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종 칼럼] 한국은 왜 외환보유고를 확대해야 하는가
대한민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의 규모를 자랑하며, 제조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해 왔다. 그러나 대외의존도가 높은 만큼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환보유고의 적정 수준은 국가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하며,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위기 극복 능력을 좌우한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4100억 달러에 불과한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이다. 대만이 GDP의 75%에 해당하는 규모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하면 현저히 낮다. 따라서 한국은 반드시 외환보유고를 대폭 확충해야 하며, 미국·일본 등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외환보유고 4100억 달러... GDP 23%로 대만에 비해 크게 낮아
현재 외환보유액 4100억 달러 가운데 실제 현금성 자산은 2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유가증권, 대출채권, SDR(특별인출권) 등 유동성이 제한된 자산이어서 급박한 외환 위기 상황에서 즉각 활용하기 어렵다. 더욱이 미국은 최근 한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직접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이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다면 한국의 외환여력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 보유고 수준으로는 국가 신용도와 환율 방어력에 큰 부담이 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신흥국의 경우 GDP의 60~70% 수준의 외환보유가 바람직하다고 권고한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은 최소 9200억 달러 수준까지 외환을 확충해야 한다. 현재의 2배 이상 규모가 돼야만 금융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르헨티나 등 외환부족으로 국가부도 위기 맞아
일본의 외환보유고는 1조2000억 달러로, 한국의 3배에 달한다. 대만도 GDP의 75%에 해당하는 막대한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준비 덕분에 두 나라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환율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외부 충격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이미 외환 부족으로 극심한 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최근에도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10여 개국이 외환 부족으로 국가부도를 맞이하고 있다. 이들 사례는 외환보유고 부족이 국가경제를 얼마나 쉽게 붕괴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통화스와프의 필요성... 미국, 일본과 다시 추진해야
외환보유고 확충과 함께 한국은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과거 한국은 미국과 6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일본과 700억 달러 규모의 한일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모두 종료되었고, 일부 소규모 협정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국제 금융시장은 냉혹하다. 위기가 발생하면 어느 나라도 한국을 선뜻 돕지 않는다. 따라서 사전에 협력 체계를 구축해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미국과는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대로 35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할 경우, 그만큼의 자금이 한국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이를 상쇄하려면 최소한 동일 규모의 달러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역시 과거 수준인 70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 대응과 국가 전략... 한국경제에 잠재적 위험 요소 많아
금융위기는 국가 경제에 치명적이다. 혈액이 돌지 않으면 인체가 생존할 수 없듯, 외환이 부족하면 국가 경제는 마비된다.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의 결제 비중은 0.1%에 불과하며, 세계 35위권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통화로서 신뢰가 약한 만큼 한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외환을 비축하고,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25%) 정책, 미국의 공장 이전 요구, 대미 직접투자 확대 압력은 한국 경제에 잠재적 위험 요소이다. 이러한 외부 충격은 언제든지 환율 급등, 외국인 자본 유출,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평상시부터 위기 대응력을 높이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
첫째, 외환보유고를 단계적으로 9200억 달러까지 확충해야 한다. 외환은 단순한 비축이 아니라 국가의 신용과 직결된 자산이다. 외환보유고가 충분할 때 외국인 투자자와 국제 금융시장은 한국 경제를 신뢰할 수 있다.
둘째, 한미 및 한일 통화스와프를 복원하고 확대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는 무제한 스와프 협정을 통해 안정적인 달러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단기적 환율 변동을 막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금융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셋째, 외환 운용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단순히 보유 규모를 늘리는 것을 넘어,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확대하고 긴급 상황에 즉시 활용 가능한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국제 금융시장에서 원화의 위상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화 국제화를 통해 결제 통화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면,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맺음말
국제 금융시장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경기 둔화 등 다양한 변수들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환보유고 확대와 통화스와프 체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충분한 외환을 확보한 국가는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준비가 부족한 국가는 단 한 번의 충격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
대한민국은 과거 외환위기의 쓰라린 경험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외환을 비축하고, 국제 금융 협력을 강화하며, 위기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외환보유고 확대와 통화스와프는 국가의 생존 전략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