10.2. SBS). 보고서는 “줄기·뿌리 니코틴 허위신고 등 과거 불법 구조가 반복되고 있으나, 장기 수사(4년 이상)에도 과세·형사처벌 사례가 전무하다”며 단속·기소·압수의 강력 집행을 주문했다.

▲ 수치로 본 위험 신호, 532톤과 ‘청소년 DIY 흡입’

보고서는 2024년 한 해 환경부 유해성 미검증 합성니코틴 반입량이 532톤에 달했다고 지적한다. “몰수·차단이 이행되지 않으면 세수 확보는커녕 불법행위만 장기화될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자판기에서 ‘무니코틴’ 구매 후 고농도 니코틴을 택배로 구입해 혼합·흡입하는 청소년 DIY 제조” 문제가 현실화됐다고 경고한다.

메틸기 결합에 따른 중독성·위해성 증가 사례

유통·표시 관리와 연령 확인 장치가 동시에 뚫릴 경우, 청소년 흡연율 상승과 불법 남용이 구조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강화된 사전심사와 단속이 소상공인과 합법 영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전가돼 ‘음성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보완장치를 제안한다. 첫째, 전환기간 동안의 컨설팅·시험분석 비용 지원 등 규제 준수 비용을 사회가 일부 분담할 것. 둘째, 합법 제품의 유통·판매 경로를 명확히 열어 소비자가 안전한 선택지를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화이트리스트’ 체계를 운용할 것. 셋째, 위해성 검증과 세수 확보를 연결하지 말고, 세정은 사후·투명하게 처리하되 안전성은 사전·엄격하게 확보할 것.

▲ “세수보다 생명, 사후보다 사전”

고농도 니코틴과 유사니코틴은 빠르게 변종화하고, 라벨과 유통망은 그보다 빠르게 진화한다.

규제 완화의 편의와 세수 논리가 공중보건 안전망을 앞설 경우, 피해는 취약계층과 청소년에게 집중된다. 보고서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세수보다 생명, 사후보다 사전.” 사전 유해성 심사로의 회귀, 유통·표시 집행력의 실질 강화, 청소년 보호장치의 촘촘한 복원만이 제2의 참사를 막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신속한 입법·행정 조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