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 칼럼]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왜 실패하는가
"최근 부동산 시장은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국민 주거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수요와 공급 양 측면을 균형 있게 고려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원칙 하에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지난 15일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그 골자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토지거래허가구역과 규제지역을 확대 지정하여 가수요를 차단한다. 둘째, 부동산 대출규제를 보완한다. 셋째, 부동산세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한다. 넷째, 이상 거래 불법 행위에 엄정 대응한다.
그런데 잠깐, 뭔가 이상하다. 분명 "수요와 공급 양 측면을 균형 있게 고려한다"고 했는데, 네 가지 발표 사항 모두가 수요 억제 정책이다. 대체 어디에 공급 정책이 있는가? 이런 의문이 들기 직전 구 부총리는 "9·7 공급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수요 억제 정책은 새롭게 네 가지나 추가됐는데 공급 활성화 정책은 기존의 것 그대로라면, 이번 10·15 부동산정책 역시 본질적으로는 수요 억제 정책일 뿐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놓고 본다면 10·15 부동산대책의 향방 역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 집값은 잠시 안정화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또 치솟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역대 민주당 정권과 마찬가지로, 경제학 원론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집은 주거를 위한 공간이다. 동시에 집은 대부분의 사람이 구입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상품이다. 그러므로 집을 살 때는, 어지간한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100% 현금으로 구입할 수 없다. 은행 대출이 사실상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재명 정부와 기존 민주당 정권은 언제나 그 점만을 주목해 왔다. 주택시장이 과열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곳을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여 대출을 틀어막으면 사람들이 그 지역의 집을 사기 어려워지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값이 떨어질 것으로 보았다. 기존 6·27 대출 규제가 강남 3구와 용산구를 대상으로 6억원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막아버리는 초강수를 두었던 것은 그런 셈법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지금은 그로부터 고작 4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시 25개구 자치구 전체를 대상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경기도는 광명, 과천, 분당 등 12개 지역을 추가로 지정한다. 정책은 발표일 다음날인 16일부터 효력이 발생된다.
이번 10·15 규제는 지난번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광범위하다. 주택담보대출 최대 한도를 현행 6억원에서 집값에 따라 2억원부터 6억원까지 차등 적용하겠다고 발표했으니 말이다. 이런 식이면 서울 요지의 고가 아파트 뿐 아니라 서울 및 광명, 과천, 분당 등 규제 지역에서는 사실상 주택 거래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과연 이런다고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질문을 바꿔보자. 이미 한번 실패한 방향의 정책을 강도만 높여서 반복한다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이 했다고 알려진 그 흔한 명언에 진실이 담겨 있다.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심지어 정책을 발표하는 당사자들조차 이런 식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 대출을 틀어막아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을까?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인간에게는 누구나 집이 필요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우리는 점점 더 좋은 집을 필요로 한다. 옛날에는 단칸방에 네 식구 혹은 그 이상이 모여 사는 일이 드물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렇게 좁은 곳에서 복닥거리며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주택 수요가 고급화되고 있으므로, 그 수요에 부합하려면 1인당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더 좋은 주택이 꾸준히 공급돼야 한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셋째, 집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상품이기에, 우리는 집값이 올라가는 집을 사고 싶어한다. 대출까지 받아서 집을 샀는데 가격이 그대로거나 심지어 떨어진다면 그로 인한 손실은 막대하다. 다른 사람의 집값이 올라가기까지 한다면 상대적 박탈감까지 더해져 더욱 견디기 어렵다.
그러니 결국 해법은 단순하다. 첫째와 둘째 요건만 놓고 보더라도, 양질의 주택이 꾸준히 추가 공급돼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땅은 한계가 있으므로, 낡고 오래된 주택은 꾸준히 철거 또는 재건축, 최소한 리모델링 돼야 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택의 입지가 제한되어 있으며, 바로 그런 지역의 주택 가격이 다른 곳보다 많이 오른다는 데 있다. 요컨대 투자 대상으로서의 주택은 주거 대상으로서의 주택보다 더욱 희소성이 높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입지'는 개념 정의상 모두가, 다수가 누릴 수 없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어떤 곳의 집값은 다른 곳보다 잘 오르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그게 과연 '문제'인가? 만약 주거와 생활의 질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오직 향후 기대되는 투자 소득의 차이 때문에 강남 부동산이 그 외 지역의 부동산보다 더 비싸다면, 그러한 방식의 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국가가 막아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단지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주식을 사거나, A라는 회사의 주식보다 더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B라는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투자 행위이지 국가가 나서서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주택이 지니는 세 번째 측면, 투자 상품으로서의 측면에 아예 관심을 끄는 것이다. 대신 주택이 지니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측면에 대한 기대만큼은 확실히 채워줘야 한다. 국민에게 '언제나 양질의 주택이 넉넉하게 공급되고 있다'는 신뢰를 갖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주택을 투자 상품으로 보는 시각이 옳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게끔 해야,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정 반대로 향하고 있다. 이 정도면 '풀 악셀'도 아니라 '급발진' 수준이다. 천정부지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게 하여 청년들을 좌절에 빠뜨린 문재인,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의 민주당이 5년만에 정권을 내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동산 문제였다. 민주당은 배운 게 없거나 학습을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의 국회의원, 정부와 청와대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사놓았거나 살고 있는 부동산의 위치를 지도에서 살펴보다보면 왠지 이해가 되는 듯도 싶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다. 두 번까지도 실수라고 봐줄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 번이나 되풀이된다면 이것은 우연도 실수도 아니다. 완전한 고의는 아니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지 않을까, 국민들로서는 이런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노정태는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이다.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일보, 서울신문, 신동아에 칼럼을 기고한다. '프리랜서', '불량 정치' 등을 썼으며, '아웃라이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칩 워' 등의 번역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