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붓의 가치 실현
상단여백
HOME 사람들 이야기 사는 이야기 포토뉴스
광주, 소방관 딸과 사위 소방관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배금남 권사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는 ‘광주 소방관 가족’이란 자존감으로 화염현장의 생명을 지키는 소방직장과 가정생활로 보람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가족
  • 문해청 기자
  • 승인 2019.05.07 08:34
  • 수정 2019.05.07 08:34
  • 댓글 0
소방관 가족 / 사진 = 문해청 기자

[뉴스프리존,광주=문해청 기자] 광주 소방관 가족(소방위 기세익, 고은하, 소방경 김광일, 소방위 고경자, 소방장 박성준, 고은주)은 7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광산구 임곡동 배금남(77세)씨를 모시고 텃밭 유기농 야채로 삼겹살 장어 파티를 했다.

이날 소방관가족의 어머니 배금남씨는 임진왜란 당시 “소인에게 12척의 배가 남았다.”는 백전불굴 배설장군가문의 후손 성주 배씨로 광주 광산구 본량동에서 출생했다.

배금남씨는 21세에 임곡동으로 시집왔다. 친정과 시댁 어른이 장사하며 알게 되어 고재호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1남 4녀를 둔 배씨는 막내아들인 고재호씨를 지나치게 아끼던 시어머니 조씨 때문에 고달픈 시집살이를 했다.

큰 딸 고경하 시인을 낳고 몸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3일 만에 가을 수확기에 수렁논에서 벼 베기를 했다. 시어머니 조씨는 큰 딸 고씨에게 젖을 먹일 시간을 주지 않아 아기가 배가 고파서 많이 울었다. 그 당시 셋째 딸 소방위 고경자 시인이 태어 난 뒤 세 살 때 갑자기 의식을 잃어 아기를 살리려고 전통 굿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고재호씨의 형님 부인이 마을에 있는 복령교회를 다니면서 날마다 집으로 와서 기도를 해주었다. 그런 이유인지? 아기(소방위 고경자 시인)가 의식을 잃은 지 1주일쯤 되었을 때 ‘엄마 배고파’ 하고 의식이 되살아났다.

원래 친정이 가톨릭가문이었던 배금남씨는 결혼 후 마을에 성당이 없어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딸아이(소방위 고경자 시인)가 살아났던 이때부터 고재호씨의 형님 부인이 다니는 마을에 있는 복령교회를 다녔다. 현재 배씨는 교회 권사로 자식들을 위해 새벽 기도에서부터 깊은 밤까지 기도생활하며 살아간다.

현재 배 권사의 딸과 사위는 위험한 불길을 마다않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는 소방관으로 일을 하고 있다. 최근 강원도 산불현장에도 출동하여 자연보존과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앞장섰다.

이런 위험한 화염현장에서 타인의 생명을 위해 일하는 딸과 사위를 기억하며 광주소방관을 위하여 배 권사는 오롯이 건강하고 잘되기만을 바란다했다. 이에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니 감사함으로 주님께 자녀를 믿고 맡긴다며 말씀했다.

좌로부터 고은하 권사, 배금남 권사, 고경하 시인 / 사진 = 문해청 기자

다음은 딸과 사위의 생활동향이다. 배 권사의 큰 딸 고경하 시인은 대구에서 첫 째 사위 문해청 시인과 생활하고 있다. 고 시인은 작년 10월 13일부터 대구에서 청년기 17년 살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육사 시인의 생거터가 철거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작년 말 대구광역시는 문화정책간담회를 통하여 반월당주택조합이 추진하는 남산동재개발지역과 건설회사 서한과 연계하여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의 생거터 주변에 역사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구시민이 자발적으로 우리문화와 역사 및 이육사 시인께 관심과 애정을 갖고 시민대책위로 참여하였다. 또한 가칭, 이육사 대구기념사업회를 만들었고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상상홀에서 오는 28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있다.

배 권사의 둘 째 사위는 광주광산소방서 하남 119안전센터 소방위 기세익(58)씨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전후로 학창시절과 군대생활을 보냈다. 광산 임곡 월봉서원 빙월당으로 유명한 유림 고봉 기대성 선생 행주 기씨 집성촌 문중의 후손인 소방위 기세익씨는 1990년 2월 16일부터 소방직을 시작했다.

둘째 딸 고은하 권사는 배 권사의 영향으로 신실한 기도생활을 하며 교회 청년회에서 만난 소방관 기세익씨와 1993년 3월 1일 결혼해서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또한 배 권사의 딸 중 고은하 권사만 아니라 4명 중 3명이 소방관을 남편으로 맞아 살고 있다.

배 권사의 셋째 사위 소방경 김광일(54)씨는 광주소방안전본부 동부소방서 소속으로 1995년 11월 17일부터 소방직을 시작했다. 동 직장에서 간호사 출신 소방관 고경자씨와 연애를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결혼했다. 이때 소방대원에게 ‘비밀연애’가 들켜 소방경 김광일씨가 광주 송정 119안전센터로 발령을 받아 전직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셋째 딸 소방위 고경자씨는 둘째 사위 소방위 기세익씨의 권유로 소방관의 길에 들어섰다. 광주보건대 간호학과를 졸업 후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고경자 시인은 “광주에서 최초로 여성 구급대원을 모집한다.”는 정보를 알고 119긴급구급대원 공개채용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셋째 사위 소방경 김광일씨는 “부자(父子)가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아직 부녀(父女)가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딸아이가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사명감에 불타는 소방경의 소신을 밝혔다.

셋째 딸 소방위 고경자씨는 “소방관으로서 자긍심과 이타심을 갖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소방경 김광일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면서 “그 당시 결혼을 결심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하며 담담하게 밝혔다.

넷째 사위 소방장 박성준씨는 현재 광주소방안전본부 119특수구조단으로 근무하고 있다. 셋째 딸 간호사 출신 소방위 고경자씨가 광주동부소방서 동료였던 박성준(43)씨의 착실한 모습을 좋게 보아 여동생에게 적극 추천했다. 그 당시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며 여동생과 잘 어울릴 것 같다.”하며 소개한 넷째 딸 고은주씨를 만났다.

배금남 권사의 딸과 사위 / 사진 = 문해청 기자

넷째 사위 소방장 박성준씨는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집을 찾았을 때 소방위 고경자씨가 적극적 긍정적 발언으로 지원했다. 이후 고경자씨는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박성준씨가 여동생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 가족이 되어 너무 기쁘다고 담담한 소회를 밝혔다.

배 권사에게 아들은 외아들이다. 고영상씨는 통신사업(예일산업)을 하며 자주 고향 임곡을 찾아 와서 노모의 수발이 되어 주는 효자이다.

또한 배 권사의 딸 자랑을 하면 “셋째 딸은 얼굴도 보지 않고 데려 간다.”는 말이 있듯이 소방위 고경자씨는 119긴급구급대원 소방간호사로 근무하며 만학도로 2005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어서 2011년 시전문지 ‘시와 사람’으로 등단했고 현실의 소방관 근무를 통한 사실주의적 참여문학을 지향하는 시인이다. 소방관 고경자 시인에게 소방관은 ‘새로운 현실의 색다른 방식으로 시를 쓰고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고경자 시인의 첫 개인시집으로 2015년 “하이에나의 식사법”을 발간했고 이후 시산맥 제19차 감성기획시선 공모로 당선한 작품집 두 번째 개인시집으로 “고독한 뒷걸음”을 출판했다. 

소방간호사 출신 고경자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광주전남지회 회원으로 “시를 통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관심 없던 것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잘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시인이 된 것이다.”하며 “현대인은 바빠서 가정이나 직장에서 뒷걸음치는데 익숙하다. 그럼에도 자기 상실을 통해 미래의 전망을 노래하고 싶었다.”고 작품의 깊은 내면을 잔잔하게 밝혔다.

문해청 기자  jajudoli@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해청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