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잠도 안 오고 TV를 틀어보니 독립운동사의 한 부분 영화 ‘밀정’이 나와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여럿 나오지만, 그 중에도 돋보이는 인물은 다름 아닌 일본 경찰 이정출 역의 송강호였습니다. 비록 역사적 해석과 엇갈린다는 논란도 있으나, 의열단의 폭탄 수송 작전을 남몰래 도와주는 그에게서 보이는 내적 갈등 연기는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내용을 곱씹던 저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은 제 과거 모습이 친일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족해방을 위해 앞장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겠단 삼일절 날, 나는 독립유공자들의 힘든 삶을 보여주는 방송을 봤습니다. 매달 들어오는 20만원정도의 돈으로 근근하며 노숙자로 살아가는 그들은 누가 봐도 국가를 위해 한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인과응보를 기본삼아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는 게 당연한 이치라고 배워왔습니다. 불쌍한 제비다리 하나 고쳐준 흥부는 분명 대대손손 물려줄 보물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만든 위인과 후손들은 사람들의 관심은 잃고 가난만 얻었습니다.

영화의 이정출이 의열단원들에게 감명을 받아 독립운동에 일조하듯이, 영화 ‘도가니’의 명대사처럼, 우리가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힘쓰는 그림자.. 오늘도 독립유공자는 사회의 낮은 목소리로 나눕니다. 우리는 장애인, 저소득층, 비정규직 등 낮은 곳에 있는 소리에 무관심해왔고 이번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독립운동으로 부모를 잃은 자식들은 가난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무학(無學)은 후대에 지독하게 이어 집니다. 유공자들은 무언가를 딛고 일어나려 하지만 모래처럼 무너져버리는 기반은 처음부터가 공평하지 않습니다. 누가 박수 받아야 할 영광의 후손들을 거리로 내몰았을까?. 일등공신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읽고 있는 당신 우리가 삼일절 하면 떠올리는 건 겨우 유관순 열사, 독립운동, 태극기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것도 삼일절 이라고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이런저런 재방송을 보다보면 이 날은 덤으로 얻은 빨간날이 돼버린날뿐입니다. 그나마 시청률과 무관한 몇몇 프로그램이 저 구석에 있는 우리의 기억을 상기시킬 뿐입니다. 한 독립유공자의 손자는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러 온 관계자에게 10년 전에도 같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고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고 합니다. 그중에도 사람들의 무관심이 야속하다고.

삼일절이 한번 지나고 나면 여기저기서 비판여론들이 쏟아집니다.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형편없는 예우와 국가보훈처의 이해할 수 없는 깐깐함을 꼬집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선 지원금을 늘리겠다 하고 국가보훈처장이 독립유공자의 집에 방문한 사진도 하나씩 보입니다. 허나 그 때 뿐 그들은 더 깊은 무관심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다음 해 삼일절이 되기 전까지 어두운 조명 한번 받아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삼일절 날 무얼 했나. 젊은이들은 친구와 함께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 인터넷 기사에선 이날 번화가를 누비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삼일절을 ‘즐거운 휴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유공자들의 주머니도 비었지만 국민의 인식도 바닥난셈입니다.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고 돌아가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기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이제 누가 몸과 마음바쳐 충성을 다할 수 있을까요. 잊혀진 영웅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닙니다. 늦었지만 집 앞에 태극기는 안 걸더라도 컴퓨터 바탕화면에 태극기 하나 다운받아 달고 천천히 짚어봅시다. 당신은 삼일절에 무엇을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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