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고삐 죄기' 자한당 법안의 실체

[정현숙 기자]= '개점휴업' 상태에서 간신히 발동을 건 이번 임시국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입법전쟁이 한창이다. 민주당이 5대 민생입법과제를 발표한 가운데 자한당도 7대 중점추진법안으로 맞불을 놓았다.

사진: 발언하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모습 ⓒ 뉴스프리존

자한당이 6월 임시국회와 향후 정기국회에서 중점적으로 처리하겠다는 '7대 분야 중점추진법안 목록'을 지난 9일 뒤늦게 공개했다.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5일 여러 법안을 발표했지만 진정성 없는 이벤트라 생각한다"며 "한국당은 임시국회와 정기국회에서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고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7개 분야로 분류한 25개+3개 패키지 법안을 중점법안으로 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7대 중점추진법안 분야는 ▲국민부담 경감3법 ▲소득주도성장 폐기 3법 ▲기업경영 활성화법 ▲노동유연성 강화법 ▲국가재정 건전화법 ▲건강보험기금 정상화 관련법 ▲생명안전 뉴딜법으로, 25개 법안에 당론법안 3개를 더한 패키지 법안으로 이를 신속 처리하기 위해 처리하기 위해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이번 법안을 두고 나 원내대표는 "위기의 경제를 살리고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한 법안들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노동자들의 고삐를 틀어잡고 기업에게는 혜택을 몰아주는 내용을 가장 먼저 배치했다.

해당 법안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쪼개기 알바 방지하겠다는 취지를 명목으로 내세우고 서면 합의만 있으면 유급 휴일이 무급 휴일로 되고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고용주가 해고해도 형사처벌은 안된다는 헌법에 보장된 근로자들의 기본권마저 침해한 내용의 법안들이다.

반면 기업들에는 관대해 법인세와 상속세를 깎아주고 감세 법안을 통해 기업에 주는 혜택만 수두룩해 과연 이들이 내세우는 제대로 된 민생 법안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법안도 자한당이 중점 처리하겠다는 법안 중 하나로 추경호 의원이 지난 4월 대표 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 개정안'은 노동자가 파업 등 투쟁할 경우 현행법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대체 근로를 허용하도록 길을 터주는 내용이다.

아울러 노동자가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을 당해도 사업주가 받는 처벌의 수준을 현행보다 대폭 낮추도록 했다. 현행법에서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있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형사처벌은 "과도하다"며 이 규정을 아예 없애 버린 것이다.

헌법은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사측과 대등한 관계에서 노동조건을 협상할 수 있도록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추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이러한 권리들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반해 기업을 겨냥한 법안들의 내용은 확연히 달라진다. '기업 경영의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9개의 법안에는 감세를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어주는 내용이 대부분으로 근로자의 기본적 권리마저 없앤 취지와 180도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구체적인 법안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자한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이 지난 5월 패키지로 내놓은 법안들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추 의원이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기업 상속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최고세율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세율구간을 3개로 줄이고, 세율을 낮춰 상속세 부담을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인세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추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인상된 법인세율이 기업에게 부담이 된다며, 현행 4개인 과표구간을 2개로 줄이고 모든 기업의 법인세율을 인하해 주는 게 골자다.

추 의원은 기업에게 감세 혜택을 주면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해 경제 활력이 높아진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어디에서도 검증된 바 없다.

사실인즉 자한당이 중점 처리하겠다고 내세우는 법안들은 기업들의 로비를 받은 일방적 민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 원내대표 역시 지난번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이러한 법안들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그의 반노동적인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연설이었다는 혹평만 쏟아졌다.

제1야당 원내대표의 노동자에 대한 이런 동떨어진 현실 인식을 두고 '그저 노동자에게는 죽도록 일할 의무와 마음껏 해고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며 각계의 강력한 반발과 성토가 이어졌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 폐기 3법'에는 노사가 서면 합의 시 유급휴일을 무급으로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다.

이 법안은 자한당 청년 최고위원인 신보라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것으로, 주휴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해 짧은 시간(15시간 미만)만 일하는 노동자들을 여러 명 고용하는 이른바 '쪼개기 알바'를 줄이기 위한 취지라는 게 신 의원 측의 설명이다.

해당 법안을 두고 자한당은 '쪼개기 알바 방지법'이라고 허울만 좋은 이름을 붙였다. 이름만 보면 초단시간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주휴수당을 확보해주는 법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법안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내용은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주 15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에게 주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서는 "휴일을 무급으로 하되 근로자와의 서면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우선 적용하며, 무급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고용주 인건비 부담을 줄여 주자는 것이다.

더군다나 저임금 노동자가 대다수인 사업체는 노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고용자 측이 내미는 무급 휴일 합의서를 근로자가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결국은 저임금 근로자들의 임금이 줄어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한다.

한편 자한당이 이번에 내놓은 분야별 세부 법안으로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유지에 관한 법인 조세 특례제한법, 1세대 1주택자 재산세 감면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이 포함됐다. 25개 법안 외 당론법안으로 지정된 법안은 청년기본법, 가정폭력방지 관련법, 김태우 특검법, 남북협력기금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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