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기자=]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8년이 됐다. 그동안에 일본 정부는 방사성 물질을 씻어내는 제염과 복구 작업을 통해서 후쿠시마 상당 지역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도쿄올림픽도 안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JTBC

19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취재진이 직접 가본 현장은 달랐다. 일본 정부가 더이상 방사능 피난 지역이 아니라고 말해도 주민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고, 곳곳에는 방사능에 오염된 흙들이 잔뜩 쌓여 있다.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는 재난이 아직도 분명히 현재 진행형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마트 등에서는 후쿠시마 현에서 생산된 먹거리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있었다. 매장 전체가 후쿠시마산 식품들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 후쿠시마에서 재배한 쌀과 말고기를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같은 날 오후, 신칸센을 타고 1시간 반만에 도착한 후쿠시마역 안에는 올림픽 홍보 문구가 가득하다. 그러나 역을 벗어나면 방사능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다. 일명 '후레콘 백'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당시 오염된 토양을 처리하지 못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둔 것이다. 주택가 사이를 달리는 도로 양 옆에는 아예 검은 산을 이뤘다. 오염토 위로 풀과 나무가 자라나기도 한다. 바로 옆에는 벼농사가 한창이다.

[와타나베 칸이치/나미에 농민 : 제염이라고 해도 오염 성분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제염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요?) 물론 불안하죠.]

일본 정부는 방사능 위험이 사라졌다며 피난 지시 지역으로 선포했던 곳을 해제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해제 기준으로 삼는 방사선량은 연간 20밀리시버트. 국제원자력기구 등 국제기구가 정한 안전기준인 1밀리시버트의 20배에 달한다.

원전에서 차로 20여분 거리 떨어진 곳에 후쿠시마현 나미에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2011년 원전 폭발이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9km 떨어진 곳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이곳의 방사성 물질이 대부분 제거됐다며 2017년 피난 지시를 해제했지만 정작 돌아온 주민은 6%에 불과하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기준치가 넘는 방사능 수치가 검출되고 있다. 한때 식당으로 쓰였던 이 가게는 쓰레기만 가득한 채 텅 비어있다. 원전 인근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다. 원전 폭발 피해가 컸던 이타테 마을은 주민 복귀율이 24%, 원전이 위치했던 오쿠마는 0.6%에 불과하다.

[미츠다 칸나/지구의 벗 일본 사무국장 : 올림픽의 그림자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를 숨기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제염 작업이 덜 된 매우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면적이 약 2년 전 피난 지시가 해제된 곳이다. 피난 지시를 해제했다는 것이 방사능 우려로 피난을 간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서 살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실제 돌아온 주민은 약 1000여 명 전체 주민의 6%에 불과하다.

이곳 나미에 마을 뿐만이 아니라 주변 마을 모두 상황은 비슷하다. 취재진이 이곳 나미에 마을이 고향이고 현재는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을 만났다.

[기무라 히로시 : 피난하고 8년이 지났으니까요. 돌아온다고 해도 전과 같은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들 돌아오지 못하는 거예요.]

귀환율이 6%라고 했는데, 돌아온 사람들도 제대로 된 생활이 힘들다. 사실 원전에서 가까운 마을일수록 현재 폐로 작업이 진행중인 원전에서 일하는 직원들이거나 또 관공서 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돌아온 주민들도 가설 주택에 살다가 정부가 피난 지시를 해제하면서 지원금을 끊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케이스들도 많다. 울며 겨자먹기로 왔다는 내용으로 나미에 마을의 방사선 수치는 기준치를 훌쩍 넘는 0.32마이크로시버트가 나왔다.

이곳은 일본 정부가 안전하다며 피난 지시를 해제한 곳이다. 방호복을 갖춰입은 취재진이 이곳에 오기 전에 방사능 전문업체로부터도 조언을 구했다. 원전 바로 근처나 산속처럼 방사능 수치가 매우 높게 나오는 지역을 방문할 때는 보호장구가 필요하지만 이곳처럼 피난 지시가 해제된 곳에 취재를 위해서 단 몇 시간 머무는 경우는 큰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결코 안전하다는 건 아니다.

후쿠시마 인근에서는 야구 경기처럼 일부 올림픽 경기도 예정돼 있다. 거기에 대한 안전성이 확보됐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나 현지 언론에서는 후쿠시마의 발전상이나 회복상을 매우 자주 그리고 강도 있게 보도를 하고 있다.

그만큼 도쿄올림픽이나 후쿠시마 부흥프로젝트. 두 가지를 모두 성공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 그런데 후쿠시마에서 일부 올림픽 경기는 물론 성화 봉송 루트까지 이곳에 모두 포함이 되면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지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올림픽 성공만 외치는 일본 정부..후쿠시마 이용만 할 뿐"

후쿠시마 방사능에 대한 우려는 취재진과 같은 외부인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후쿠시마에서 만난 상당수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정부가 올림픽을 위해서 후쿠시마를 이용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후쿠시마 주민 고노스 씨가 어린이 식당을 운영한 건 5년 전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난을 갔다 돌아온 주민들의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방사능 측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후쿠시마산 수산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고노스 마리카/후쿠시마 주민 : 아직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을 방치해 놓고 해외에 '괜찮다'고 말하는 건…전 굉장히 배신당한 기분입니다. 이제 와서 '부흥 올림픽'이라고 후쿠시마에서 야구를 한다 하고… 정부가 형편에 맞춰 후쿠시마를 이용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재해나 쓰나미나 원전에 대해선 (수업이) 거의 없고 부흥만 외치는 거예요. 악성루머가 있다. 후쿠시마는 이제 괜찮다.]

JTBC

일본 정부가 올림픽을 위해 후쿠시마 피해를 외면하면서 후쿠시마 학교에서 원전 사고에 대한 교육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후쿠시마에서 만난 학생들도 원전 사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다마이 나오/후쿠시마 학생 : (원전 사고에 대해)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르쳐준 건 없었어요.]

JTBC

후쿠시마 원전 인근 이타테 마을에 살았던 안자이 도루 씨. 원전 사고 이후 가설 주택에 머물렀던 그는 현재 후쿠시마 북부 다테시에 거주하고 있다.

[안자이 도루/후쿠시마 주민 :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주민들이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거든요. 토양 오염이 심각해요. 올림픽을 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주민들 의견은 듣지도 않고 무리해서 돌려보내고 있는 거예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일본 정부의 권유도 올림픽 때문이라고 말한다.

방사성 오염토 검은 봉지 수백개.. 터져나온 '방사성 흙' 몸 부비는 소들

방사성 오염토를 담아 둔 검은 봉지들이 농가 마을에 많이 나와 있다. 이 비닐 봉지에는 방사성 물질 차단 기능이 없어 당연히 철저히 관리되어야 하지만 과연 이것이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가'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광경이 보였다.

방목지를 거니는 검은 소들 옆에 '방사성 오염토'를 담아 놓은 커다란 검은 봉지 수백 개가 쌓여있다. 검은 소 한 마리가 찢어진 봉지에서 흘러나온 오염토를 앞 발로 파헤치고 있다. 흙을 머리에 뒤집어 쓴 소, 봉지에 걸린 뿔을 빼려 힘을 쓰는 소도 보였다.

후쿠시마 곳곳에 검은 봉지로 쌓여 있는 '방사성 오염토'와 검은 봉지를 잡아 뜯고 있는 검은소. JTBC

후쿠시마 원전에서 14km, 도쿄올림픽 야구 경기가 열리는 아즈마 경기장에서는 70km 떨어진 나미에 지역으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직후 일본 정부의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 목장 관계자들이 살처분을 거부하고 키우면서 소는 식용이 아닌,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가 오염 제거 작업을 하겠다며 긁어 모은 방사성 오염토에 또 다시 노출 되었다.

[정주하/백제예술대 교수 : 소 옆에다가, 그걸 먹으면 죽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걔네들에게 오픈 시킨다는 건 충격적이죠. 비닐을 덮어 놓기도 하고, 안 덮어 놓기도 하고… 비나 눈이 왔을 경우에 무방비 상태인 건 분명하죠.]

부실한 관리는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고 오염토 봉지는 후쿠시마 곳곳 13만 7000곳에 쌓여 있으며 모아둔 오염토는 1650만㎥ 된다. 오염토 봉지를 보관할 때는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땅에 깔개를 깔고, 오염토 봉지 위에는 모래 주머니와 덮개를 올리는 식이다. 하지만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이 때문에 오염이 확산될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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