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 칼럼] 주가 4천 시대가 서민에게 재앙인 이유
11월 5일 오전 9시 46분, 한국거래소가 코스피 시장에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올해 두 번째 발동된 코스피 사이드카였다. 오전 10시 36분에는 코스닥에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주식시장의 지수가 급격히 떨어질 때, 시장이 '패닉 셀' 모드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이드카가 발동되었다는 것은, 시장이 공포에 사로잡힐 우려가 있었다는 뜻도 된다.
사이드카가 발동되고 매수 주문이 들어오면서 주식시장은 종가 기준 4000선 위에서 마감했다. 하지만 11월 5일의 주가 폭락은 지금 벌어지는 '코스피 렐리'의 구조적 취약성과 위험성을 단번에 드러내고 말았다. 대중, 특히 주식 투자에 적극적인 계층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점점 더 큰 위기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방한하여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과 강남의 한 치킨집에서 가졌던 '깐부 회동'에 대한 열광을 고려해보면 지금의 모습은 더욱 섬뜩하다. 필자가 혼자 예민하게 구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좋아할만한 희소식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가 지수가 4천을 넘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두 곳의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인 엔비디아 CEO와 3인 러브샷을 하는 이 시점에, 대체 무슨 소리냐고 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물론 그 모든 '현상'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현상이 보여주고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코스피 렐리의 원인은 단 하나, AI 붐으로 인해 D램 반도체의 수요가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폭등하면서 렐리가 벌어지고 있고, 그 외 수많은 기업들은 주가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 사실은 분명하다.
요컨대 이는 우리 경제의 다양성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반도체를 수출해 먹고 사는 '단일 품목 경제'의 성격이 커졌고, 그 외 다른 기업들은 성장의 가능성과 비전이 줄어들었다는 말과 같다. 실제로 줄어들지 않았더라도 주식 시장 참여자들은 한국의 다른 기업, 특히 내수 기업의 현실과 미래를 긍정적으로 낙관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코스피 4천은 허상이다. 적어도 그것은 우리 경제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라는 '글로벌 기업'의 실적이 과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대한민국 경제의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면, 코스피 4천에 열광할 게 아니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빼고' 우리 경제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실물 경제는 지금 사실상 빈사 상태다. 경제성장률은 1%대로 고착되었고, 물가는 주가보다 더 빨리 뛰어오르고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고용 창출 및 소비 진작 효과를 일으키는 건설업은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이며,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이제는 제조업 전반이 건설업처럼 '올 스탑'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더 큰 위기는 아직 찾아오지도 않았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외화를 벌어오는 수출 대기업은 더더욱 신이 난다. 하지만 수입되는 에너지와 기타 자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 외 모든 기업,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는, 크게 힘들어지고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을 두고 '깐부 회동'을 다시 살펴보자. 엔비디아가 원하는 반도체 생산을 위해, 더 나아가 트럼프의 미국의 원하는 제조업 리쇼어링을 위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투자하여 공장을 짓고 생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그래도 부족한 국내 일자리가 미국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말 외에 다른 뜻일 수 없다. 대체 그 '러브샷'을 보면서 한국인들이 손뼉 치고 좋아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지 필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체 왜 이런 집단 착각이 발생하고 있는 걸까. 이유는 분명하다. 주식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정치권과 언론에 과다 반영되고 있다. 2024년 12월 현재 국내 개인 주식투자자는 1천41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성인 인구의 약 35% 가량이다. 많은 숫자지만 절대 다수는 아니고 심지어 과반도 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성인 인구의 65%는 주식 투자자가 아니라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국가 경제를 설계할 때, 특히 '진보적'이고 '평등 지향'적인 경제를 설계할 때, 그 방향은 어찌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뭐든지 하는 경제 정책, '월스트리트'를 위해 '메인스트리트'를 희생시키는 경제 정책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가가 좀 오르지 않더라도 서민 경제가 잘 돌아간다면 그 편이 더 낫다.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드라이브'는 정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실물 경제가 곡소리 나는데 주가가 오르니 기분 좋다는 뉴스만 연일 언론을 통해 뿌려지고 있다. 나라 경제가 절단나버린 베네수엘라도 그 와중에 주가가 올랐다는 경고는 그저 '주가가 오르는 와중에 재미를 못 본 사람이 배 아파서 하는 소리'쯤으로 치부된다.
지금 필자가 하는 말은 너무도 뻔한 소리다. 하지만 이 칼럼도 부정적 피드백을 얻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주식 투자자인 35%는 인터넷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주식 투자를 안하거나 못하는 65%에 비해 고소득일 것이며, 화이트칼라 직종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경로를 더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의 의견도 소중한 국민의 의견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이 전부는 아니다.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35%만이 행복한 경제 정책, 실물 경제의 불황을 주가 부양으로 떼우려 드는 경제 정책은, 서민과 빈곤층을 중상층이 사실상 약탈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는 처음부터 주가 부양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니 정부와 민주당이 주가 4천 시대에 맞춰 축포를 터뜨리는 것은, 적어도 앞뒤가 어긋나지는 않는 일이다. 하지만 온 나라가 그런 장단에 맞춰 춤을 출 수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주식시장이 아무리 뜨겁건 말건, 당장 일감이 없고 직장이 문을 닫아 치솟는 물가 속에서 텅 빈 장바구니를 보며 한숨 쉬는 65%가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100%의 국민을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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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정태는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이다.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일보, 서울신문, 신동아에 칼럼을 기고한다. '프리랜서', '불량 정치' 등을 썼으며, '아웃라이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칩 워' 등의 번역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