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만 언론에 등장한 추억의 왼손잡이 강타자 김성남

2025-09-19     조영섭 복싱 전문기자
(주)화성 조영환 팀장.

지난 16일 오전 10시 취재를 위해 길을 나섰다. ㈜화성 용역회사 팀장으로 근무하는 전 KBC J.플라이급 3위에 올랐던 조영환 선배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용인즉 조영환 팀장이 현역 시절 동철체육관과 신흥체육관에서 동문 수학한 동양 J.플라이급 챔피언과 WBA 동급 1위를 기록한 절친 김성남과 영등포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때문이었다.

1957년 김천태생의 조영환은 1979년 6월 프로에 데뷔해 최중근·조자호·황인완·마수년 등 국내 강자들과 일합을 겨루면서 기량을 검증받은 복서다.

이 분은 1981년 1월 은퇴 뒤 사회에 진출한 프로 복서로는 드물게 국가자격증 5개를 취득했다. 68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해, 복서 출신으로 귀감(龜鑑)이 되는 인물이다.

김성남 챔프(왼쪽)와 조영환 팀장.

현장에서 조영환 팀장의 소개로 김성남 챔프와 첫 인사를 나눈 필자는 잠시 뒤 인근 카페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성남 챔프는 83년 10월 복싱계를 떠난 뒤 40년이란 세월 동안 복싱계와 인연을 끊고 지낸 까닭에 그의 근황을 아는 복싱인들이 없었다.

이에 김성남과 간담상조(肝膽相照)하는 절친 조영환이 그의 근황을 알아내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지속적으로 근황을 수소문(搜所聞) 한 결과, 드디어 2년 전 어느날 WBA 플라이급 김태식 챔프 지인이 김성남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결국 2023년 어느날 조영환은 절친 김성남과 헤어진 지 40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다.

김성남은 복싱을 완전히 잊고 지냈던 영향 때문인지 필자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싸운 상대 선수 이름과 경기 내용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참 뒤에야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1977년 광주 신인대회와 전국 신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우선 필자가 아마추어 경기에서 기억나는 경기를 묻자 역시 한참을 생각한 후에 광주 신인대회에서 3형제 복서 중 막내인 김광섭을 이겼다고 말했다.

타이틀 전초전에서 와다나베를 KO시키는 김성남(가운데).

김성남에 패한 김광섭은 1982년 제2회 세계선수권대회(유고)에 국가대표 출전한 복서로, 현역 시절 김지원·오인석·마수년·장흥민·박대천등 역대급(歷代級) 국가대표를 차례로 꺾은 복서다. 가까이서 지켜본 김성남은 내성적인 성품에 차분하면서 진중한 성격이었다.

1978년 6월 프로에 들어와서 29전을 싸우면서 가장 인상적인 경기를 묻자, 그는 오랜 기억을 더듬으며 1980년 10월 아마추어 국가대표 김치복을 꺾은 경기가 가장 인상에 남는 경기라 회고했다.

사실 김성남 이름이 국내 팬들에게 제대로 각인된 경기는 한국 원정 경기에서 3승을 거두며 한국 복서 킬러로 알려진 필리핀의 시오니 카르포와 벌인 동양 타이틀전이었다.

그는 1981년 11월 벌어진 동양 타이틀이 걸린 이대결에서 묵직한 강타를 챔피언 카르포 안면에 작렬시키며 5회 KO승을 거두고, 새로운 동양 J. 플라이급 정상에 올랐다. 한국에 6차례 원정온 카르포가 KO패 당한 경기는 이 때가 처음이었다.

스포츠 잡지 표지모델로 등장한 김성남.

그러나 김성남은 경기 중반 카르포가 왼쪽 눈을 샤밍(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반칙행위)하는 행동으로 심한 부상을 입어 지금도 한쪽 눈은 시야가 밝지 못하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날 경기를 더듬으며 동양 챔피언이 되기 전인 1981년 1월 황인환(와룡)과 벌인 KBC 한국 J.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6회 KO승한 기억도 새롭게 떠오른다고 말했다.

1962년 남원태생의 황인완(와룡)은 1979년 MBC 전국 신인왕전에 출전해 4강에서 세계 랭커 (故)최문진을 판정으로 잡았다. 결승전에서는 훗날 WBA J.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 일본의 도카시키(일본)를 판정으로 꺾은 박종철에게 근소한 차로 판정패했다.

동양 챔피언 등극과 동시에 세계랭킹에 진입한 김성남은 3차례 국제전을 치러 3연승(2KO)을 기록하며 어느덧 WBA J.플라이급 1위에 진입한다. 그리고 곧바로 지명도전자 자격으로 세계 타이틀전을 펼친다.

챔피언은 1982년 1월 한국의 김환진을 꺾고 WBA J.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 일본의 도카시키였다. 도카시키는 2차방어전에서 같은 나라의 도전자 이나미를 8회에 KO시키고, 3차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 자격으로 출전한 김성남과 대결하게 된다.

1960년생 챔피언 도카시키는 18전 16승(3KO) 1무1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1957년생 도전자 김성남은 23전 20승(12KO) 3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 언론은 도카시키가 신인 시절 자국(自國)에서 벌인 한일 신인왕 교류전에서 한국의 박종철에 완패한 이력을 예로 들면서 김성남 정도의 레벨이면 펀치력이 약한 챔피언 도카시키와 대결에서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내다봤다.

도카시키(왼쪽)에 일격을 당하는 김성남.

김성남은 세계타이틀 전초전으로 일본의 와다나베를 상대로 워밍업 하듯 3회 KO승을 거두고, 1982년 10월 도쿄 고라꾸엔에서 펼쳐지는 타이틀전 도전을 위해 현지로 날아갔다.

당시 대결은 도전자 김성남의 강력한 펀치력이 챔피언 도카시키의 빠른발을 어떻게 잡느냐가 승부의 관건(關鍵)이었다.

한국은 지난 1980년 1월 동경에서 챔피언 김성준이 WBC J.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일본의 도전자 나까지마에 타이틀을 넘겨준 뒤 일본에서 열린 타이틀전에서 6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대결의 결론부터 말하면, 김성남은 한국복싱을 어둡고 긴 터널에서 끌어내지 못하고 판정패했다. 김성남은 경기 중반 묵직한 한방을 때리면서 비교적 선전했지만, 챔피언 도카시키의 빠른 발을 잡지 못해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모두 미국인으로 구성된 3명의 심판진은 모두 도카시키가 김성남에 4점에서 6점 차이 우세를 보인 것으로 판정했다. 경기를 마치고 귀국한 김성남은 사실상 복싱을 내려놓는다.

이후 5차례 경기를 치룬 김성남은 5전 1승 3KO패 1무를 기록하고 1983년 10월 소리 없이 링을 떠난다.

그때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은퇴 뒤 김성남은 복싱인들과 접촉을 끊고 사업에 매진한다. 그리고 그렇게 베일에 가려진 채로 언론과도 접촉을 끊고 묵묵히 생업에 충실했다.

그렇게 살아온 친구 김성남을 조영환 팀장이 끈질기게 추적(追跡)해, 결국 40년 만인 2023년 극적으로 만났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필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김성남은 은퇴한지 42년만에 드디어 언론에 근황과 모습이 최초로 포착(捕捉)됐다.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이날 귀한 자리를 제공한 조영환 팀장과, 오랜 복싱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왼손잡이 강타자 김성남 챔프의 변함없는 우정이 지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