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지멘스·ABB와 전략적 동행... 스마트 인프라 ‘잰걸음’

에너지 및 설비 관리 등 디지털 협업, 수주 역량 강화 글로벌 파트너십 혼재로 이해관계 복잡, 실효성 고민

2025-11-25     최용구 기자
(왼쪽부터)스테판 메이 지멘스 전기화·자동화 부문 대표, 정호진 삼성물산 부사장, 정하중 지멘스 코리아 대표가 지난 18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진행된 협약 체결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지멘스 제공)

삼성물산이 글로벌 전기화 및 자동화업체와 폭넓게 협업하고 있다. 지멘스(독일), 에이비비(스위스)의 디지털 역량을 자사의 EPC(설계·조달·건설) 전문성과 결합함으로써 스마트 인프라 사업에서 호재를 기대한다. 

높은 기술적 위상을 바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인 이들 업체와의 든든한 동맹 관계는 삼성물산의 글로벌 수주 대응력을 한층 높일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2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차세대 인프라 프로젝트 추진에 관한 장기 파트너십을 지멘스와 체결했다.

이는 건설 역량과 자동화·전기화 기술을 결합해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공항, 병원, 데이터센터 등 조성을 공동 추진하는 내용이다.

양사는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디지털 트윈, BIM(빌딩 정보 모델링) 등 기술을 프로젝트의 기획, 실행, 모니터링 등 과정에 도입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 관리의 효율성과 성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삼성물산은 사우디 경제 개혁 프로젝트의 핵심인 타이프 신도시 국제공항과 킹살만 국제공항 건설 사업의 수주를 노리고 있다. 

사우디에서 전력 설비 현대화와 에너지 전환 등 사업을 다수 수행한 경험이 있는 지멘스와의 협업을 통해 수주 대응력을 강화한다.  

인력 부족, 생산성 저하, 안전 리스크, 에너지 전환 등 이슈에 직면한 건설업계에 스마트 인프라는 중요한 시장이다. 

디지털 기술력을 보유한 지멘스 등에게도 물리적인 인프라를 실제 구현할 수 있는 건설사의 역량이 필요하다. 전력 설비의 설계·제작부터 설치 등 공사까지도 일부 가능하지만 인프라 구조물 전체를 단독으로 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지멘스의 경쟁업체인 에이비비와도 지난 2023년 주거용 스마트 인프라 설루션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 건물의 에너지 관리 효율을 높이는 등 시범 프로젝트를 중동을 포함해 아시아, 유럽에서 공동 진행할 예정이다. 

에이비비 역시 에너지, 설비 자동화 등 사업을 사우디에서 수행한 경험이 있는 사우디의 주요 파트너사다. 삼성물산은 자사의 주거생활 디지털 플랫폼 고도화와 더불어 사우디 사업 기반 확대 등 시너지를 에이비비와 협업으로 기대할 수 있다.  

삼성물산이 지멘스, 에이비비와 각각 맺은 협약의 구체적인 내용과 법적 효력의 범위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호 간 사업 파트너로서의 지위는 꾸준히 유지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하지만 지멘스와 에이비비가 서로 경쟁업체인 점에 더해 이들이 삼성물산 외에 다른 글로벌 건설업체와도 협업하고 있는 상황은 변수로 거론된다. 이해상충과 견제로 협약의 실질적인 효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물산으로서는 양사와 전략적 관계를 이어가며 프로젝트 성격이나 발주처의 선호에 따라 적합한 파트너사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지멘스와 에이비비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삼성물산에 ‘아군’으로 남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멘스와 삼성물산은 지난 2007년 싱가포르 복합화력발전 프로젝트를 공동 수주한 적이 있다. 지멘스는 지난 2010년 삼성물산이 수주한 캐나다 온타리오주 재생에너지 조성 사업에 풍력터빈을 공급하기도 했다. 2011년에 수주한 사우디 쿠라야 복합화력발전, 2013년 수주한 사우디 라비그 2 가스복합화력발전 사업에도 삼성물산에 가스터빈 등을 공급했다.   

에이비비의 경우 삼성물산과 공동 수주 또는 납품 계약 등 소식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지난 2021년 수주한 사우디-이집트 전력망 연결 사업에서 에이비비는 사우디 건설업체 SSEM, 이집트 오라스콤 건설과 공동 참여했다.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수주한 아랍에미리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솔라 파크 변전소 건설 프로젝트 때는 스페인 건설업체 TSK와 손을 잡았다. 

국내 전력시공업계 한 관계자는 “스마트 인프라 시장에서 삼성물산 단독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만큼 지멘스, 에이비비 등 해외업체와의 협업은 불가피하다”며 “이들과 파트너십 체결이 친분 형성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