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붓의 가치 실현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김덕권의 덕화만발
사랑의 매
  • 김덕권 (전원불교문인회장)
  • 승인 2019.05.27 07:31
  • 수정 2019.06.10 16:02
  • 댓글 0

사랑의 매

지난 5월 23일, 정부가 부모의 자식 체벌을 금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부모의 체벌을 사실상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민법 제 915조에 대한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지요. 그간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자녀 체벌을 정당화했던 사회 분위기가 일대 변혁을 맞이할지 주목되는 것입니다.

이날 발표한 아동정책은 아동의 권리를 강화하는 다양한 정책 방안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아동이 ‘양육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하에 국가의 책임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민법 제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방향성에 대해 환영 입장을 보이면서도 부모의 자율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동의 인권(人權)과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권리도 굉장히 중요한 인권”이라며, “직간접적으로 부모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는 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하는 것은 법이 가족의 영역에 지나치게 깊숙하게 침투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이 체벌에 대한 사회 문화계의 지적을 감안해 앞으로 오랜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 민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도 아주 오래전에 큰 딸애의 심한 고집에 참지 못하고 심한 매질을 가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피자’가 처음 들어왔을 즈음입니다. 가족 동반으로 피자를 먹으로 갔다가 큰 애가 피자를 거부하고 만두를 먹겠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제 뜻대로 하게하고는 돌아와서 “남들은 먹어도 못 보는 맛있는 피자를 안 먹겠다고 고집을 피워? 복이 겨워서 그래!” 하고는 체벌을 가한 것입니다.

그 후,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후회가 되는지 피자를 먹을 때 마다 그때의 잘못을 참회하고 온 가족이 큰 소리로 웃습니다. 그 어린 것을 어디 때릴 때가 있다고 매를 댄 것인지요? 이렇게 부모의 징계권을 법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라고 합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는 2013년 5454건에서 지난해 1만8756건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체 아동 학대에서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가 70~80% 수준이라고 하네요. 그런데도 한국은 얼마 전만 해도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시행한 ‘아동 학대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에서도 응답자 77%가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해서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익힙니다. 정규과정에 해당하는 초⦁중⦁고 12년간은 오롯이 배움을 위한 시간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이후의 시간도 평생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배움에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불교에서는 “교육은 세계를 진화시키는 근원이요, 인류를 문명화시키는 기초니, 개인 가정 사회 국가의 성쇠와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 교육을 잘하고 잘못함에 있다 할 것이다”라며 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자본위(知者本位)’라 하여 어떤 분야든지 자신보다 능한 사람이 있으면 스승으로 삼아 배울 것을 권장합니다.

그럼 부모는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요?

첫째, 심교(心敎)입니다.

바르고 착하고 평탄하게 마음을 가져 자녀로 하여금 그 마음을 먼저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행교(行敎)입니다.

부모가 먼저 실행하고 행동에 법도가 있어서, 자녀로 하여금 저절로 그 실행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언교(言敎)입니다.

성현(聖賢)들과 위인(偉人)들의 선행을 많이 일러 주어 그것을 기억하여 본받게 하며, 모든 사리를 순순히 타일러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넷째, 엄교(嚴敎)입니다.

이는 자녀가 철없는 때에 부득이 위엄으로 가르치는 방법으로, 자주 쓸 법은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심교⦁행교⦁언교⦁엄교를 잘 활용하여 가르치면 예전의 저와 같이 가슴 아픈 일은 없지 않을까요? 문제는 정신교육이라 할 수 있는 도학(道學)교육입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가르치는 일은 정신수양의 힘, 지혜와 자비심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와 사랑이 없는 지식과 기술은 강도의 손에 들린 칼이나 다름 아닙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도학교육이 실종된 지 오랩니다. 학교에서 한두 시간씩 가르치는 도덕시간에는 철학자 이름 외우기에도 바쁘고, 정신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할 가정과 종교는 갈수록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화(進化)의 근본은 교육이요, 교육 가운데에는 정신 교육이 근본이 됩니다. 학문이나 기술은 발전에 필요하기는 하나, 진실과 공심(公心) 위에 갖추어진 학문과 기술이라야 세상에 이익을 주는 학술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과 공심에 기초하지 않은 학문과 기술은 무용(無用)함에 그치지 않고, 세상은 물론 본인에게까지 치명적인 화(禍)를 미칠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신은 ‘바담풍’ 하면서 자식들은 ‘바람풍’으로 발음하기를 원한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실천이 만법(萬法)을 초월합니다. 부모의 한 번의 행교가 만 번의 회초리를 능가합니다. 모든 부모는 체벌의 유혹에서 벗어나 심교⦁행교⦁언교⦁엄교로 사랑의 매를 대신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5월 2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덕권 (전원불교문인회장)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