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의 시사직격] 김정은 정권의 핵심은 '미국의 체제보장', 윤석열 정부는 뭐라도 해본 것이 있나?

한미클럽이 발행하는 외교․안보 전문 계간지 한미저널이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 사이 주고받은 친서 27통을 공개했다. 친서 내용은 주로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나친 관심이 불필요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일제히 ‘문재인 패싱’, ‘굴욕외교’, ‘북한 노리개’ 등의 표현을 쓰며 강한 비난에 나섰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유럽순방과 조문외교를 두고 야당에서 ‘외교참사’라는 비난에 맞대응하는 차원에서 나온 비판이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외교참사라며 비난하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남북대화의 성과를 “북에 조롱당한 것”이라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헛물킨 것 백일하에 드러난 ‘문빠’들의 망상”이라며 조롱했고, 윤상현 의원은 “한반도 운전자 아닌 김정은 대리운전자”라며 비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위에 1953년생 소나무 공동식수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위에 1953년생 소나무 공동식수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사진기자단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고받은 친서 내용을 보면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패스하고자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서운하고 기분이 나쁜 게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문제 해결에 가장 공들였다. 2017년 말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나돌던 극한 대립 상황을 지나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에 극적인 만남이 마련되면서 대화가 진전됐다. 그리고 이어진 4·27 판문점 정상회담과 두 번의 후속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이는 분단 이후 사상 처음 역사적인 북미대화로 연결되는 발판을 만든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와 기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의견차이로 결국 다시 한반도가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미대화 실패로 남북 간에 본질적 현상은 큰 진전이 없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자당의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서 화제를 돌리기에 아주 좋은 비난거리인 셈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매일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는 윤석열 대통령의 실수와 실언, 사건 사고를 수습하는 데에 한계가 왔던 터였다. 이런 시점에 밝혀진 김정은 친서와 ‘문재인 패싱’ 논란은 최고의 카드다. 역시 국민의힘은 비난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김정은의 ‘문재인 패싱’ 어떻게 볼 것인가. 정확히 말하면 ‘문재인 패싱’이 아니라 ‘대한민국 패싱’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정치·외교적 위치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모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왜 ‘대한민국 패싱’인가? 김정은이 무엇을 원하는지 답해보면 된다. 북한정권은 자신들의 체제 안정보장을 원한다. 이 사실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김정은의 요구를 누가 들어 줄 수 있는가? 오직 미국만이 들어줄 수 있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 지도자 패싱은 우리로서는 기분이 나쁘지만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패스’가 아니라 ‘대한민국 패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실제로 정전협정에 서명할 당사자에도 우리는 낄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정 보장 카드도 우리 손에는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문재인 패스’ 비난은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비난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문제의 근원’인 윤석열 대통령 리스크를 모면하기 위한 얄팍함에 지나지 않는다.

조경일 작가
조경일 작가

국민의힘은 김정은에게 ‘패싱’당하지 않을 그 어떤 정책도 대화도 제시하거나 추진되었던 적도 없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에서 만들었던 남북대화와 교류를 보수정권은 시도하거나 만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비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들이 뭐라도 해보고자 했던 이들을 비난하는 것밖에 안 된다. 한 마디로 비난할 자격도 없는 이들이 비난하는 셈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에 과하게 집착한 부분을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대한민국 패싱을 놓고 외교참사요, 굴욕외교요 비판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외교적 위치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없는 말들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패싱하지 않을 수 있는 카드를 지금의 여당이 과연 갖고 있는가? 위에서 밝혔지만, 오직 미국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문재인 패싱’ 비난은 얼마나 어림없는 소리인가. 북한은 처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패싱’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남북문제 해결의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결국 해결할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지 않는 중재자적 역할이라는 숙명을 갖고 있다. 결국 우리는 북미사이를 연결해주는 효과적인 중재자 역할을 앞으로도 해야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역할을 잘 한 것이다. 여당은 뭐라도 해보고 나서 비판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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