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문화 =최문봉 기자] 개성공단은 남북이 함께 협력하여 단순히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곳만이 아니라 ‘통일로 가는 길’을 닦는 우리 민족의 통일공사 시작점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은 외세의 개입으로 뜻하지 않게 남북으로 나뉘고 이념의 갈등이라는 커다란 혹을 나누어 단 체 서로 으르렁 거리며 아픔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개성공단은 분단된 상태로 수십 년을 따로 살아온 우리 민족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직접

살아가는 체험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직접 조국의 통일 청사진을 만들어 보고 검증해 볼 수 있는 통일 훈련장이었다.

남북 간 정상이나 고위급, 군부, 단체, 가족상봉 등의 일시적인 회담, 행사와는 다르게 평범한 남과 북의 민간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 첫 공동생활체가 바로 개성공단이었던 것이다.

그 곳에서는 통역 없이도 소통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고 서로의 눈빛을 보면서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말과 행동으로 진정을 느낄 수 있는 이념이 아닌 마음으로 하나의 가족처럼 생활하던 평화 정착촌이었다.

서로의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땀 흘리면서 서로간의 차이점들을 장점으로 승화 시킬 만큼 성숙한 곳이었다.

지나온 많은 시간들 속에서 국가가 체제 안정이라는 명분을 앞 세워 놓고 우리들 서로를 적대시 하도록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많은 노력들을 경주해 왔구나 하는 깨달음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 준 곳이기도 했다.

그 곳은 우리 민족의 통일이 시작되는 발원지였다.

남쪽은 대한민국 국호를 강조하기 위해서 북쪽을 ‘북한’이라 불러왔고, 북쪽은 그들의 조선을 강조해서 남쪽을 ‘남조선’이라 부르며 서로 다르다는 점을 주민들에게 강조하고 적대시하길 바라며 우월성을 강조해 왔지만 개성공단 공동체는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합의의 단어를 마련하여 서로에 대한 호칭을 북한, 남조선 대신 ‘북측’, ‘남측’이라 부르기로 하고, 또 서로 선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살벌하게 대치해 온 얼어붙은 동토를 따뜻한 평화의 땅 중립구역으로 바꾸어 놓았다.

분단과 대결, 적대시는 민초들의 뜻이 아닌 지배계층 세력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틀임을 우리는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민간인들이 모여서 함께 발전을 도모했던 통일의 전초기지 개성공단의 문은 닫히지 않았어야 옳았다.

지금도 평화의 땅에는 상록초가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고 그때의 생활을 경험한 남과 북의 사람들은 각지에서 문이 다시 열리는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은 외세의 휘둘림에 굴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상록초로 꼿꼿하게 독립적으로 자라나야 할 땅이다.

“법인장 선생! 어디에 계시든 건강 하시라요.” 라고 인사하며 눈물을 훔치던 북측 공장 경비선생에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차에 짐을 잔뜩 실은 체로 2016년 2월11일 저녁 그렇게 개성공장의 출입문을 나섰다. 남측에서는 안전을 위한 철수, 북측에서는 추방이라는 표현까지 썼지만 실재로 이별의 현장에 있던 우리들에게는 그저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3년이 흐른 지금 해빙 무드가 감돌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만나왔던 남쪽의 지인들에게 내가 경험했던 개성공단 북측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려 줄때면 어릴 적부터 쌓여진 적대적인 감정과 함께 잘못 알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통일이 왜 필요한가?

통일은 불필요하고 ‘북살남살(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살기)’하면 된다고 하며 북이 남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곳인 양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이산가족이 되어 평생 헤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는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헤어진 부모와 배우자, 형제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엄연히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들은 늑대도, 뿔 달린 괴물도 아니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 매년 6·25 전후해서는 학교에서 반공포스터를 그렸고 그럴 때면 북한 사람들은 늑대로 그려지거나 뿔 달린 괴물로 그려지곤 했었다. 빨간색을 가급적 많이 사용해서 그려야 칭찬을 받고 하던 기억이 난다. 빨갱이, 괴뢰군 같은 수식어는 늘 북한 사람들을 지칭 할 때면 단골로 쓰이던 단어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알 수가 없다.

누구든 서울이나 평양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곳에서 만났기에 그 곳에서 태어났고 나 역시 부모가 서울에서 만나셨기에 서울이 고향이 된 것 아닌가? 민초들은 이런 평범한 진리를 알기에 짧은 시간에 서로에 대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같은 민족인데 나는 서울에서 그들은 개성에서 태어났고 이제 함께 같은 말을 사용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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