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의 AI와 함께 살기]AI 무한 환경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려면?
IT저널리스트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사람이 판단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결과가 좋을 때 성공, 좋지 않을 때 실패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선택의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크게 두 가지가 달라졌다. 하나는 선택할 것이 점점 늘어나며 더 많은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또하나는 무한한 선택 상황에서 우리는 맞춤화 알고리즘 추천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선택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선택의 역설’ 실험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는지 알려주는 유명한 실험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쉬나 아이엔가 교수팀은 2000년에 상품 선택 가짓수와 매출의 연관성에 관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슈퍼마켓 진열대에 6가지 잼을 놓았을 때와 24가지 잼을 놓았을 때 손님들의 반응과 실제 판매를 비교한 연구다. 진열된 잼의 가짓수에 따라 구매 결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했다. 24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때는 매대 앞 방문객의 60%가 발길을 멈추고 시식했다. 6종류 잼만 진열했을 때는 40%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객들은 종류에 상관없이 평균 2개의 잼을 맛봤다. 그런데 실제 구매율은 반대였다. 24종류 잼의 경우 시식자의 3%만 구매했고, 6종류일 때는 30%가 구매했다. 선택지가 많았던 손님들은 정보가 너무 많아 만족스러운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실험은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면 뇌가 처리 한계를 넘어 과부하 상태에 빠지고, 선택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의 뇌는 무한한 정보를 처리하도록 진화하거나 설계되지 않았다. 뇌는 정보가 적정 범위일 때만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의 가짓수는 많을수록 좋을까?
이와 관련해 인간 뇌의 특징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사람 뇌가 일시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 기억을 작업기억 또는 단기기억이라 부르며, 마치 컴퓨터의 램처럼 전원을 끄면 사라진다. 작업기억은 장기기억(하드디스크)과 달리 한계가 있다. 대략 7개 안팎이다. 월화수목금토일 일주일,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 도레미파솔라시 한 옥타브 음계, 7대 불가사의 등 쉽게 외우는 정보는 대부분 7개 이하다. 웹사이트 인증번호도 보통 4~6자리다. 7자리를 넘기면 메모 없이 기억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서양 문화권에서 7이 행운의 숫자, 마법의 숫자로 여겨진 배경이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조지 밀러는 작업기억의 한계가 평균 7±2개라고 밝혔다.
적정 수준까지 선택지가 증가하면 자유와 만족이 확대된다. 하지만 계속 증가하면 부작용이 커지고, ‘선택의 과부하’에 직면한다. 많아진 선택만큼 인지적 노력과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 본능은 더 많은 자유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수고와 부담이 따른다. 이게 선택의 역설이 생기는 배경이다. 계속해서 과다한 선택을 요구받으면 대부분은 ‘선택의 늪’에 빠지게 된다.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선택 장애 같은 혼란에 처하기 쉽다.
현명한 선택은 어떻게 가능한가? 미국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 과부하 문제를 연구하며, 현명하게 선택하는 조건을 설명한다. 그는 선택 과잉 상황에서 세 가지 부정적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첫째, 더 많은 인지적 자원과 노력이 든다. 둘째, 잘못된 선택 확률이 커진다. 셋째, 틀린 선택을 했을 때 심리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선택지가 몇 개 없으면 그중 하나를 고르고 쉽게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을수록 더 나은 해답이 있을 거란 압박을 느끼게 된다.
-AI시대의 ‘선택 과잉 상황’
슈워츠는 현명한 선택의 첫걸음이 목표를 명확히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선택’을 할지,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지 먼저 정해야 한다. 최고의 선택을 추구하면 끝없는 탐색과 비교로 인지적 피로가 커지고, 웬만해선 만족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고의 만족’ 대신 ‘적당한 만족’을 목표로 삼으라고 제안한다.
아이엔가 스탠퍼드대 교수는 올바르게 선택하는 능력이 자신을 아는 것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무한한 선택 속에서도 원하는 것을 쉽게 찾는다”고 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모르면 선택지 앞에서 우왕좌왕하기 쉽다. 외부 기준에 따라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그 기준은 수시로 바뀌며, 본인의 바람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 욕구를 정확히 알면 선택의 늪에 빠지지 않고, ‘적당한 만족’에 도달하기도 쉽다. 그래서 현명한 선택을 하려면 자신과 조직의 상태와 필요를 파악하는 메타인지 능력이 필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더 많은 선택, 최고의 만족 대신 적당한 만족을 택하는 게 매우 어렵다. 사람은 선택을 통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선택지를 줄이려 하지 않는다. 무한정보 사회에서 적당한 만족을 고르는 선택이란 쉽지 않다. 디지털 환경에서 선택이 더 어려워진 이유는, 선택지가 많아진 것뿐 아니라 상황이 더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한때 현명했던 선택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 ‘AI 추천 알고리즘’의 편리함과 위험
디지털 기술은 정보의 홍수를 가져와 인지 과부화와 혼란을 일으키지만, 동시에 기술적 대안도 제공한다. 검색·필터링·알고리즘 등 자동화 기술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선택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처럼 무한 콘텐츠 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은 대부분 알고리즘 추천을 따른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터링과 알고리즘을 찾게 되지만, 이는 편리함과 동시에 위험을 안고 있다. 이용자가 필터링 도구와 알고리즘의 의도와 작동 방식을 모른 채 쉽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필터링과 알고리즘의 최종 수혜자는 결국 이 기술을 만드는 개발자, 운영자, 어뷰징 세력이다.
그렇다고 콘텐츠 이용이나 쇼핑 검색 등 일상생활에서 추천 알고리즘을 이용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제공된 추천과 이에 기반한 선택이 나의 취향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빅테크의 이익이라는 걸 의식하면서, 자신의 선택 과정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