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 칼럼] 한국경제에 대한 잘못된 공포심리
잊을 만하면 한국경제에 대한 공포심리가 수면 위로 오른다. 달러 대비 원화환율이 급상승할 때다. 2023년 1월 21일 원화는 달러 당 1230원이었다. 그러다 2024년 12월 28일 1472원으로 치솟더니 2025년 5월 24일에는 1364원으로 내렸다. 좀 잠잠하나 싶더니 2025년 10월 24일 환율이 1438원으로 급히 올랐고 30일 현재 1423원 수준이다. 달러 당 원화환율이 급등하면 한국인은 불안하다. IMF 외환위기가 떠올라서다.
환율문제가 불거지면 동시에 소환되는 것이 있다. 외환보유고다. 지난 5년간 외환보유고는 4000억~4700억 달러를 오르내렸다. 가장 많았을 때가 2021년 10월 4692억 달러다. 가장 낮았던 때는 2025년 4월 4046억 달러다. 이때 난리가 났었다. 외환보유고 마지노선인 4000억 달러가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덮쳤다. 2025년 9월 현재 한국은 4220억 달러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환율이 급등하면 이를 방어하려다 외환보유고가 4000억 달러 밑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늘고 있다.
이런 걱정에 기름을 부은 것이 미국의 한국을 대상으로 한 관세전쟁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내놓으라는 으름장을 놓았다. 다행히, 관세협상은 마무리되었지만, 한때는 대규모 외환보유고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타나면서 IMF 시대가 다시 올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여기에 취약해진 내수경기도 불을 지폈다. 많은 사람들이 현 경기가 IMF 시절 때나 코로나 때보다도 나쁘다고 한다. 청년층이 큰 타격을 입었다. 2025년 10월 10일 통계청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는 2896만 7000명으로 지난해 대비 16만 6000명이 늘었다. 하지만, 청년(15~29세) 취업자는 전년 대비 21만 9000명이 줄었다. 외환위기 시절 1998년 8월(-69만 5000명) 이후 가장 큰 감소다. 이 계층에서의 인구 감소(-19만 1000명)를 참작해도 더 많은 청년 일자리가 사라졌다. 자영업자들의 분위기는 말할 나위 없이 냉랭하다.
이런 모습들이 중첩되며 한국이 IMF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경제에 염려스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IMF를 맞았던 상황과 지금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IMF 시대가 열린 1997년 말 한국은 단기부채 폭등에 시달렸다. ‘기업이 클수록 죽지 않는다(대마불사)’는 논리로 대기업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입을 급격히 늘리면서다. 이를 부추긴 창구가 종합금융사(종금사)였다. 이들은 대기업의 대출 수요를 큰돈 벌 기회로 보고 1년 미만 단기부채를 국제금융사로부터 겁 없이 빌렸다. 그리고 대기업에 고금리 장기 시설자금으로 빌려주었다. 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하나인 한보철강이 1997년 1월 부도를 냈다. 3월에는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등 굵직한 대기업들이 연쇄 부도를 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7월 태국 바트화, 8월 인도네시아 루피화가 폭락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에 빠졌다. 정부는 한국이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 원화 방어에 나섰다. 그러자 약 1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가 순식간에 20억 달러로 줄었다. 이를 눈치챈 글로벌 투기펀드들이 원화를 공격하였다. 정부는 결국 손을 들고 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95억 달러,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70억 달러와 37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1997년의 국내 상황을 보면 대외부채 특히, 대외단기부채가 외환발작의 핵심원인이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대외채무비율’이다. 1년 이내 만기가 돌아오는 대외채무를 외환보유고로 나눈 것이다. 또 다른 지표도 중요하다. ‘대외채권’과 ‘대외채무’ 간 비율이다. 한국(정부, 민간)이 타국에 빌려준 돈이 대외채권이고 타국으로부터 빌린 돈이 대외채무다. 이들 간 비율을 살펴보면 국가의 채무상환 능력을 알 수 있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대외채무비율을 살펴보면 IMF 시대가 터지던 1997년 이전부터 문제가 있었다. 1994년 이 비율이 140.9%에 달하였다. 외환보유액으로 단기채무를 갚을 수 없는 상황이 1997년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는 말이다. 1997년 이 비율은 286.1%로 치솟았다. 외환위기를 맞지 않을 수 없었다. 구제금융 이후 이 수치는 급락해 1998년 67.5%로 내려앉았다. 이후 2000년에는 43.9%, 2022년 41.1%, 2024년 35.3% 수준에 이르렀으며 2025년 2분기 현재 40.7%다. 종합하면, 현재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대외채무비율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이 IMF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외채권과 대외채무 비율은 어떠한가? 1997년 한국의 대외채권은 979억 달러였다. 이에 비해 대외채무는 단기 583억7000만 달러, 장기 1033억4000만 달러 총 1617억1000만 달러였다. 한국이 해외로부터 받을 돈 보다 갚아야 할 돈이 1.65배였다. 지금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2025년 2분기 기준 한국의 대외채권은 1조927억6000만 달러다. 대외부채는 단기 1670억6000만 달러, 장기 5685억2000만 달러로 총 7355억8000만 달러다. 갚아야 할 돈이 받을 돈의 67.31%다. 이 수치들도 한국이 IMF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해준다.
그럼 환율은 왜 안정되지 못하고 있을까? 환율을 움직이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 정도다. 국가 간 금리차, 국가 간 비교환율, 달러 유출입 흐름이다. 우선 미국과 한국의 기준 금리차가 크다. 한국은 2.5%이고 미국은 4.0%다. 이것이 반영돼 달러 대비 환율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경쟁국 간 환율에도 영향받는다. 최근 일본 엔화가 약세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정부가 엔화약세 정책을 유도하고 있어서다. 덩달아 원화도 약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의 달러 수요 폭증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해외여행증가, 기업의 해외투자 증가, 국내 투자자의 미국주식 선호로 해외로 나가는 달러가 크게 늘었다. 이런 변수들이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하면 달러 당 원화환율은 약해진다. 그렇다고 괜한 걱정으로 스트레스받지 말자. 어떤 경우라도 한국이 IMF 시대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이홍은 KAIST를 졸업하고 광운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경영대학장과 경영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인사조직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지식경영학회 및 한국중견기업학회 회장을 지냈고, 삼성그룹, 포스코, 한국전력, CJ그룹 등에서 자문교수로 활동했다. 정부혁신관리위원장, 사업재편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현재는 한국이해관계자학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비즈니스의 맥', '세종에게 창조습관을 묻다', '국가경쟁력, 중견기업에서 답을 찾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