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의 AI와 함께 살기] 무한정보, 왜 ‘구독 경제’가 뜨는걸까
IT저널리스트
정보사회에서 ‘더 적절한 정보’를 갖추는 방법으로 앞선 칼럼에서 ‘언러닝(비움학습)’을 다뤘는데,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 있다. ‘구독’ 서비스다. 디지털 세상에서의 구독 서비스는 신문, 우유 등 이용자가 지정한 상품을 정기적으로 배달받는 과거의 형태와 다른 점이 많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소유 가치가 사용 가치로 대체되고 있다. 스트리밍과 구독이라는 새로운 콘텐츠 이용 방법이 등장해 구매와 임대 관행을 대체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구독 경제’ 모델의 대표격이다. “4달러에 빌린 DVD에 대해 연체료로 40달러를 내게 된 상황을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공개한 창업 배경이다.
디지털 경제에서 구독 모델은 소프트웨어 사업모델에서 비롯했다. 업무용 소프트웨어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세일즈포스의 혁신과 성공은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 Software-as-a-service)’ 전략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이전까지 소프트웨어는 패키지로 판매되어 고객 서버에 설치하고 이후 유지·보수 비용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게 기본적인 사업방식이었다. 2004년 세일즈포스는 패키지 소프트웨어 판매를 중단하고 고객이 클라우드에 접속해 각 기업이 필요한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를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 방식으로 바꾸면서 고객들은 번거로운 설치와 유지·보수, 내부교육 없이 클라우드에 접속하면 언제나 최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소프트웨어 사업모델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늘날 개인 고객도 대부분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구매하는 대신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독’하는 추세다.
‘구독’, 소프트웨어에서 가전 등 내구재로 확산
이용자가 직접 구매하거나 소유하지 않고 필요할 때 수시로 이용하는 이러한 구독 모델은 소프트웨어·음악·영화·책과 같은 콘텐츠 영역을 넘어 내구재와 하드웨어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행사 물품, 레저 장비, 계절스포츠 용품, 공구, 차량 등을 소유하지 않고 사용하는 ‘공유 경제’ 모델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구독·공유 경제 플랫폼의 확산은 지난날 구매·소유 모델에 없던 장점들 덕분이다. 구매·임대 절차없이 적은 초기 비용으로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고, 유지·관리할 필요 없이 항상 최신 서비스를 이용한다. 보유한 물품을 보관할 공간도 필요없다. 구독 모델은 소비사회가 고도화하면서 선택할 제품과 서비스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장점이 두드러진다. 즉 상품과 서비스가 많아지고 기술 발달로 신제품 경쟁이 치열해지게 되면 값비싼 첨단 제품도 금세 구식이 된다. 기술 발달과 경쟁 격화로 인해 제품 수명 주기가 점점 단축되는 시장 환경에서 구독 모델은 소비자들이 다양한 제품의 최신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의 서비스 플랫폼이다.
구독 방식은 MS365·한컴오피스·넷플릭스·유튜브·스포티파이 등처럼 네트워크를 통해 서비스되고 업데이트되는 무형의 소프트웨어·콘텐츠 서비스에서 대세가 됐다. 갈수록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한때 가전제품 등 내구재는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광고하던 소유 모델이 절대적이었지만, 구독 모델은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가리지 않고 점점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수많은 신상품이 등장하고 각 제품의 수명이 단축되는 시장에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은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언제나 최신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가 되고 있는 까닭이다.
구매기준, 소유 가치에서 사용 가치로 이동중
콘텐츠와 내구재에서 최고의 제품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구매 대신 구독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은 지식과 정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더 많은 정보, 더 최신 정보를 추구하는 대신 지금 상황에서 더 적절한 정보의 중요성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더 많은 정보’가 배움의 목표이던 지난날 정보의 속성과 ‘더 적절한 정보’가 목표가 된 오늘날 정보의 속성은 확연하게 구별된다.
첫째, 지식은 액체처럼 유동성을 갖게 됐다. 지난날 지식정보는 고체처럼 형태가 정해져 있거나 잘 변화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지식은 액체처럼 고정된 모양이 없고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게 다른 점이다. 고체와 액체를 다루고 이용하는 법은 다르다. 형태가 유지되는 고체는 잘 보이게 전시하거나 가방에 넣고 이동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파악하거나 비교하기 쉽다. 반면, 액체는 고정된 형태가 없어 그것이 담기는 틀과 그릇의 모양을 따른다. 또한 액체는 움켜쥐는 방식으로는 소유할 수 없는, 강물같은 계속된 흐름이다. 강물같이 쉼없이 흐르는 액체를 이용하는 법은 댐을 쌓아 가두는 게 최선의 방법이 되지 못한다. 생활용수나 관개용수로 활용하고, 배를 타거나 서핑을 하는 것처럼 물의 흐름과 파도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 정보사회에서 지식은 잠정적이 됐다. 모든 게 쉼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지식은 그 순간의 가치와 쓸모를 지닐 따름이다. 새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찍으려면 렌즈는 동적 트레킹을 통해 능동적 초점 이동을 해야 한다. 지식도 불변의 가치와 쓸모를 지니는 게 아니라 잠정적 지식으로 변모했다. 완벽한 지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적절한 지식’이 있을 따름이다. 최신 카메라 렌즈가 움직이는 피사체를 추적하는 기능을 갖췄듯,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지식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무한정보, 지속갱신 환경에서 선택과 결정 대신 ‘맞춤추천’
‘소유 가치’ 대신 ‘사용 가치’가 주목받으면서 구독·공유 모델이 확산하는 경제 현상은 큐레이션과 추천 서비스의 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유튜브·스포티파이·멜론 등 영상과 음악 서비스 구독플랫폼의 핵심 장점은 방대한 콘텐츠와 이용 편의성이라기보다 이용자별 맞춤 추천과 큐레이션 기술이다. 이용자가 직접 서비스에 접근해 선택할 수 있지만, 데이터베이스가 너무 방대해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와 구독 모델 등 콘텐츠 기반 서비스에서 개인별 맞춤화 추천 알고리즘은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다.
이용기록,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동원한 추천 서비스는 이용자들이 방대한 콘텐츠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 없이 최신 상태로 원하는 서비스를 감상할 수 있도록 알아서 제공한다. 최신 개봉작과 공개 음원을 반영해 항상 신선한 상태로 업데이트해 맞춤형으로 추천해준다. 추천 알고리즘 덕분에 구독 모델에서 이용자들이 직접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은 많지 않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항상 나에게 맞춤화된 최신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게 구독 모델의 장점이다.
구독 모델이 부상하는 현실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려면, 멋지고 오래가는 자산을 장만하는 것보다 지금 가장 적절하고 중요한 것으로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려준다. 그래서 구독은 앞서 살펴본 언러닝(비움학습)과 짝을 이루는, 새로운 배움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