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의 시사직격] “우리가 윤석열이다”라는 고백

2025-11-24     조경일 작가
조경일 피스아고라 대표

지난 12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국회 규탄대회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체포된 데 반발하며 "우리가 황교안"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 발언으로 여당은 물론 자당 안에서도 비판목소리가 나왔다. 규탄대회에서는 종종 과격한 발언이 나온다. 그런데 장동혁의 이 발언은 선을 한참 넘었다는 비판이 대부분이다. 이는 보수 정당의 정체성이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자기 파괴적 고백이다. 제1야당이 여전히 내란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동조하는 것은 시대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퇴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곧 “우리가 윤석열이다”라는 자백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외침은 표면적으로는 야당의 탄핵 공세나 사법적 심판 앞에서 정치적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려는 단결의 구호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발언의 같은 당에서조차 반발을 샀다. 황교안은 누구인가? 그는 탄핵 정국에서 권한대행을 맡았으나 촛불 혁명의 파고를 넘지 못했고, 이후 당 대표로서 극우적 행보와 부정선거 음모론에 매몰되어 보수의 격을 떨어뜨리는 인물이다. 그는 지금까지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에 사로잡혀 정치 공론장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지금 국민의힘 지도부가 굳이 ‘황교안’을 호명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내란 청산 작업과 윤석열을 둘러싼 사법적 위기 앞에서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윤석열의 내란은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으로만 봐도 사형선고형 외에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여전히 윤석열과 선을 긋지 못한 채 내란 1주년을 앞두고 있다. 

장동혁 대표의 행보를 보면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인 내란청산을 정면으로 거부하겠다는 태도로만 비춰진다. 현재 국민의힘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윤석열과 황교안에 이어 테러를 조장하는 전한길까지 모두 실패한 유령들을 불러내어 어떻게든 내란 청산과 보수 궤멸을 막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보수를 살리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되려 보수의 정체성을 죽이고 있다는 비판을 멈출 수 없는 모습들만 보여주고 있다. 

진짜 보수주의는 어디로 갔나

현재 국민의힘은 뉴라이트 역사관과 극우 유튜버의 선동 논리에 기생하는 가짜 보수라는 신랄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들은 보수의 핵심 가치인 ‘책임’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맹목적인 반공주의와 혐오선동이 대체했고 결국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계엄내란을 초래했다. 보수가 어쩌다 이리됐나.

나는 계엄사태 이후 이들의 행태에서 북한 전체주의의 기시감을 느낀다. ‘자유’를 외치지만 그 자유는 혐오를 조장하는 자유이며, 정치적 반대자를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는 배제와 혐오의 정치는 북한의 그것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게다가 계엄령 포고령은 북한이 오늘날까지도 하는 작태와 똑같았다. 

흔히 보수는 역사의 흐름을 존중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체제를 수호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지금 보수를 참칭하는 이들을 보자면 명예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 같다. 그저 “우리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협박만 할 뿐 보수의 가치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보수주의가 아니라 이권 카르텔의 생존 투쟁에 불과하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외치는 보수주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그의 1957년 발표한 논문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Conservatism as an Ideology)>에서 보수주의의 본질을 날카롭게 통찰했다. 그는 보수주의를 고정된 이상향을 가진 사상(Ideational)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가 위협받을 때 나타나는 ‘상황적 이데올로기(Situational Ideology)’로 규정했다. 즉, 보수주의는 그 자체로 고유한 절대적 이념이나 가치를 지향하기보다, 구체제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이를 방어하기 위해 발동되는 논리 체계라는 것이다.

보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프랑스 혁명의 과격함에 맞서 ‘전통’과 ‘유기적 사회’를 옹호했을 때, 그것은 최소한 과격한 혁명이 초래하는 무질서로부터 구체제를 보호하려는 철학적 고뇌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보수가 보여주는 행태는 헌팅턴이 지적한 ‘상황적 보수주의’의 가장 타락한 형태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들은 지켜야 할 가치(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가 있어서 싸우는 것이 맞나 의심이 든다. 단지 자신들이 쌓아 올린 권력의 성벽이 무너질 위기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보수’라는 이름 뒤에 숨어 저항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헌법정신을 위배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한 계엄내란을 어떻게 옹호한단 말인가.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외침은 바로 이 ‘상황적’ 절박함의 발로일 수밖에 없다. 현재 보수당의 규탄과 내란청산 발목잡기에는 어떤 철학적 성찰도, 반성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다. 오직 ‘심판받지 않겠다’는 생존 본능만이 꿈틀거린다. 이러다가 국민들이 “우리가 윤석열이다”를 듣는 날이 올까 두렵다.

한국 보수가 살길은 “우리가 황교안이다”가 아니라 “우리는 다르다”여야 한다. ‘내란’의 역사와 단절하고, 가짜 보수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혐오를 일삼는 극우와 결별하고, 독립투쟁의 역사를 계승하고 뉴라이트 사관을 청산하는 창조적 파괴 없이는 새로운 보수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이다.

제1야당이 건강한 보수로 여당을 견제하는 날개가 되어야 한다. 부정선거 음모론 황교안과 단절하고, 계엄내란 윤석열과 단절하고, 혐오와 테러를 조장하는 전한길을 내치고, 성찰과 반성으로 보수 재건을 선언하는 보수주의자들로 다시 세워져야 한다. 나는 건강한 보수를 응원한다. 그래야 진보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