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과 길을 가다』 함께 逍遙(소요)

詩(시)는 되새김으로 그 맛이 인생의 신산과 같고, 反芻(반추)를 통하여 변화하는 시간 속에 스스로의 추이를 살펴 한번에 그 깨우침이 道(도)에 이르는 得(득)을 얻는 것임을 동서양 고전을 통하여 이미 건네진 경험이다. 

서정학 시인은 『반달과 길을 가다』의 자서를 통해 십오륙 년 만에 시집을 내게된 연원과 시간을 역순을 통해 비춰지는 시인의 詩業(시업)이 “가슴에 녹슨 채 박힌 못 이었다”라고 말한다. 

서정학 시인의 ‘언덕 너머’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에 대한 관점은 ‘무엇이었을까’라고 되물으며 필자는 시간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했다.

저물 무렵 길을 나서다./ 멀고도 가까운 길을 달과 함께가다./ 언젠가의 초승달, 엊그제의 보름달/ 오늘은 만달과 함께 가다. 절반의 쪽진 얼굴, 절반의 미소, 절반의 말(言)들/알 것 같기도 하고, 아는 것 같기도 하고/아는 사람 같기도 한 그와 같이 길을 가다./ 절반의 기쁨, 절반의 사랑, 절반의 희망/ 그러나 딱 둘로 나눌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여/ 둘로 가를 수 없는 희망과 절망이여/ 반절의 추억, 반절의 속삭임, 반절의 꿈이여/ 스러져가면서 삭아지면서 부르는 노래/ 나비의 날갯짓처럼 소리도 없이 다가와/ 어깨에 쌓이는 반절의 달빛과 함께가다./머리에 절어있는 반절의 어둠과 함께가다./ 들판마다 눈발처럼 쌓이는 달빛을 지우며/ 구름이 가다. 양떼 같은 구름이 가다./ 뭉게구름 같던 네가 가다. 내가 가다./ 달빛은 어둠을 지우고 구름은 달빛을 지우며 가다./ 반만큼의 절망, 반만큼의 사랑, 반만큼의 그리움/ 반달과 함께 내가 가다. 네가 가다./ 눈물로 빛나는 별까지 데리고 가다.( 반달과 길을 가다- 전문)

단순하게 서술하면 시간은 인간 마음의 잉여물일 뿐 현실에서 물리적 시간은 없는 것일 수 있다. 이는 관념론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의 개념이다. ‘반달과 길을 가다’를 살펴 보면 이미 시간 속에서 하나의 관념에 지나치지 않은 채 서정학 시인의 의식속에서만 존재하는 반을 내어놓지 않은 것은 자서에서 그가 말했듯이 ‘그길을 온전하게 걷지 못한 것은 용기가 없어서였다’라고 하거나 ‘마음이 여린 탓’이라고 말하며 들려주는 ‘내려놓음’에 관련한 詩人(시인)이 추구하는 스스로에게 들려줄 수 있는 명징함의 發顯(발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북서풍이 불자 성긴 눈발이 날렸다./ 황사의 장막을 헤치고 몰려온 시베리아의 한랭전선/ 가슴이 시릴 만큼 푸른 하늘에 새털구름 몇 쪽이 떴다./ 

늘 아픈 손과 어깨가 예감한 陰鬱(음울)한 계절,/ 아내는 대상포진으로 나는 신경통으로 낮게 내려온 한기,/ 

생로병사 중에서 늙음과 병듦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날들, 

베란다에서 동백과 만리향이 꽃봉오리를 준비하듯/ 그렇게 기쁨과 감사를 만들어가며 살아야 한다./ 사랑을 포기하는 날, 우리의 삶은 끝나는 것이니까. (寒冷前線(한랭전선)속에서 - 전문) 

실재론적 관점이라는 것은 근대 물리학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뉴턴에 의해 완전하게 정립된 것으로 본다면 현재를 사는 시인의 시속에서와 스스로에게는 이미 완전하게 존재하는 시간이며 퇴락해 가는 나무들처럼 그 자신의 존재감 속에서 독립된 매개체로 소멸시효를 드러내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산 그늘 같아서 물 속에 잠긴 인간의 의식같은 강물이 초월하듯이 스스로의 시간에 대한 속도를 측정할지 모르지만 시간의 흐름을 자의적으로 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 뜰에서 꽃이 지면/ 세상 어디에선가, 너의 정원에서 숲에서/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이곳을 떠나며 이별할 때/ 너는 저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피면 지는 것이 꽃이고/ 만나면 이별하는 것이 순리인 것을,/ 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피고 지고 피고 지고/무수하게 헤어지고 만나는 것임을/ 슬픔은 무엇이고/ 또한 기뻐함이 무슨 의미인가./ 홀로 빗소리에 잠들다/ 바람 따라 떠나는 길목에서.( 달랏을 떠나며- 전문)

위의 시는 상대론적 관점에서 삶의 생태적 환경에 ‘놓여남’이 형식화 되었다. 시인의 생각은 시간의 현상들의 계기 즉 ‘순서’에 지나지 않는 연속성을 갖는다. 결국 시간의 개념을 발전 시켜 나간 듯한 나와 너의 현상간의 관계가 명확하게 하나로 부합되고 있다. 

또한, 금번 시집의 관점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시간은 관념론에서는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고 실재론적 관점에 이르러서는 시간속에서 ‘자기 충만’에 이르러 스스로의 서정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즉 그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의식 속에서 조차도 자연의 생태적 기능의 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의식 없는 시간은 있을 수 없고 사상은 없어도 시간이 존재 할 수 있다는 시인의 확인은 삶 속에서 경험되어진 오롯한 ‘반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학 시인의 ‘흐르는 봄날’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時刻(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 또는 물리량으로서의 객관적으로 정해진 길을 만나게 된다. 

멀리서 보면 꽃 같지만 꽃이 아니듯/ 사는 것은 기쁨 같지만 기쁨만은 아니다./ 오늘은 첫눈이 내렸다./ 눈이 녹아 질펀한 길은 간다./ 그저 천한 잡풀 같지만 멀리서 보면 꽃 같듯/ 하루하루는 걱정이고 외로움이지만/ 지나고 나면 그리워지리라/ 다시 꽃잎 같은 눈발이 창에 부딪힌다./ 눈송이들은 녹아 눈물이 되고/ 유리 위에 길게 흔적을 남긴다./ 한때 꽃잎 흩날리던 길/ 한때 단풍으로 떠들썩 햇던 길을/ 홀로 걸어간다./ 억새처럼 억세게도 살아라./ 겨울바람에 흔들리더라도/ 춥고 외롭더라도 억세게 살아남아라./ 살아 있음은 축복이다/ 같이 흔들리면 슬픔도 슬픔만은 아니다./( 억새 – 전문) 

길이와 질량과 함께 물리단위를 구성하는 기본단위가 시속에 구조적으로 인력이 되어 삶의 지난한 전투력을 그려내고 있다. 아직 이른 희망을 두고서 뒤돌아 보는 시인의 삶의 안스러움이 ‘같이 흔들리면 슬픔도 슬픔만은 아니다’라며 경험되어진 크디큰 보편적 가르침을 나지막하게 들려준다.

버려지는 것은 너뿐만이 아니다./ 지난날의 사랑을 잃고/ 노숙하는 그대여/ 술 냄새가 번질 듯한 구겨진 얼굴로/ 모로 누워 잠든 잎새들./ 돌아가는 것은 너뿐만이 아니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표정을 숨긴 채/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 그대여./ 유효기간이 지난 그리움을 붙들고/ 바래어가는 나뭇잎들/ 그래 떠나라, 돌아가라.(젖은 낙엽에 대하여- 전문) 

여로 끝에 지쳐 벤취에 앉아 물끄러미 ‘젖은 낙엽에 대하여’를 기록한 시인의 시에서 대열반경 속의 사라나무에 기대인 부처의 슬픈 가르침 같은 시인의 숙명적 삶을 보여주고 있다. 

나 여기에 있다. 흰 꽃 붉은 꽃, 이름 모르는 낯선 나무들,/햇살은 눈부시고 소금기 묻어나는 異國(이국)의 바람은/늘어진 나무 잎새를 흔들리고 있다. 잘 있었니? 무수한 언덕과/들판을 건너, 생경한 마을을 지나 이곳에 닿았다

처음 만난 꽃나무에게 말을 걸고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는 /사물들과 교감한다. 일상의 틈새에 놓인 나무의자에 기대어/그림엽서에 안녕이라 적는다./잠시 후 여기를 떠나 다시 돌아갈 터이지만 시간의 완강한테두리 속에서 영원함은 없겠지만 말의 지시와 의미를 통해찰라 속에서의 지속을 꿈꾼다. 그래 이제 잠시 동행했던 사람들, 잠깐 말을 나누었던 사물들,나의 시간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들, 바다와도 이별해야 한다.안녕! 어쩌면 이 生(생)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사물들아...( 길위에 쓰는 편지- 전문) 

시간의 분할은 사회가 분화됨에 따라 그 실체의 구체적 모습을 가지게 되는데 서정학 시인의 시의 맛은 되새길수록 반추되고 되짚어 지는 인생이 묻어난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감사와 용서의 뜻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말없이 웃어준 아내와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은 생각지 않고

늘 안개 밖의 나라를 꿈꾸었다.

나팔꽃처럼 등나무처럼

늘 위만 바라보며 욕망의 덩굴을 뻗어올리려 했다.

안개 끝나는 세상도 이 지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몇 년째 계속되는 뼈와 신경들의 통증,

가끔 쇠못처럼 박히는 위의 고통도 이제는 용서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낮아지고 낮아져 공터에서 피어나는

흰 민들레 노란 민들레와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오오래 참회한다, 이 늦은 봄날 (참회 – 전문) 

그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참회’라는 시속에 보여지는 모습은 가족과의 화해 스스로의 병증에 관련한 화해, 그리고 자연 속에 귀의하는 절박한 마음의 화해와 참회다. 다시말해 서정학 시인이 만든 신화(詩)가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신화로 일상이 바로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모티브가 된다는 점이다. 이는 실체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詩(시)는 신의 행위와 인간의 행위를 구분짓고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고 찰라에 이루어져 파괴되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단선적인 시간의 개념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 모든 것을 많이 지닌 좋은 시집한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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