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민 지배체제는 하나같이 ‘’말 잘 듣는’ 인성 조장의 봉건적 가치관에도 책임 있어
민주주의의 본향 그리스 사람들은 공격성을 갖지 않은 이가 드물다

사진출처, 뉴스프리존, 2019.10.29.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2771
사진출처=뉴스프리존

'한겨레'가 비호감을 가지고 이재명·윤석열·홍준표 후보를 동급에 놓고 비교하면서, 후보들 사이에 큰 변별력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집권여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은 ‘사이다’로 성남시장부터 경기도지사까지 지내는 동안 거침없는 발언이 그의 강점이란다. 그런데 여기에 국민의힘 윤석열 예비후보도 마찬가지라고 토를 달았다. 박근혜 정부 때는 물론 현 정부에서도 국감장 등에 설 때마다 ‘공무원’스럽지 않은 언행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홍카콜라’ 홍준표 예비후보 역시 이런 면에서는 원조라 부를 만한 인물이라고 한다.('한겨레', 2021.10.29.)

반면 이낙연·정세균·최재형 등 안정된 품성과 정제된 언행을 강점으로 삼았던 인물들은 모두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고, 아직 진행 중인 국민의힘 경선에서도 유승민·원희룡 같은 ‘범생 스타일’ 후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인성을 바탕으로 한 '한겨레'의 논조는 마침내 “스타일의 10년 주기 이론이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스타일’론으로 귀결되었다. 진보 보수 물갈이와 함께 인성 교체의 ‘10년 주기설’의 운명론으로 환원시켜버렸다. 또 호감도가 아니라 비호감을 논하면서 이재명과 윤석열을 ‘마찬가지’로 규정했다. 이 같은 주제의 편향적 선택이 알게 모르게 대선정국에서 민초의 판단력을 흐리는 양비론(이도 저도 아닌 것)을 조장한다. 교묘한 의도의 유무와 별개로 그 같은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겨레'에서는 유권자가 세 후보에게서 떠올리는 단어가 욕설, 막말, 실언, 망언 같은 것이고, 말의 내용과 스타일을 놓고 봤을 때 각 후보 사이 큰 변별점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규정했다. 그 예로, 이재명이 ‘국민의 짐’ ‘도둑의 힘’ 발언하거나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흐흐흐” 하고 실소(失笑)로 대응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고, 윤석열이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전두환이 쿠데타와 5·18 빼놓고 정치는 잘했다”고 한 것을 든다. '한겨레'에서는 이런 예들이 각 후보 사이 큰 변별점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예 자체가 두 후보 사이에 큰 변별점이 있음을 보이고 있다. 

우선 양측의 말의 초점 자체가 다르다. 이재명이 ‘국민의짐’ ‘도둑의힘’ 발언이나 ‘“흐흐흐” 하고 실소한 것은, 허위사실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아프리카 손발 노동’이나 ‘전두환 옹호 발언’은 노동이나 정치체제 관 등, 첨예한 사회 문제를 대하는 시각에 관련된다.  

같은 맥락에서 윤석열 측은 “저쪽(이재명 후보 쪽)이 고의범이라면 우리는 과실범 아니냐. 고의범의 죄질이 나쁘다”고 하고, 이재명 측은 “저쪽은 무능해서 그런 것이고 우리는 유능하다”고 반박했다. 여기에도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윤석열 측은 상대를 고의범이라고 할 때 개인적 행동을 두고 말한 것이고, 이재명 측이 상대를 무능하다고 할 때는 정책 현안이나 비상식적 발언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양쪽의 주장은 질이 다르다. 전자는 개인의 인성을 화두로 삼는 것이고, 후자가 말하는 ‘무능’은 사회적 현안에 관련한 것이다. 

여기에 호감도가 아니라 비호감을 가지고 논한 '한겨레'의 꼼수가 있다. 호감도와 사회 현안에 대한 대처 방안에서는 도저히 두 후보를 동격으로 놓을 수가 없으니, 비호감을 두고 논함으로써만이 양자를 큰 변별점이 없는 것으로 규정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런데 사람을 두고 비호감을 논하자면 이재명, 윤석열 사이에서만 변별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다 같은 입장에 있다. 어느 하나 완벽한 인간이 없다.   

그런데 '한겨레' 비호감 담론은 그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깔고 있다. 그것은 공격적인 언행을 부정적으로 보고 비호감과 연결하고 있는 점이다. 그 같은 인식구조는 무조건 ‘말 잘듣는 아이’를 양산하는 수동적이고 봉건적인 가치관을 반증한다. 

부당하게 공격받을 때는 당연히 맞대응해서 반격해야 한다. 이것은 ‘용감’한 것이다. 그 ‘용감’의 행위가 보는 이에 따라서는 ‘비호감’으로 연결되거나 ‘테러’로 규정된다.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는데, 일본인이 보기에 이것은 ‘테러’이다. 비호감은 일반적, 보편적인 감정이 아니라 보는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서 획일적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본향 그리스에는 ‘용감’한 이들로 가득하다. 제각기 개성이 다르고 자기 것을 부당하게 침해받으면 사활을 걸고 덤빈다. 미군 부대가 그리스에도 있지만, 그 미군들이 큰소리를 치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기죽어 있다. 콩나라 팥나라 오만 가지를 외세가 간섭하고 또 자발적으로 외세에 물으러 다니는 대한민국과는 달라도 아주 다르다. 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에 국힘당 대표 이준석이 미국으로 가서 전시작전권 이양은 아직 하면 안 된다고 종용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쓸개 빠진 위정자뿐 아니다. 위정자와 민초를 가릴 것 없이 하나하나가 다 수동적인 나라, 용감하지 못한 탓에 대한민국이 ‘소한(小韓)민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일제식민지배를 두고도 일본인만 욕하고 있을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비겁함’, ‘용감’하지 못한 수동적 근성에도 큰 책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 비루한 근성이 지금은 비리로 가득한 공직자들에 대한 침묵으로 재현되고 있다. 어렵사리 국회에서 최초로 탄핵한 법관 임성근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그 탄핵을 무효로 하고 임성근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유는 사법권력을 농단한 죄가 있으나 이미 퇴직을 했으므로 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판사는 마음 놓고 비리를 저지르고 들키면 사표만 내버리면 벌 받지 않게 되었다. 헌법을 수호하는 헌법재판소가 그 같은 전례를 만들어서 미래 사법권력의 농단을 조장하고 있다. 

사법권력 농단으로 피해를 본 이가 숱한데도, 그 피해는 아무데서도 책임을 지는 이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주권자’라고 하는 민초가 그 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앞에 수동적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니, 사실은 그 반대이다. 민중이 제 밥그릇 못 찾아 먹을 정도로 ‘용감’하지 못하고 수동적이므로, 한 나라 헌법재판소에서 그 같은 결정을 감히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 식민지배 하에서 착취당하면서도 다수가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힘당 비대위원장을 지냈던 김종인이 윤석열을 두둔하여, 윤의 처와 장모 사기 연루 혐의에 대해 그거 별것 아니라고 했다. 또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하여, 그것에 윤석열은 무관하다고 했다. 윤석열 자신, 혹은 주변인의 혐의 사실 진위와 무관하게, 김종인은 미래의 사기행각, 나아가 검찰의 일탈을 조장하고 있다. 사기 혐의가 별 것 아닌 것이 되고, 또 검찰이 고발사주를 해도 윤석열만 연루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김종인의 눈에는 사회가 아니라 윤석열만 별같이 보이나 보다. 

법원과 위정자들이 미래의 범죄를 부추기고 있고, '한겨레'는 사회적 현안을 지워버림으로써, 대선 정국을 개인 인성의 놀이터, 운명적 정권교체설로 전락시켜버렸다. 여기에 사활을 건 치열관 정책 대결은 홑이불로 덮여버렸다. 그 앞에 민초는 무기력하고 수동적이고 ‘용감’하지 못하다. 

'한겨레'의 비호감 담론과는 달리, 대선은 개인의 인성을 가름하는 곳이 아니다. 숱한 문제에 수술칼을 대야 하는 현안들로 지뢰밭을 깔고 있는 마당에, 대선 후보의 자질·논의는 이같은 현안에 대한 입장을 두고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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