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몰리에르가 있다.

'스카팽' 커튼콜 사진_몰리에르(성원), 실베스트르(박경주),  레앙드르(임준식), 제르비네뜨(박가령), 네린느(이수미), 옥따브(이호철), 이아상뜨(강해진), 아르강뜨(양서빈), 스카팽(이중현), 제롱뜨(김한) | '스카팽'의 무대는 17세기 수레무대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되, 색감에 있어서는 하나의 톤으로 미니멀하게 디자인하여 모던함과 함께 각각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컬러풀한 의상이 어우러질 수 있게 하였다(무대감독-정승호)  | 해설 역할을 맡은 몰리에르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은 인물의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하얗게 칠하고 분장을 하고 있다 /ⓒ권애진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프랑스 고전 희극의 출발점이자 완성, 세기를 넘어 소통하는 가장 희대한 천재 극작가 몰리에르의 명작, 짓궂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의 하인 ‘스카팽’과 어리숙한 주변 인물들을 통해 지배계층의 탐욕과 편견을 조롱하는 작품 <스카팽>이 한국 신체극의 대가 임도완의 각색/연출을 거쳐 국립극단만의 매력으로 다시 태어났다. 연출 특유의 독특한 움직임과 연출력이 몰리에르의 대표 희극과 유쾌한 시너지를 발휘한 연극 <스카팽>은 지난 4일부터 이번 달 9월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300년을 훨씬 넘는 시간을 초월해 풍성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막이 오르면 작가 몰리에르가 무대 위에 등장한다. 몰리에르는 자신과 작품 그리고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다 같이 노래를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재벌가인 아르강뜨와 제롱뜨는 자식들의 정략결혼을 약속하고 영행을 떠난다. 그 사이 둘의 자식들은 각자 신분도 모르는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다. 부모의 정략결혼 약속을 알게 된 두 자식들은 제롱뜨의 하인 스카팽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렇게 젊은이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약간의 사심을 담은 스카팽의 계략이 시작된다.

'스카팽' 공연사진_옥따브(이호철), 실베스트르(박경주), 스카팽(이중현) /ⓒ나승열(제공=국립극단)
'스카팽' 공연사진_레앙드르(임준식), 실베스트르(박경주), 옥따브(이호철), 아르강뜨(양서빈), 제롱뜨(김한), 네린느(이수미), 이아상뜨(강해진), 제르비네뜨(박가령) /ⓒ나승열(제공=국립극단)
'스카팽' 공연사진_레앙드르(임준식), 제르비네뜨(박가령), 까를르(성원), 네린느(이수미), 이아상뜨(강해진), 옥따브(이호철), 실베스트르(박경주), 아르강뜨(양서빈) , 스카팽(이중현), 제롱뜨(김한) /ⓒ나승열(제공=국립극단)

연극 <스카팽>의 원작 ‘스카팽의 간계’ 속 ‘스카팽’ 캐릭터는 즉흥가면극이라고도 불리는 이탈리아 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발달한 가벼운 희극으로 전문성, 즉흥성, 그리고 대중성이 주요한 특징이다. 프랑스를 포함한 인근 유럽 국가들의 연극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기존의 캐릭터를 토대로 배우의 즉흥적인 재간에 의존하는 이 장르는 익숙하지 않은 가면을 사용하기도 하고, 노래나 춤 등의 요소가 중시됨에 따라 일반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전형성을 지니고 있어 통상적으로는 다소 정해진 가면과 의상을 활용한다. -출처 2000 연극과 인간,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에 등장하는 익살스런 하인 ‘스카피노’에서 유래한 캐릭터로 프랑스에서는 아직까지 해결사의 대명사로 사용이 될 정도로 세기를 넘어 사랑받고 있다. 

'스카팽' 커튼콜 사진_아르강뜨(양서빈), 레앙드르(임준식) 제르비네뜨(박가령), 몰리에르(성원), 네린느(이수미), 제롱뜨(김한), 옥따브(이호철), 이아상뜨(강해진), 실베스트르(박경주), 스카팽(이중현) | 장막이 내려오는 순간까지 익살스러움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들 /ⓒ권애진

2019년 국립극단의 <스카팽>은 캐릭터 뿐 아니라 원작 속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다양한 특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에 따라 연극 <스카팽>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각자 독특한 움직임을 부여받아 고유의 색을 입는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가면을 쓴 인물이 무대에 등장할 뿐 아니라 가면을 쓰지 않더라도 마치 가면을 쓴 듯 각자의 특성이 살아있는 캐릭터들을 구현하며 더욱 생동감 있게 무대를 채우고 있다.

'스카팽' 무대사진 | 무대 오른편에 위치한 책상 그리고 책상 위 가면 /ⓒ권애진
'스카팽' 공연사진_몰리에르(성원) | 공연의 시작에 등장하여 공연안내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코믹하게 늘어놓기 시작한다 |해설이 있는 /ⓒ나승열(제공=국립극단)

극은 몰리에르 자신의 이야기와 공연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책상에 앉아 희곡과 연출에 대해 고민하는 듯 한 몰리에르는 독특한 움직임과 장황하지만 운율 있는 빠른 속도의 대사로 자신의 우울하고 행복하지는 못했던 인생사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무겁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중간 중간 몰리에르가 등장함으로 작품과 관객 사이에 작은 시간과 리듬이 들어오며 관객들은 유쾌함을 느낀다. 단순한 웃음을 넘어 인간 본성을 본질적으로 파헤쳐 당대의 문제를 직시하고 신랄한 풍자를 통해 권위주의에 냉소를 던진 몰리에르이기에 계급의 전복을 통해 지배계급의 편견과 탐욕을 조롱하는 전형적인 통속극의 형식임에도 관객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던져준다. 임도완 연출은 “사람이 웃는 이유는 무대 위에서 실수하며 자신의 못난 점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극을 보는 자기보다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본인도 무대 위 인물과 수평공간에 같이 있는, 못난 구석이 있는 인간이다”라며 작품 속 웃음의 근원인 ‘부조리’에 대해 평등하지 않은 세상의 부조리함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것이라 전했다.

'스카팽'을 독특한 색으로 연출한 임도완 연출 /(출처=서울예술대학교)

임도완 연출은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 인물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몰리에르 캐릭터는 현란한 말솜씨로 관객을 17세기 코메디아 무대로 이끌고 그간 짓궂게만 그려져 왔던 스카팽은 더욱 입체적인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이들 뿐 아니라 세기를 뛰어 넘어 무대에 오른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때로는 익숙하고, 때로는 낯설기에 더 반가운 매력으로 일상에 지친 관객들에게 웃음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선사하고 있다.

'스카팽' 커튼콜 사진_몰리에르 역 성원 배우 |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몰리에르 캐릭터는 현대적으로 풀어 세대를 아울러 같이 호흡하고 웃게 만들고 있다 /ⓒ권애진
'스카팽' 커튼콜 사진_스카팽 역 이중현 배우 | 고전에서 가져온 코메디아 델라르테 양식 속에서 전형적이지 않는 '댄디함'을 보여주고 있는 스카팽 캐릭터는  /ⓒ권애진
'스카팽' 커튼콜 사진_실베스트르 역 박경주 배우 | 아르강뜨의 하인 역 실베스트르를 위해 현재 시대의 어떤 계층을 대변하는지 등 여러 고민을 통해 거부감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권애진
'스카팽' 커튼콜 사진_이아상뜨 역 강해진 배우, 옥따브 역 이호철 배우 | 출신 가문을 모르는 가난한 처녀 이아상트와 비밀결혼을 저지른 사랑에 빠진 아르강뜨의 아들 옥따브 /ⓒ권애진
'스카팽' 커튼콜 사진_제르비네뜨 역 박가령 배우, 레앙드르 역 임준식 배우 | 옥따브와 마찬가지로 돈도 신분도 없는 집시여인 제르비네뜨와 사랑에 빠진 제롱뜨의 아들 레앙드르  /ⓒ권애진
'스카팽' 커튼콜 사진_이아상뜨의 유모 네린느 역 이수미 배우 /ⓒ권애진
'스카팽' 커튼콜 사진_아르강뜨 역 양서빈 배우 | 이미 주위에 구두쇠라고 정평이 난 아르강뜨의 역항은 원작의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캐릭터의 변화를 가져왔다 /ⓒ권애진
'스카팽' 커튼콜 사진_제롱뜨 역 김한 배우 | 옹고집이고 인색한 부친 제롱뜨 캐릭터 /ⓒ권애진
'스카팽' 커튼콜 사진_다양한 악기의 연주로 극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김요찬 음악감독/연주자 /ⓒ권애진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과 노래가 더해져 원작을 뛰어넘는 다채로운 재미가 더해진 작품 <스카팽>은 임도완 연출과 오랜 호흡을 맞춰온 배우 이중현과 성원이 각각 스카팽, 몰리에르로 분하고, 배우 박경주, 이수미 등 8명의 국립극단 시즌단원들이 함께 하며 ‘프랑스 코미디는 한국 정서와 맞지 않다’라는 인식을 깨 주고 있다. 

'스카팽' 포스터 /(제공=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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