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 칼럼] 美 투자 3500억 달러 난제 풀기

2025-10-02     이홍 광운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한·미 관세 협상이 시간을 끌고 있다. EU와 일본은 미국과 협상을 끝내고 15% 기본관세를 부과받았다. 이에 반해 한국은 25% 관세를 맞고 있다. 한국만 낙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너무 불안해하지 말자. EU-미국 협상 때도 꽤 긴 시간 줄다리기가 있었다. 험악한 말도 오갔고 협상이 깨질 것 같은 분위기도 돌았다. 미·일 협상은 이보다 빨랐지만, 5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대한 합의문 서명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투자에 대한 상세 문서화를 일본이 거절해서다. 그러자, 미 언론이 미국이 일본에 밀리고 있다는 비난을 쏟아냈고 트럼프가 강경책을 구사하며 합의문 서명이 이루어졌다. 중국과의 협상은 더 난항을 겪고 있다. 최초 90일간의 유예를 받고 두 번째 유예 기간 중이다. 지금도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요약하면, 관세 협상이란 본디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미 관세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한국이 투자할 3500억 달러를 어디에 쓰고 이익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때문이 아니다. 이 돈의 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원초적 문제부터 꼬였기 때문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시점에 이 큰돈을 현금으로 무조건 납부해야 한다면 큰 문제다. 이 시점부터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2000원을 넘어서며 제2의 IMF 시대를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첫째, 미 언론이 일본과의 협상 때와는 달리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조지아주에서의 한국인 기술자 구금사건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에 우호적인 폭스뉴스(Fox News) 정도만 한국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고 있지, CNN,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즈(NYT)와 같은 주력 언론들은 미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며 조지아주가 대규모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한국이 미국을 돕는 나라라는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이 연장선에서 3500억 달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보적 태도에 대해서도 주력 언론들은 일본 때와 달리 일방적으로 한국을 매도하고 있지 않다. 미국 내, 한국의 우군이 있다는 말이다.

둘째, 트럼프 정부도 한국을 파멸적 협상으로 몰아붙여 얻을 게 많지 않다. 조지아주 사태는 트럼프 정부와 미국인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일본은 자신의 이득에 집착하는 나라고, 한국은 미국을 돕는 나라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조지아주 사태가 터지자 트럼프는 한국근로자의 불법 취업이 문제라며 한국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며칠 안 가 이들이 공장건설에 필수인력이라며 현장복귀를 요청했다. 트럼프 스스로 한국의 미국에서의 역할을 자인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미국을 많이 돕고 있다. 취약한 미 해군의 함정전력을 강화하는 일부터, 낙후된 미국의 전력 인프라(원자력 건설과 전력망)를 재건하고, 미 전기자동차를 부흥시킬 최고급 이차전지 기술을 전수하며, 미국의 첨단 경쟁력 유지에 필수인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등 미국을 엄청나게 돕고 있다. 이런 사실이 조지아주 사태를 통해 전 미국인들에게 알려졌다. 그런 나라에 무조건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내라고 우격다짐하다 파국에 이르면 트럼프도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에 시달려야 한다.     

셋째, 원-달러 스와프(swap)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일단 한국이 요청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거절했다. 이를 수락 시 다른 나라에도 같은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염려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은 EU, 영국, 일본, 캐나다, 스위스 등 준 발권국 5개국과만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에 먼저 나서 200억 달러 통화 스와프를 제안했다. 남미에서 미국의 우군을 자처하고 있는 현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트럼프는 한국에게 미국에 더 밀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점을 관세 협상에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미국 편에서 미국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국가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이 설득이 받아들여지면 부분적일지언정 통화 스와프는 가능하다.  

넷째,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가 완전히 불가능한 경우, 캐나다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캐나다는 미국과 무제한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재미있게도 한국-캐나다도 무제한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따라서, 캐나다가 미국으로부터 달러를 제공받고 이를 한국에 대여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한국이 캐나다로부터 미국 투자에 필요한 만큼의 캐나다 달러를 공급받고 이를 미 달러로 환전하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과 캐나다는 관계가 좋다. 올 8월 캐나다 정부는 60조원 상당의 잠수함 건조사업 최종 후보로 한국의 한화오션-HD현대 컨소시엄과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TKMS)을 선정했다. 노후화된 캐나다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신형으로 교체하기 위함이다. 아직 독일과 경쟁해야 하지만, 캐나다와 한국이 우호적임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물론, 캐나다가 껄끄러운 관계에 놓인 미국에게 한국을 위한 통화 스와프 말을 꺼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 캐나다와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는가에 달려 있다. 미국은 3500억 달러를 투자하라는 것이지 이 돈을 한국이 번 돈으로 하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 인해 미국-캐나다 관계가 호전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리해보자. 한국은 미국과 국가 운명을 건 협상을 하고 있다. 미국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하지만, 조지아주 사태로 미 여론과 국민들의 생각은 한국에 불리하지 않다. 한국이 협상에서 치명상을 입는다면 많은 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지연되거나 철회될 수 있다. 이 중에는 조지아주 같은 경합주가 여럿 있다. 선거 때마다 지지하는 당을 바꾸는 곳으로 조지아주에서처럼 주민동요가 일어날 수 있다. 정치인 트럼프에게 매우 불리하다.

한국이 협상 지렛대를 하나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미국을 진심으로 돕고 있으며 미국 편에서 설 것임을 확신시켜야 한다. 마지막은 캐나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다. 험난하지만 한국이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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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홍은 KAIST를 졸업하고 광운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경영대학장과 경영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인사조직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지식경영학회 및 한국중견기업학회 회장을 지냈고, 삼성그룹, 포스코, 한국전력, CJ그룹 등에서 자문교수로 활동했다. 정부혁신관리위원장, 사업재편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현재는 한국이해관계자학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비즈니스의 맥', '세종에게 창조습관을 묻다', '국가경쟁력, 중견기업에서 답을 찾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