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 김덕권, 원불교 문인회회장인품의 향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가고, 말의 향기는 백리를 갑니다. 그러나 베품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인품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향기만큼 오래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는 무슨 향기가 날까요? 어떤 향기가 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향수를 뿌리는 것이 아닌지요? 그러나 인공적인 향수는 한시적인 향기일 뿐 지속적일 순 없습니다. 사람의 진정한 향기는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장미나무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가시나무’라 부르지 않고 ‘장미’라고 부릅니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인품의 향기를 머금은 사람은 저마다의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수많은 꽃들이 제 각기 다른 향기로 자기의 존재를 알립니다. 그래서 벌과 나비들을 모여들지요. 사람들도 이와 같습니다. 저마다의 향기로 사람들과 더불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향기와 꽃의 향기는 같은 의미의 향기가 아닙니다. 꽃의 향기는 냄새로 느낄 수 있지만 사람의 향기는 마음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향기는 인품, 인격, 성품 또는 인간성 등이 좌우합니다.
 

정유년(丁酉年) 새해 들어 굳이 사람의 향기를 들먹이는 것은, 해가 갈수록 향기 나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세태가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특검(特檢)에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르쇠’이고 ‘대통령 탓’이라고 소리를 높입니다. 정말 그들에게서는 인품의 향기가 아니라 구정물냄새가 납니다. 그런 인간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이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었으니 나라가 이 꼴로 추락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닌지요?
 

인품의 향기는 양심이라는 바탕 위에 사람으로서의 착한 본성을 잃지 않는데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자기 분수를 지키며,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서 생겨나지요.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이 나라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고, 부정부패는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양심을 저버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악취 나는 사람들의 설 자리는 없어질 것입니다.
 

《장자(莊子)》<응제학편>을 보면 ‘조탁복박(雕琢復朴)’이란 말이 있습니다. 즉 “화려한 꾸밈을 깎아내 순박함으로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이 말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미거나 수식(修飾)하지 말고 본래의 내 모습을 소중히 여기며 참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교훈을 안겨주고 있는 고전(古典)으로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예덕선생 전’이 있습니다.〈연암집〉권8 별집(別集)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는 소설이지요. 이 소설에서 선귤자는 제자 각목에게 “이익을 따지거나 아첨에 의해 맺어지는 벗은 진정한 벗이 아니다. 벗을 사귈 때는 진실한 마음으로 사귀고 도의(道義)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인격을 갖추지 못하고 예법만을 중시하는 양반들보다 똥을 치우면서 가난하게 사는 엄행수가 더 깨끗하고 향기롭다는 교훈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자기를 과시하려고 하거나 자신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타인의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기 위해 끝없이 집착하는가 하면, 내면의 충실함보다는 겉치레에 상식 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평가도 결코 겉만 보고 이루어져선 안 됩니다. 겉모양이 화려해도 그 본성이 속물적이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만이 가득 차 있다면 인품의 향기가 날 리 만무합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일화가 있습니다. 보삼장(寶三藏)이 어느 날 새로 창건된 일왕사 낙성법회에 참석하려 했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의 농부행색인지라, 문지기가 들여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보삼장은 집으로 돌아가 아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법회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식이 끝나고 연회가 베풀어졌습니다.
 

보삼장은 음식을 먹지 않고 자기 옷에 쏟아 부었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해 하며 이유를 물었습니다. 보삼장은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이 아니고 이 옷이 여기에 왔으니 마땅히 음식을 이 옷이 먹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그릇된 이들을 일깨워주는 말이었지요.
 

불교에선 수행을 통해 다섯 가지 안목을 차례로 성취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육안(肉眼)으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보게 되는 안목입니다. 둘째는 심안(心眼)으로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곳까지 보는 경지입니다. 셋째는 혜안(慧眼)으로 모든 미혹과 번뇌가 사라졌을 때 가질 수 있는 안목을 말합니다.
 

넷째는 법안(法眼)으로 사물의 진실한 모습, 우주만물의 당체(當體)를 직시할 수 있는 경지의 눈인 것입니다. 다섯째가 불안(佛眼)으로 대자대비가 절정에 다다라 모든 중생의 크기를 관찰하고, 이에 맞춰 제도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게 되는 부처님의 눈입니다. 이 가르침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겉치레란 진실을 가리는 거짓의 형상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지요.
 

우리가 이끌어가는 사회에는 사람답게 사람 냄새가 나야 합니다. 평소에 남을 대할 때 한마디의 말에도 아름다운 말의 향기가 백리를 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그만큼 경륜이 쌓이므로 더 많이 이해하고 더 크게 배려하고 더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나이가 든 만큼 살아온 날들이 남보다 많은 우리입니다. 인품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부끄러움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알지 못하되 묻기를 부끄러워함은 우치(愚癡)요, 나타난 부족과 과오만을 부끄러워함은 외치(外痴)입니다. 그런데 양심을 대조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의로운 마음을 길이 챙김은 내치(內痴)입니다. 이 내치를 기름이 바로 인품의 향기를 기르는 것임을 저마다 가슴에 새기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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