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까막눈'이라서, 군인들의 '정권찬탈'도 숙명이었다?
[ 고승은 기자 ] = 노태우 정부 국무총리를 지냈던 노재봉 전 총리가 30일 노태우씨 영결식에서 "(노태우 등 정규 육사 1기생들에게)한국 정치는 국방의식이 전혀 없는 난장판으로 인식됐다”며 “이것이 그들(50년대 입교한 육사 1기생)로 하여금 통치기능에 참여하는 계기였다”고 밝혔다. 이는 이들의 12.12 군사반란을 두둔하고, 인권을 마구잡이로 억압한 '군부독재' 정치를 두둔하는 취지의 발언인 셈이다.
노재봉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광장에서 열린 노태우씨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정규 육사 1기 졸업생이 바로 각하(노태우씨)와 그 동료들이었다. 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투철한 군인정신과 국방의식을 익혔을 뿐 아니라, 국민의 문맹률이 80%에 달하던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현대 문명을 경험하고 한국에 접목시킨 엘리트들이었다”고 강변했다.
노재봉 전 총리는 “이는(군인들의 정치참여는) 1기생 장교들의 숙명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는지도 모르겠다”며 “이 숙명을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 바로 ‘군 출신 대통령은 내가 마지막이야’라고 말씀한 배경이었다”고 강조했다.
노재봉 전 총리는 마치 '국민 문맹률이 80%'라는 취지로 말했는데, '문맹률 80%'는 이는 일제로부터의 해방 직후의 얘기다. 12.12 군사반란, 5.17 내란이 일어날 때인 1980년쯤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박정희 5.16 군사반란이 일어난 60년대 초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1960년 즈음 이미 문맹률이 한 자릿수%로 줄었다는 정부 자료도 있으며, 아무리 높아도 20%대였다고 나와 있다.
해방 직후 한반도 남쪽에 들어온 미군정은 ‘성인교육위원회’를 조직하고, 국문강습소를 설치 운영하는 등 3년만에 문맹률을 40%대 초반으로 떨어뜨렸다.
또 6.25 한국전쟁과 휴전협정 이후 정부는 '문맹퇴치 5개년 계획'을 수립했고, 이 결과 1958년까지 시민들의 문맹률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정부는 해당 사업의 결과 1945년 78%였던 비문해율이 사업종료 연도인 1958년에는 4.1%(12살 이상 전체 인구 1371만3873명, 비문해자 56만2982명)로 격감되었다고 발표했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문맹률은 여전히 기관마다 차이가 있는데, 10~30% 사이를 오간다. 그럼에도 해방 이후 문맹률이 80%에 육박하다가 이렇게 단시간 내에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이같이 배경에는 그동안 일제에 억눌려 있던 시민들의 '교육열'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개천에서 용 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열망이 싹튼 것이며, 실제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장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있다.
이같은 교육열 급증에는 초대 농림부 장관을 맡았던 죽산 조봉암 선생이 주도한 '농지 개혁'에서 비롯된 평등의식도 분명 적잖은 역할을 했다. 여기에 배우기 쉬운 한글의 우수성도 추가할 수 있다.
실제 박정희 5.16 군사반란이 일어난 60년대초에도 문맹률은 아무리 높아야 20~30%대였다. 그럼에도 노재봉 전 총리는 마치 시민들 80%가 '까막눈'이고 무지해서, 군인들이 정권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한 셈이다. 노재봉 전 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군사독재정권에서 중용된 인사들의 저열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힐 듯하다.
또 군사반란뿐 아니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그리고 집권 내내 벌어진 '인권말살' '간첩조작' '언론장악' '정경유착' '친인척 일가의 비리' 등을 두둔하고 정당화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되기까지 한다. 실제 일제강점기 사고를 그대로 물려받은 군사독재정권들은 한국인들의 우수한 창의성과 인권을 말살했고, 그 심각한 후유증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남아 있다.
노태우씨는 전두환씨 등과 함께 12.12 군사반란, 5.18 유혈진압, 천문학적인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지난 97년 징역 17년, 추징금 2688억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는 2년여간 옥살이를 하다가 김영삼-김대중 정부 교체기에 석방됐으나, 전직 대통령 예우는 박탈당한 상태로 20여년의 세월을 조용하게 보내오다가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
노태우씨는 자신이 저지른 과오와 관련, 아들인 노재헌 변호사를 통해 '간접 사과'를 하긴 했지만 끝내 공식적으로 '직접 사과'는 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전재산 29만원밖에 없다"면서 공개적으로 호화생활을 즐기고 '망언'까지 수시로 터뜨리는 전두환씨보다는 그나마 '덜 뻔뻔하게' 처신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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