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추상화를 마주한 듯한 연극 "휴먼 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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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추상화를 마주한 듯한 연극 "휴먼 푸가"
“당신은, 나와 같은 인간인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 권애진 기자
  • 승인 2019.11.09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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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푸가' 포스터 /(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포스터 /(제공=남산예술센터)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의 국내에서 최초로 희곡화한 작품을 통해 문학과 연극이 만나고 있는 <휴먼 푸가>가 지난 6일부터 17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올해의 마지막 시즌 프로그램으로 인간의 고통의 본질을 들여다보며 참혹함에서 존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도를 관객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 동안 사실화에 가까운 연극들을 주로 봐 왔다면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 싸운 이들과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 받는 내면을 그려낸 연극 <휴먼푸가>는 소설의 텍스트를 전혀 변형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흡사 추상화를 마주한 느낌을 준다. 배우들은 연기하지 않고, 춤추지 않고, 노래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연극이 가진 서사의 맥락은 끊어지고, 관객들은 인물의 기억과 증언을 단편적으로 따라간다. 슬픔, 분노, 연민의 감정을 말로 뱉지 않고, 고통의 본질에 다가가 인간의 참혹함에서 존엄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이미지의 고리를 따라 변주를 시도한다. 그렇기에 관객들의 해석은 정답이 존재 할 수 없게 된다.

‘고통에 대한 명상’, ‘바후차라마타’, ‘이 슬픈 시대의 무게’ 등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오랫동안 작업해 온 고통의 사유와 방법론이 집약된 <휴먼 푸가>이기에 모든 것들이 정해져 버리거나 정해진 시간 동안 관객이거나 퍼포머로 정형화되는 것을 강하게 우려한 원작의 작가 한강과 배요섭 연출은 서로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작가가 쓴 텍스트보다 배우가 몸으로 표현하는 텍스트를 더 중시하던 배요섭 연출과 배우들은 소설 ‘소년이 온다’는 글자 하나하나에 받은 느낌이 강렬했기에 원래의 작품 방식에 위배될지언정 텍스트 자체가 가진 힘을 믿었기에 소설의 텍스트를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무대 위에 사용하여 <휴먼 푸가>를 공동 창작하였다.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 관객석에서 바라보는 ㄴ자의 무대는 오동나무로 이뤄진 관을 상징한다. 오월의 돌림노래르 ㄹ다시 이어 부르면서, 한강 작가가 우리에게 열어 준 장소가 바로 저 침묵의 무대이다.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 무대 위 오브제는 소설 속의 단어 속에서 파생 된 것은 아니다. 배우들의 선택 중 택함을 받아 무대 위 올라온 오브제 중 무명천이 얼굴을 뒤덮는 장면은 강렬함을 안겨준다.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 조명 아래 흩뿌려진 밀가루는 분골일 수도, 희뿌연 그림 같은 느낌을 안겨줄 수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 공간을 채우는 빛은 시간이다. 피폭 직후 표류하는 시간, 갇힌 시간, 얼어붙은 시간, 단절된 시간, 분열된 시간을 지나 연결된 시간으로 빛은 흐른다.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 공연 속 음악은 광주에서 느낀 작운 파동을 내 몸을 통해 증폭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부족한 감각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느낀 그 파동에 응답하고 새로운 대주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김재훈 음악감독)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 일반적인 극장의 관객석에 자리한 오브제들과 무대와 원래의 관객석을 오고가는 배우들은 오브제를 통한 반복적 행위를 통해 기억을 전한다.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사진 | 무대에 쌓인, 일렬로 놓이거나 모이거나 배우의 손에 든 유리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이승희(제공=남산예술센터)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듯 서로 다른 2개 이상의 음들이 동시에 함께 하는 ‘화성법’과 선율의 진행과 조화에 대한 ‘대위법’이 수학공식과도 같이 계산되어 섬세하게 표현된 음악 ‘푸가’처럼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생겨난 ‘고통’이 여러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변주되고 반복되고 있는 소설의 구조에서 시작한 연극 <휴먼 푸가>는 배우들이 자신의 신체나 오브제를 통해 사회적 고통과 기억을 연기하지 않고 세포에 각인된 기억을 보여준다. 각 장면은 독립적으로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혹은 교차되면서 새롭게 직조된다.

배우는 신체의 움직임과 오브제를 변주하고 교차하고 증폭시켜 감각의 확장을 꾀한다. 참여 배우 공병준, 김도완, 김재훈, 박선희, 배소현, 양종욱, 최수진, 황혜란과 제작진은 지난 1월 한강 작가와의 만남 이후,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보기 위해 몇 차례광주를 방문해 자료를 조사했다. 작업 초반에는 광주 뿐 아니라 캄보디아, 아르헨티나, 아우슈비츠 등을 학살의 변주로 참고하여 추가하려 했으나 광주 하나만 오롯이 바라보는 것만도 힘들고 어렵고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배우들은 고문이 자행되던 5공지하실, 더 이상 고문을 이을 수 없는 환자를 이송했던 광주통합병원 등에 머무른 시간 동안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저장된 기억을 방출하는 조금은 엉뚱한 과정을 무대와 객석의 예전의 관습을 거부하고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에 둘러싸인 방식을 통해 함께 공유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혹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활자를 접해 보지 않았던 관객이라면 오디오북으로 만나 보길 추천해 주고 싶다. 많지 않은 페이지의 활자를 보는 시간보다 조근조근 낭독극처럼 들려주는 오디오북은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는 할 것이다. 사실 7시간 30분은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연극 <휴먼푸가>의 원작 ‘소년이 온다’는 활자로 마주하는 것보다 오디오북을 통해 음성으로 마주하며 그들과 그들의 고통을 접한 기억들이 좀 더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보이기에.

한편, 소설 ‘소설이 온다’는 한국에서의 희곡화 이전에 지난 6월 “The Boy is Coming”이라느 제목으로 폴란드 스타리국립극장(National Stary Theatre)에서 공연된 바 있다. 유럽에서 현지 연극인에 의해 처음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공연이 무대에 오른 것이다. 한국과 폴란드는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닮은 역사적 맥락이 있다. 남산예술센터는 내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과 가치를 확산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양국에서 제작한 공연을 교류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일 9일 공연을 마친 후에는 폴란드 “The Boy is Coming”의 연출가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와 <휴먼 푸가>의 연출가 배요섭이 함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두 작품을 누구보다 먼저 느껴 볼 수 있다.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을 택한 폴란드의 연극과 텍스트를 그대로 가져와 기억을 몸으로 발화시킨 방식을 택한 한국의 연극을 함께 만나 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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