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의 변화 속 '한국단청'
책 ‘단청에서 역사를 보다’ 출간 저자 박일선은 ‘단청산수화’장본인
한국의 단청은 언제 보아도 단정하다. 오방색이 가지런히 배치된 기둥과 처마는 화려하면서도 지나치지 않다. 눈에 띄면서도 겸손하고, 규칙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 단청이 입혀지면, 금세 숨결이 깃든 듯 생기가 돌아온다. 나무를 보호하려는 마음과 장식을 더하려는 의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중국의 단청은 첫눈에 그 위엄이 느껴진다. 붉고 금빛이 강렬하게 어우러져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기둥에는 용과 봉황이 꿈틀거리고, 천장에는 구름과 연꽃이 풍성하게 피어난다. 건물 자체보다는 그 위에 얹힌 황권의 기세를 보여주려는 듯, 거침없고 화려하다.
일본의 단청은 화려함보다 소박함, 장식보다 여백을 중시한다. 목재의 자연스러운 색과 질감을 살리며, 단청은 필요한 곳에만 살짝 배치된다. 선은 가늘고 섬세하며,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은은한 느낌을 준다. 마치 바람이 지나가는 정원을 보는 듯한 고요함이 있다.
한국은 구조와 색의 균형, 중국은 웅장과 권위, 일본은 여백과 섬세함. 같은 ‘단청’이라 불러도, 각각의 색과 선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단청에서 역사를 보다’(도서출판 덕주)는 우리와 시간을 함께해 온 단청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변화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단청 연대표와 같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한옥 성당으로 태극문양을 사용해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를 담아냈고, 서울 흥천사의 꽃살문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를 조각해 붙였고,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기원하는 태평화를 그려 넣었다. 이렇듯 단청은 우리의 바람을 담아 시대를 반영해 왔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단청의 정수가 담겨 있다. 사람들과 더불어 흐르는 예술이 단청인 것이다.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는 서양의 정물화가 성행할 때보다 훨씬 오래전인 1308년에 그려졌지만 그 어떤 서양의 뛰어난 정물화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활짝 핀 꽃송이와 풀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 모사도를 아무런 설명 없이 다른 나라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한다면 서양의 정물화로 생각할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임에 틀림없다.(50쪽)
우리나라 단청의 역사는 회화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했다고 볼 수 있다. 회화도 마찬가지지만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단청이 그려지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대부분 목조건축이다 보니 이를 입증할 만할 건축물이나 유물은 남아 있는 것이 없어 단청의 기원을 파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삼국 시대의 고분벽화를 통해 그 당시의 단청을 유추해 볼 수 있다.(65쪽)
예로부터 사신이나 사령은 벽화로 많이 그려졌다. 사신은 주로 고분벽화에 그려졌고, 사령은 단청의 소재로 그려졌다. 그중 용은 주로 궁궐이나 성곽 홍예문의 천장에 가장 많이 그려졌다. 사신은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를 배치하고, 동서남북 사방을 지킨다고 여기는 상상 속의 동물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가 가장 먼저 사신의 개념이나 형상을 표현했다.(119쪽)
불회사 대웅전 천장에도 이에 못지않은 신비로움이 가득한 단청이 펼쳐져 있다. 지상에서 높이 올라간 공중의 천장에는 연잎 위에서 X자로 교차한 두 갈래의 줄기 끝에 연꽃 봉오리가 피어난다. 이 두 송이의 연꽃 봉오리들은 마주 보며 대칭으로 줄지어 있다. 연꽃과 모란이 피어나고 흰 학이 날고 있으며 물속에 사는 수생동물인 게와 거북, 물고기가 공존하고 있는 광경은 현실 세계를 초월한 환상 세계인 용궁임을 암시한다.(187쪽)
불교에서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면 연꽃으로 피어나 극락에서 환생하거나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벽화에서는 극락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기발한 상상력이 담겨 있다. 대적사 극락전 벽화의 거인은 뭇 중생을 두 손으로 들어서 먼 하늘 건너 극락세계까지 올려 보내고 있다.(235쪽)
저자 박일선은 198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안과(그래픽 디자인)를 졸업하고, 2012년부터 전통 단청과 회화를 혼융한 단청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2017년부터는 한글을 주제로 한 한글단청추상를 병행 작업하며 단청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예술로서의 단청을 추구하며 단청의 현대화, 대중화, 생활화를 위해 단청발전소라는 블로그 등을 통해 단청을 알리고 있다. 2019년 ‘예술로서의 단청’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