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은 조선 말기 순종황제 어차로 채택됐을 정도로 한국과 인연이 깊은 브랜드다. 그러나 100여년 세월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르다. 특히 프리미엄 중형 크로스오버를 표방하는 SRX의 존재를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SRX는 5m에 육박하는 길이와 2t을 훌쩍 넘는 무게 등 당당한 체구를 갖춘 SUV다. V6 3.0ℓ 가솔린 엔진과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의 조합은 묵직하면서도 여유 있게 차를 움직인다. CTS 등 세단 라인업과 또 다른 개성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캐딜락 SRX 프리미엄을 시승했다.

[연합통신넷= 이진용기자]  제원표 상 크기는 길이 4,850㎜, 너비 1,910㎜, 높이 1,665㎜, 휠베이스 2,807㎜다. 수치만 놓고 보면 현대차 싼타페나 기아차 스포티지R 등 중형 SUV보다 크고 쏘렌토보다 작다. SRX를 중형으로 분류하는 캐딜락의 선택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체감되는 크기는 숫자로 표현된 것 이상이다.

강렬한 인상의 전면부는 차를 커보이게 하는 일등 공신이다. 거의 수평으로 흐르다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 보닛 선은 수직으로 서 있는 헤드램프와 함께 두터운 전면 디자인을 완성한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다소 과장됐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다. 그릴 한가운데 자리잡은 캐딜락 로고 역시 화려함을 자랑한다. 사람 턱에 해당하는 하단 범퍼도 두텁고 화려하긴 마찬가지다. 공기흡입구(인테이크홀) 역시 크롬 소재로 아낌없이 마무리했고, 범퍼 아래쪽에는 고무와 플라스틱 소재로 하부를 보호하면서 볼륨감을 강조했다.

측면 역시 국산 혹은 유럽산 SUV에서 보던 것과 다르다. 헤비급 보디빌더를 연상케 한다. 심사 직전 펌핑을 마치고 잔뜩 부풀어 오른 근육을 자랑하는 듯한 볼륨감이다. 높이가 국산 중형 SUV보다 낮지만 휠하우스와 차 문이 옆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창문이 작아 보인다. 위쪽 선은 문 손잡이를 지나 리어램프까지 이어지면서 차가 더 크게 보이도록 한다. 넉넉한 크기의 20인치 7스포크 휠과의 비례감도 좋다.

후면 역시 '캐딜락스러움'이 잔뜩 묻어난다. 수직으로 날카롭게 세워놓은 테일램프는 차폭이 넓어보이는 효과와 함께 첨단 이미지를 강조한다. 최신 LED 기술을 적용, 반응이 빠르고 수명이 10배 이상 길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실내는 고급스럽다. 가죽으로 감싼 센터페시아는 수작업을 거쳐 스티칭으로 마감했다. 크롬 색상의 장식이 스티어링 휠과 인포테인먼트 기기 주변, 센터 콘솔 등을 둘러싸며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준다. 부분 적용한 우드 트림은 가구와 악기 등의 소재로 쓰이는 사펠리 원목이다. 이외 플라스틱 마감재도 유광 검정을 채택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손과 등, 엉덩이에 닿는 감촉이 만족스럽다.

최근 캐딜락은 촉각을 활용한 다양한 편의·안전 품목을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8인치 디스플레이 화면을 비롯해 조작 버튼은 햅틱 기능을 지원한다. 손을 가져다대면 '툭툭'하는 반응이 느껴진다. 차선이탈 경고장치나 전방추돌 경보 시스템 등 역시 시트의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신호를 보낸다. 초기엔 반응 속도가 더뎌 문제가 됐지만 2~3년이 지나면서 많이 개선됐다는 느낌이다. 익숙하지 않다면 다소 어색할 수 있지만 각종 기능의 작동 유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뒷좌석 탑승객을 위한 배려도 충분하다. 넓은 무릎 공간, 적당한 쿠션의 뒷좌석 시트는 장시간 여행에도 성인 세 명이 편안히 몸을 실을 수 있다. 또 앞좌석 헤드레스트는 접이식 8인치 듀얼 스크린이 장착됐다. 리모트 컨트롤러와 무선 헤드폰도 제공된다. 연결 단자를 통해 각기 다른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블루레이를 비롯해 별도의 AUX 단자, USB포트, 메모리카드 등을 지원한다.

넉넉한 수납공간도 강점이다. 뒷좌석을 완전히 접으면 1,732ℓ까지 짐을 실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 뒤쪽에 휴대기기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숨은 공간이 있는 점, 컵홀더 깊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받침대를 둔 점 등이 눈에 띈다.

▲성능

V6 3.0 VVT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하이드라매틱 자동 6단 변속기를 결합했다. 최고출력 265마력, 최대토크 30.8㎏·m의 성능을 낸다. 공차 중량은 2,075㎏에 달하지만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다. 출발 시 민첩함은 떨어지지만 이내 여유롭게 속도를 붙여나간다. 가속 페달을 급하게 밟으면 카랑카랑한 엔진음이 들려오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시승 당시 전날 눈이 오고 난 뒤 추위가 이어지면서 도로 곳곳에 살얼음이 껴 있었다. 차체가 크고 무겁다보니 아무래도 속도를 올리기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곧 움직임에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상시 4륜구동 시스템 덕분이다. 도로를 밟고 가는 각 바퀴마다 힘이 충분히 전달되면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겉에서 보이는 비례감에 비해 시야 확보가 나쁘지 않다. 사각지대경고장치는 사이드미러에 신호를 띄워 운전자 주의를 환기시킨다. 다소 어두운 지하주차장에서도 후방카메라가 비교적 선명하게 주변 상황을 화면에 비춘다. 큰 차가 부담스러운 사람도 SRX는 쉽게 적응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캐딜락의 다른 차와 마찬가지로 브레이크는 다소 부드럽다. 날선 느낌보다 차분하게 속도를 줄여준다. 크고 무거울수록 속도를 줄이는 실력도 중요하다. 제동력 자체에 큰 불만은 없다.

빡빡한 회전 구간을 통과하거나 급하게 잡아 돌렸을 때 휘청거리는 느낌이 완전히 배제되진 않는다. 각종 전자장치 개입도 비교적 적극적이다. 날 것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조용하고 편안한 차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제격이다. 차음도 잘 돼있어 세단과 유사한 수준의 정숙성을 유지한다. 앞좌석은 물론 뒷좌석의 쿠션과 등받이 기울기가 적당해 만족스러운 승차감을 선사한다.

연료효율은 조금 아쉽다. 제원표상 SRX의 효율은 복합 ℓ당 8.1㎞(도심 6.7㎞, 고속도로 9.3㎞). 막히는 출퇴근길과 뻥 뚫린 자동차전용도로를 주행 시간 기준으로 대략 40:60 비율로 차를 몰았다. 트립컴퓨터는 100㎞ 주행 시 17~18ℓ가 소모된다고 표시됐다. 대략 ℓ당 5.5~5.8㎞ 수준이었다.

▲총평

캐딜락의 디자인 방향성은 '아트 & 사이언스(art & science)',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다. 단순한 파격을 넘어 미래지향적인, 마치 모터쇼에서 컨셉트카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캐딜락이다. 일반 양산차 브랜드는 물론 여타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디자인과 신기술을 차에 담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확실히 캐딜락은 어디에서든 눈에 띈다. 브랜드 역사가 112년이나 됐지만 차의 모습은 어떤 브랜드보다 실험적이다.

SRX야말로 최근 캐딜락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차가 아닐까. 파격적인 디자인과 첨단 편의·안전 품목, 고급스러운 실내와 편안한 승차감은 여느 유럽차에서 만나보기 힘든 독창적인 멋을 풍긴다. 주위 시선을 즐길 준비가 돼 있다면, 그리고 조금은 부담스러운 유류비를 감당할 수 있다면 SRX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SRX 프리미엄의 가격은 7,1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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