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윤석열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의 개념은 실체가 없다
불평등하고 비민주적 교육환경, 경성제대의 후신 서울대학교는 지금도 미래의 윤석열을 키우고 있다

사진출처: 뉴스프리존, 2021.9.24.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7324
사진출처: 유승민 후보 SNS 캡춰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그런데 꼭 무식할 때만 아니라 빤히 알지만, 욕심 때문에 사실을 왜곡할 때도 용감해진다. 무식해서 용감한 것은 고의가 아니므로 딱히 탓하기가 어렵지만, 알면서 왜곡하는 데 용감한 것은 고의적이라 나쁜 것이다. 윤석열이 무대포로 내뱉는 말들이 후자에 속한다.

윤석열은 크게 두 가지 구호를 내걸었다. 하나는 공정과 상식, 다른 하나는 정권교체이다. 그가 훤하고 넓적한 얼굴을 디밀고 공정과 상식을 말하면, 자칫 정말인 줄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관심은 공정과 상식보다는 정권교체에 딱 꽂혀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권교체란 확실하고 구체적인 개념이지만, 공정과 상식은 뜬 구름 잡듯이 실체가 모호한 것이다. 어떤 것을 두고 공정, 상식이라고 표현하는지 윤석열 자신도 다른 이에게 딱히 설명을 해줄 수가 없다. 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점에서 다 같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이란 그냥 입에 발린 말,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하게 된다.

오히려 그는 공정과 상식과는 동떨어진 발언을 매일같이 쏟아내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두고 그가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고,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됐다”고 사실과 다른 발언을 했고,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한 것이 그러하다.

그보다 더 웃기는 것은 그다음에 그가 한 변명의 말이다. 한 전문위원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 내부 노심이 용융되고 수소 폭발로 지붕이 날아갔는데 붕괴되지 않았다니 무슨 말인가, 방사능 유출 사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일본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한겨레, 2021.3.5.)

그런데 윤석열은 자신이 틀린 말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인터뷰 보도 과정을 두고 공세를 벌이는 것은 비열한 정치 공세”라고 날을 세웠단다. 그리고는 “후쿠시마 원전이 설계 안정성 때문이 아니라 지진·해일 때문에 피해가 생겼다는 것을 얘기하려다 말을 축약하다 보니 그렇게 전해졌다”며 “우리나라는 지진이나 해일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설계도 좋아졌는데 원전을 안 한다고 하는 건 문제가 많다는 발언을 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윤석열은 “원전을 안 한다고 하는 건 문제가 많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 위해서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바꾸어 말한다. 이것은 윤석열 자신이 한 변명이다.

그 다음은 최근에 터진 윤석열의 전두환 찬양 발언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윤석열이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이 많다’, 나아가 전두환에게서 ’벤치마킹할(배울) 것도 있다’ 등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게 문제가 되자 윤석열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이 유능한 인재를 잘 기용해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변명했다.(노컷뉴스, 2021.10.20.) 그러니, 윤석열은 “인재를 잘 기용한다‘는 뜻을 ”전두환이 그야말로 정치를 잘한다“는 뜻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윤석열의 사고구조가 갖는 중요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리나라는 지진이나 해일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설계도 좋아졌는데, 원전을 안 한다고 하는 건 문제가 많다는 발언을 하려던 것”이었는데, 그것이 후쿠시마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고,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사실과도 어긋난 발언으로 둔갑을 했다는 것이고, 또 “인재를 잘 기용한다”는 개념이 윤석열의 머릿속에는 “전두환이 그야말로 정치를 잘한 것”과 호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윤석열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보편적 사안이 누군가 사람의 편을 드는 것으로 흐르는 편애의 경향이다. 원전을 찬성한다는 것이 일본을 옹호하는 것으로, 또 “인재를 잘 기용한다”는 것이 전두환을 옹호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 그러하다. 이것은 사회가 그 의도를 잘못 오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윤석열의 자체 두뇌 속에서 무언가가 편애로 비약하는 것이다. 편애는 개인의 기호이므로 타자가 뭐라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으로 일반화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이의 대등과 평등을 전제로 해야하는 민주가 아니므로, 적어도 공인으로서는 치명적 하자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말의 내용이 편애로 비약하는 둔갑술 자체도 문제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윤석열은 “이 분(전두환)은 군에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각 분야를 전문가들에게) 맡긴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윤석열이 가진 두 가지 판단기준이 드러난다. “인재를 잘 기용” 하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인데, 그 목적과 관련하여 윤석열은 ‘군 조직관리’를 언급했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안 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군 조직관리’란 개념이 무서운 것은 윤석열이 대권을 쥐면 조직관리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민주적 소통이 아니라 전두환식 ‘군 조직관리’를 통해 통치하겠다는 뜻이다. 또 자기는 “전문가들에게 맡긴다”고 하는데, 그 말은 다른 이는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이가 다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고, 스스로 다 하는 정치가는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윤석열은 ‘자기’는 전문가에게 맡기겠다고 함으로써, 다른 이가 혼자서 다 하는 독재자인 것같이 폄훼하는 효과를 낳았다.

다른 이도 다 하는 것을 윤석열은 왜 자기만 그렇게 할 것처럼 행색을 내는 것일까? 그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는 무식을 얼버무리려는 것이다. 자신은 모르는 것이 많아도 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자기 변명 같은 것.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남에게 맡겨도 자신이 알 것은 알고 있어야 한다. 잘 모르면, 누가 진실한 전문가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두환 관련 발언을 두고 윤석열이 사과를 하네 안하네 논란이 있고, 또 ‘사과(謝過)’가 아니라 ‘유감(遺憾: 남에게 미안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섭섭하다)’으로 표현해서 격에 맞지 않다는 둥, 또 ‘사과(謝過)’ 대신 먹는 사과를 개 코앞에 들이미는 사진을 올려서 민초를 개 취급하냐는 둥 말들이 무성하다. 그러나 본질은 유감, ‘사과(謝過)’, 먹는 사과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강고하게 꽈리를 틀고 앉아있는 근성은 겉으로 무엇을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힘당 대표 이준석이 윤석열의 ‘전두환 옹호’ 발언을 두고 해석하기를, “5·18과12·12는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고 다만 다른 것에서 평가할 부분 있다고 한 것이다. 표현상 실수가 크다”고 하면서 윤석열을 두둔했단다. 이어서 “이런 부분이야말로 나중에 본선 후보가 누가 되든 최대한 전문가들의 조력을 받아 가며 완화할 수 있는 리스크(실수 혹은 위험)”라고 했다고 한다.

이준석 말마따나 누구나 실수를 하고 또 고쳐가면 된다. 그런데 모든 것이 실수인 것이 아니라 본심에서 하는 것이라, 고쳐지지 않거나 어려운 것들도 있다. 여기서 이준석은 윤석열의 사람 됨됨이를 너무 얕잡아보고 있다. 그가 걸어온 자취를 보노라면, 윤석열의 전두환 옹호 발언은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고 고쳐지기를 바라는 것이 허망한 바람이라는 사실을 각인하게 된다. 그 한 증거가 검찰개혁 관련하여 윤석열이 내뱉은 말들이다.

윤석열은 "현 정권이 2017년 대선 직전부터 검찰개혁과 적폐청산을 주장했는데, 자기들이 개혁해놓은 검찰이 이 모양이면 구 적폐보다 더한 적폐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하고, 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를 두고 "대장동 부패를 완전히 도려내지 못하면 그 부패의 구더기들은 결국 대한민국을 갉아먹고 말 것"이라고 했으며(MBC 뉴스, 2021.10.23.), "특정 정치인의 사수대로 전락한 지금의 검찰이 정말 안타깝다"면서 "검찰총장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을 대통령이 돼 해내겠다"고 했다(SNS).

그러고 보면 윤석열은 검찰조직이 적폐이고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 검찰은 언제라도 특정 정치인의 사수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왜곡이 있다. 그는 “자기들(현 정권)이 개혁해놓은 검찰이 이 모양이면”이라고 발언한 것이다. 현 정권이 검찰개혁에 전혀 손대지 못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윤석열이 “개혁해 놓은” 것이라고 완료형을 썼다.

그는 조국을 난도질하고 추미애에게 항명하고, 검찰개혁이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려 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이라고 하고, 검찰의 수사와 기소권 분리 시도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자기(윤석열)가 미워서“ 그런 거 하느냐고 검찰총장직 사표까지 썼다. 그 검찰조직 개혁에 검찰총장직을 걸고 반대했던 이가 이제 와서 현 정권이 ”개혁해놓은 검찰“이 이 모양이냐고 탓을 한다.

윤석열이 이 같이 사실을 거꾸로 전도하고 앞뒤 말이 바뀌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언제나 당당해 보이는 그 얼굴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나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왜곡하는 것인데 자신은 그렇게 인지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바로 권력이고, 그 권력은 그가 배울 것도 있다고 한 군부정권 전두환의 독재와 독선을 지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그의 독선은 두 가지 양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자신은 물론이고 장모나 처 등 그 주변의 인물이 얽혀있는 비리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검찰총장직과 대통령직이 상호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명령의 주체로 보이는 것이다. 검찰총장직에 있을 때 그는 오직 위로 ’살아있는 권력‘을 조지는 수단인 것으로 보았을 뿐, 그 검찰이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민생에 대한 피해는 아예 안중에 없었다.

지금 검찰이 ’특정 정치인을 사수하는 것으로 전락해서 정말 안타깝다‘고 하는 윤석열은 자신이 검찰총장으로 있으면서 검찰조직을 동원하여 ’고발사주‘한 혐의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정치공세인 것으로 매도한다. 그에게 그런 비리 혐의는 수사할 필요도 없고 일언반구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것일 뿐이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을 대통령이 돼 해내겠다"고 한 말은 자기보다 더 강한 권력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재 근성을 드러낸다. 그 발언은 논리적으로는 앞뒤가 들어맞지 않지만, 그가 가진 절실한 권력욕에 비추어보면 앞뒤가 딱 맞아떨어진다. 그의 셈법은 오로지 권력 쟁취이고, 모든 행위와 말이 권력을 잡는 데만 집중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절대절명의 권력욕 앞에 반성은 무색하고 왜곡, 실수, 사과 등은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으로만 보일 뿐이다.

윤석열은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왔다. 서울대학교 나온 이가 다 윤석열 같은 이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겠으나, 그 서울대가 다른 대학과 달리 갖는 배타적 입지가 일제의 잔재와 결합을 하면 비민주적 사고방식의 독선으로 흐를 위험성이 자못 크다. 그의 부친 윤기중은 박정희 정권의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인 1967년 일본 문부성 국비장학생 제1호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매일경제, 1993.2.8.) 그 덕분에 지금도 한국학술원에서 매달 180여만 원을 지급받고 있다. 윤석열이 후쿠시마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았다고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누구인가를 위해주고 싶은 심성의 무의식적 발로로 보아야 하겠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기 때문에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거나 고쳐지기가 어렵다.

한국 권위주의 잔재는 경성제대의 후신인 서울대학교가 가진 특권부터 타파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하겠다. 교육의 기회는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서울대학교를 다른 국립대학교와 같이 하거나, 아니면 다른 국립대학교를 서울대학교같이 끌어올려야 한다. 파리 제1 대학, 제2 대학 같이 국립 제1대학, 제2대학 같이 호수로 지칭할 수가 있겠다. 

상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앞가림조차 못하고 있는 이가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논하는 것이 자못 뻔뻔하고 몰염치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윤석열의 논리없는 무대포 권위주의적 사고와 뻔뻔함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거기에는 한국의 지난 내력이 그대고 묻어나기 때문이다. 억압으로 점철된 일제 식민지배와 독재정권의 권위주의, 그리고 교육에서도 공공연히 불평등이 존재한다. 서울대학교가 갖는 특권적 입지는 바로 권위주의 역사의 한 산물이다.

한국은 민주사회가 아니다. 무슨 기준인지는 모호하나, 여느 사람보다 더 잘났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폐쇄적 특권 집단을 형성한 귀족 사회이다. 더 잘난 이가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제도적으로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남다른 헌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한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귀족공화정으로 국호를 바꾸어야 한다. 경성제대의 후신 서울대학교에서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권위 의식에 가득한 무대포, 무논리, 미래의 윤석열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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