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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밀서 품고 파리로 향했던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의 스승 김란사
  • 안데레사 기자
  • 승인 2019.02.25 11:32
  • 수정 2019.02.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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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스승이자 "우리나라의 독립과 정부수립의 절반은 여성의 참여와 실천으로 이루어졌기에 여성독립운동가, 그 중에서도 유관순 열사의 스승인 김란사 열사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항일 독립운동가인 김란사를 아시나요?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김란사는 유관순 열사의 스승이며 한국 최초의 여성유학생이다. 신문물이 들어오는 관문 인천항에서 신학문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단행한 한국 여성의 표상이 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 여성 첫 번째 미국 유학생으로 김란사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결혼한 스물넷 나이에 이화학당을 찾아 1년간 공부했다. 이후 1896년 자비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에 앞서 서재필 유길준 김점동 등이 미국에 건너가 공부했다. 이들은 여러 상황에 의해 자의반타의반 유학길에 올랐다면 김란사는 달랐다. 순수하게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에 건너간 건 그가 처음이다. 당시 상황에서 여성이 자신의 의지로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는 것 자체로 그의 삶은 간단치 않다.

현재의 시장격인 인천 부윤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하상기의 아내로 인천과 인연을 맺은 김란사는 평양에서 태어나 두살때부터 서울에서 살았고, 인천항의 통상업무를 담당하는 감리서 최고책임자인 하상기와 결혼했다. 그가 신문학에 눈뜬 건 남편 영향이 컸다. 그는 남편의 성을 따 하란사로 불리기도 했다.

교육과 여성계몽 활동에 앞장섰던 김란사는 삶이 더 빛나는 이유는 유학 후 활동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한국의 여성을 위한 일에 바쳤다. 귀국 후 이화학당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선교사들과 학생들의 교량 역할을 했다. 유관순 열사도 김란사에게서 영어와 신학문을 배웠다.

김란사는 고종 황제의 통역도 맡았다. 파리 강화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라는 고종의 밀명을 받고 떠났으나 1919년 1월 독립지사들과 회합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 가 환영 만찬회에 참석했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엄 황귀비와도 가까이 지냈으며, 엄비가 '숙명'과 '진명' 여학교를 개교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일제 경찰이 보낸 자객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시립예술단 합동공연 중 두꺼비떼에 습격당하는 고종황제(제작발표회 사진). 사진 인천시 제공

김란사의 생애를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인천시립극단에서 강주희 배우(40대 김란사 역)맡아 창작음악극이 대규모 합동공연으로 준비되고 있다. 입체적으로 최원종 작가는 "주인공 김란사는 당시 세계를 만나는 창이었던 인천을 통해 접한 새로운 사상과 도전정신을 끌어안고 꺼진 등에 불을 밝힌 여성"이라며 "역사 속에 묻혀있던 영웅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기에 인천이 가장 적당한 장소"라고 말했다. 김란사 개인뿐 아니라 윤희순 열사, 여성 의열단, 해녀 의열단 등 일제강점기에 국가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여성독립운동가들도 작품 속에 주인공으로 녹아있다.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은 12년 만에 인천시립예술단의 교향악단, 합창단, 무용단, 극단 단원 230명이 모두 참여한 야심작 무거울 수 있는 독립운동의 소재를 아름다운 무대 연출과 이야기로 엮어낸 이 작품은 3.1절 당일부터 사흘 동안 공연된다.

안데레사 기자  sharp229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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